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봐. 이게 임산부 뱃지야." 분홍색 뱃지를 든 김규진씨(31)가 배우자 김세연씨(34)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김규진씨가 임산부 뱃지를 들자, 그를 둘러쌓은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며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 이제 부케 던지러 가자."
7월1일 오후 폭염주의보가 내린 서울 을지로 명동성당 앞. 또 다른 동성 부부인 10년 차 커플 킴과 백팩도 함께 나섰다. "하나, 둘, 셋"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두 부부의 부케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9월 출산을 앞둔 김규진씨와 배우자 김세연씨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 〈한겨레〉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렸다. 2019년 5월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벨기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는 동성 커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올해로 24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됐다. 퀴어축제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축제에는 5만명이 참가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올해는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돼 장소를 바꾸어야 했다. 서울광장에서는 기독교단체의 청소년·청년 콘서트가 열렸다.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은 ‘피어나라, 퀴어나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을지로를 출발해 명동, 서울광장, 종로 등을 행진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기독교단체와 큰 충돌없이 행진을 마쳤다. 김규진, 김세연 부부와 함께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 행렬의 맨 앞에 섰던 킴, 백팩 부부는 퍼레이드를 마치며 "사실 저희는 한 10년 정도 되면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없네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라는데, 그사이 법이 안 바뀌었지만 이렇게 10년간 행진하며 보낸 마음이 좀 더 강하게 전달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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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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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우리처럼 [2023 올해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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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명익·글 이동은(영화감독·그래픽노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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