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부녀총동맹(부총)은 1945년 8월17일에 결성된 건국부녀동맹의 구성원들 중 식민지 시기 말기에 제국 일본에 협력하고 해방 후에도 우파를 지지했던 여성들이 탈퇴하면서, 같은 해 12월에 남은 멤버들로 개편된 조직이다. 여성 1000여 명이 안국동 풍문여고에서 열린 결성식에 참여했다. 주로 주부, 노동자, 농민에 조직적인 기반을 두었던 부총의 중심 구성원들은 식민지 시기에 하층 계급의 고통을 함께했던 체험에 기반하여 계급적인 관점에서 ‘생활투쟁’을 전개했다. 1931년 근우회가 해체된 뒤 15년 만에 여성들이 다시 집결해 38도선 이남에만 3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고 한다.

해방 후 공창제 폐지를 위한 과정에서 부총이 이를 ‘정조’나 ‘도덕’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여성들을 ‘구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부총은 공창제를 계급의 문제이자 사회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모순의 산물로 파악하여 그 해결을 위해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부응하는 공론화에 힘썼다. 미군정이 본격적으로 좌파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1947년 11월에 부총의 중심 멤버들이 체포되었고, 많은 이들이 이를 피해 월북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미군정은 이승만 정권과 가까운 우파 여성들 중심으로 여성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부녀국’을 설치하여 좌파 여성운동단체를 배제해갔다.(송연옥, ‘폐창 논의에서 보이는 연속과 단절’ 〈군대와 성폭력〉 선인, 2012, 296~302쪽)

〈조선의 페미니스트〉에서 부총의 전신을 이루었던 여성들의 삶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부총이 잠깐이나마 여성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던 해방공간 이전에도, 유영준, 정종명, 정칠성, 고명자, 허균, 박진홍, 이순금은 식민지 시기에 각자의 자리와 나름의 현장에서 생겨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실천의 장으로, 공동의 언어로 길어올렸다. 이들은 건국부녀동맹, 조선부녀총동맹(부총), 남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같은 공동체로 헤쳐 모이면서 부당한 옥살이를 하거나, 옥중에서 출산한 아이를 떠나보내거나,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결혼하기 싫은 남자의 집에서 달아나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접근권을 박탈당한다고 느끼자 그에 대해 거부했고, 항의했고,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할머니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비, 2016, 51쪽)

저자 이임하는 아디치에를 인용하면서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생활 속에서, 사회운동 속에서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현실을 바꾸고자 했고, 그들이 한국의 페미니즘을 만든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여성학’의 조류와는 별개로, ‘생활투쟁’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바꿔내려 했던 여성들에 주목해, ‘페미니스트’로 불려 마땅한 일곱 명의 삶과 그들이 남긴 글을 책 속에 담아내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페미니즘의 계보를 다시 썼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3·1운동을 전후하여 ‘사상 기생’으로 불린 이들이 많이 생겼다는 저자의 언급이 눈길을 끈다. 기생 출신인 정칠성은 다른 근우회 여성 활동가들보다 유독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어떤 일을 하든 항상 ‘기생’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녀의 활동이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광수가 1930년에 발표한 ‘혁명가의 아내’라는 소설에서 여성 사회주의자의 성욕이 극단적으로 강하고 정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하여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을 조롱한 바 있다며, 여성과 사회주의라는 두 불온한 요소가 결합된 ‘여성 사회주의자’가 192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여성’보다 가부장제 권력에 훨씬 위협적인 존재라고 언급했다(141쪽). ‘사상 기생’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여공조합의 결성에도 영향을 끼쳤던 정칠성은 기존 여자 청년회들이 “종교적·계몽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비판하고, 〈근우〉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으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장과 지면(紙面)을 무한 왕복하며 당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위협했던 정칠성의 말과 삶은 이 책에서도 큰 울림을 준다.

남조선민주여성동맹의 대중집회 모습. ⓒNARA
남조선민주여성동맹의 대중집회 모습. ⓒNARA

저자는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라는 벨 훅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그들이 살아냈던 시공간에서 각자가 혹은 함께 탈환하고자 했던 가치와 삶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소개하고, 거기에는 나름의 사상과 역사성이 있다고 말한다. 식민지 시기와 해방공간의 여성들이 치열하게 일궈낸 실천들과 지금-여기의 페미니즘‘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긋나는지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기자명 심아정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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