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조부모 양육이 증가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맞벌이 가정(또는 한부모 가정)에 조부모의 육아 도움은 가장 든든한 우군입니다. 어떤 조부모는 육아를 위해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간호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호학 박사를 받은 분입니다. 평생을 연구와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조기 은퇴를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이유는 손주의 탄생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딸이 육아와 직장 생활의 병행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할머니가 나선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할머니도 이럴진대, 보통의 할머니라면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연구에서 손주의 탄생은 할머니의 조기 은퇴를 촉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서구 선진국들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큰 숙제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죠. 그런데 할아버지에게서는 그런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Lumsdaine and Vermeer, 2015; Frimmel, Wolfgang, et al. 2022). 여성이 돌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동서양의 공통된 현상인 듯합니다.

또 다른 미국의 연구는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가 근처에 살 때(출퇴근 가능 거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4~10%포인트 늘어남을 보였습니다(Compton and Pollak, 2014). 가령 미국 가임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평균 70%라면, 조부모가 근처에 사는 경우 74~80%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 제 박사과정 동료였던 친구는 박사를 마치고 드넓은 미국 땅에서 콕 집어서 (아이의) 조부모 집 근처에 직장을 잡았습니다. 더 좋은 직장을 갈 수도 있었는데 친구가 이렇게 결정하는 것을 보며 저는 좀 놀랐습니다. 그는 조부모의 도움이 맞벌이 가정으로 하여금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자신의 선택을 설명했습니다.

저희 두 아이는 제가 미국에서 일할 때 태어났습니다. 그때마다 양가 부모님이 미국에 와서 큰 도움을 주고 가셨죠.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큰 즐거움과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처음에는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힘들어하기도 하셨죠. 둘째 출산 전후에 도움을 주시고 귀국하는 날 아버지는 “오늘 군대 제대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뒤엉켰습니다. 저희 부부는 몇 달씩 한국에 들어가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육아를 위해 장인·장모님은 사회생활을 대폭 줄이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황혼 육아가 삶의 활력소가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부모님을 병들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육아가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양방향으로 작용합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육아가 자존감, 가족 결속력을 향상시켜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육아로 인해 신체 활동 및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조부모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육아 부담을 조부모가 오롯이 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의 놀라운 발견

그렇다면 육아가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와 그렇지 않은 조부모의 건강을 비교하면 될까요? 답은 “아니요”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노인이 손주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픈 노인은 아무래도 애초에 손주를 돌보기가 어렵겠죠. 즉 우리는 ‘육아→건강’ 채널을 알고 싶지만, 그 반대로 ‘건강→육아’ 채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단순히 두 집단을 비교하는 (틀린)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건강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되죠. 건강하니까 손주를 돌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를 학술용어로 ‘역인과관계(reverse causality)’라 합니다. 게다가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그렇지 않은 조부모에 비해 삶의 가치관, 자녀를 대하는 태도, 흡연 및 음주 여부 등 서로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래서 육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일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같은 사람이 시점에 따라 손주를 돌보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한다는 데에 착안했습니다. 즉 같은 사람이 황혼 육아 기간과 휴지기에 건강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손주를 돌보기 시작하는 시점의 건강 상태도 통제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특성이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부분의 특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개인의 시점에 따른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이를 학술용어로 ‘고정 효과 모델(Fixed Effect Model)’이라 합니다.

독일의 연구는 이런 방식으로 조부모들의 주관적인 건강 수준과 정신 건강을 살펴보았습니다(Ates, 2017). “당신이 얼마나 건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로 측정하는 주관적인 건강 수준은 완벽한 건강의 지표는 아니지만, 실제 건강 수준을 잘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 결과, 육아는 건강 수준(주관적 건강 수준 및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평균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이죠. 

