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의 명가 푸른역사에서 나온 〈독립운동 열전〉은 두 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은 ‘잊힌 사건을 찾아서’, 2권은 ‘잊힌 인물을 찾아서’이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는 독립된 책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2권은 그야말로 ‘열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 임경석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독립운동사가 배제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런 결과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을 독립운동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홍범도를 대하는 이중적 태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기 전은 순결한 몸이지만, 그 후에는 오염된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 말이다.
이 책에는 김창숙이나 홍범도, 김마리아같이 잘 알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대부분 들어보지 못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받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탈린은 1933년부터 대숙청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소련에 있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곤 했다. 일제에 쫓겨 찾아간 곳이지만 그곳도 낙원은 아니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배신당한 이들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이념이 달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차별받았다. 광주학생운동의 리더였던 장재성은 1962년 박정희 정부에 의해 서훈이 결정되었다가 공산 활동을 이유로 서훈이 취소되기도 했다.
임경석은 이렇게 말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달랐다고?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은 연합국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싸우며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김마리아는 사회주의 운동가는 아니지만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철수와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 흥사단에서 중매에 나섰고 김마리아도 승낙했지만 김철수는 이미 결혼한 몸이어서 고심 끝에 그녀를 첩으로 만들 수 없다고 거절하고 말았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독립운동 사이에 별반 거리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다.
이 책에 있는 홍범도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봉오동 전투에 대한 것이 아니다. 홍범도가 만주로 넘어가기 전 어떻게 싸워왔고, 그의 가족이 그 때문에 어떻게 숨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내와 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희생되었다.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아무 빚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지독한 일경의 고문 내용이 여럿 나온다. 3·1 운동 때 훈방으로 풀려난 이들에게까지 고문을 가한 이야기는 이들의 악랄함을 잘 보여준다. 이런 것이 일제의 근대화인가? 먹고사는 것이 좋아졌다는 통계를 들이대는 이들은 더더욱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탁월한 글쟁이이자 역사학자인 임경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민족 독립을 꿈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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