같은 방식을 이용한 이웃 나라 일본의 연구도 있습니다. 일본 보건복지부는 2005년 당시 50대(1946~1955년생) 3만4200명을 지금까지 매년 추적조사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물적·인적 자본이 드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 일본 사회의 고령화와 관련한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죠. 일본의 연구는 조부모가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보다 높은 강도의 육아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조사했습니다(Oshio, 2020). 황혼 육아에 대한 일본의 연구 결과는 독일의 결과와 같았습니다. 5세 미만의 아이와 함께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건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평균의 함정’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어떤 경우는 건강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육아라도 조부모가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육아의 주된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고, 가끔 필요할 때만 봐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해칠 위험이 커지고, 후자는 반대로 자존감과 건강이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돌보아주거나 등하교를 도와주는 정도라면 부모님의 건강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육아를 전담한다면 (아이를 안아주면서 생기는) 손목건초염, 관절염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우울증의 위험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육아로 부모님의 건강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 간의 솔직한 대화입니다. 손주를 돌보는 노인들이 미안한 마음에 이런 증상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부모님이 강도 높은 육아를 하고 있다면, 자녀들이 먼저 부모의 건강 상태를 물어보고, 육아 부담을 가급적 덜어드리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가 마련한 조부모 육아교실 수업.ⓒ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

일본 연구의 정말 놀라운 발견은 60대 이상 노인이 80대 이상을 모시는 ‘노노(老老) 부양’의 경우였습니다(Oshio, 2020). 노부모를 모시는 자식 노인의 건강은 크게 악화됩니다. 노부모를 모시는 젊은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건강하지 않다고 응답할 확률은 남성이 1.2배, 여성이 1.4배 컸습니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고 응답할 확률은 남성이 1.5배, 여성이 1.7배 증가했습니다. 노부모를 모시는 일이 손주를 돌보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죠. 

서울시, 조부모에 월 30만원 돌봄수당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노 부양’ 가구는 20만 세대가 넘습니다. 2010년 약 12만 세대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했죠. 그리고 계속해서 크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저는 지난번 기사 ‘요양시설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시사IN〉 제784호)’에서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이 다소 과시설화되어 집에서 좀 더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 부분 탈시설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돌봄의 탈시설화는 노노 부양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겠죠. 게다가 노노 부양이 건강에 주는 부정적 영향이 크므로, 노인을 집에서 돌보는 가정의 부담을 덜어줄 대책에 정부가 우선순위를 두어야겠습니다. 

오늘 살펴본 독일과 일본 연구에서 사용한 고정 효과 모델은 단순한 비교 분석에 비하면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 상태가 변해 황혼 육아를 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은 부분은 해결할 수 없으므로 정확한 분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황혼 육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2022년 8월 서울시의 ‘엄마 아빠 행복 프로젝트’는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 2023년부터 아이 한 명에 월 30만원의 돌봄수당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대상은 36개월 이하 영아를 둔 기준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로, 지원 기간은 최대 12개월입니다. 2023년 1만6000명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총 4만9000명을 지원할 계획이죠. 

저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노인가구가 육아에도 참여하고 수입도 올릴 수 있는 이 정책을 좋게 보았습니다. 이 정책은 자연스럽게 조부모의 육아 참여를 촉진할 것입니다. 육아를 매개로 가족 간의 교류도 활발해질 것입니다. 조부모가 모든 육아를 전담하는 상황이 아니라면(일정 부분 부모나 보육시설이 육아를 같이 감당한다면), 건강에도 별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무엇보다 지난번 기사 ‘일하는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시사IN〉 제768호)’에서 말씀드린 2세 미만 영유아 보육의 지나친 시설화에 대한 걱정도 좀 덜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정책의 효과는 나이 기준 혹은 소득 기준 때문에 가까스로 대상자가 된 조부모와 혜택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조부모를 추적 비교하는 방식인 ‘회귀불연속설계법’을 사용해 측정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자료를 협조해준다면 돌봄을 연구하는 경제학자인 제가 연구해볼 계획입니다. 그때는 황혼 육아가 대한민국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국내 데이터를 가지고 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명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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