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하면, 어린 시절 보았던 반공 드라마 〈배달의 기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국군이 인민군과 맞서 처절하게 싸우는 전투 장면 몇 컷은 아직도 흐린 화면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학교 수업 내용, 만화영화 〈똘이 장군〉,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 금강산댐 건설 등등이 겹치면서, ‘북한군의 침략과 만행’이라는 한국전쟁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그럴 경우, 문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을 잘 보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다. 어린 시절에 생긴 그 하나의 이미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면서 새로 들어온 이미지들과 경쟁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아이들은 한국전쟁을 접할 때 우리 세대와는 달랐으면 했다. 급하게 하나의 답을 찾고 끝내지 말고, 다양한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2년 전 처음 마주한 이 책은 제목만 보고도 느낌이 확 왔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하나의 얼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말은 꼭 한국전쟁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얼굴이 하나인 것은 없다! 어린이 역사 공부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으면 늘 강조하는 말이다.
특히 이 책의 두 번째 장이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북을 가리지 않고 들려준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월남민들, 자진해서 혹은 피랍되어 남에서 북으로 간 사람들, 포로가 되었다가 남과 북을 모두 거부하고 제3세계행을 택한 사람들 등등. 특히 최근 홍범도 장군 동상 이슈로 회자되고 있는 ‘빨치산’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준다. 이때의 빨치산은 정식 명칭이 ‘조선 인민 유격대’인데, 종국에는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고 한다.
이 책의 차별점을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남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과 유엔군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그 점은 저자의 용어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6‧25전쟁이라는 표현은 언제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이 전쟁은 우리끼리만 싸운 것이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 세계 질서가 커다란 배경이었다. 그런 뜻에서 … ‘한국전쟁’이라고 표현하겠다.”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남북한 당사자뿐 아니라 미군, 유엔군, 심지어 중국군의 참전 이야기도 다룬다. 현재 우리나라에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군과 유엔군을 위한 공동묘지뿐 아니라 ‘적군 묘지’(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의 무덤)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보다는 전후 오늘날까지 사회에 나타나는 한국전쟁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한마디로 한국전쟁은 “70년 전에 끝났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올해 추석 밥상에 올릴 만한 주제다. 집안에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분이 계신다면, 3대, 4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올해가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해이니 명분도 괜찮다. 개떡이나 부대찌개 이야기도 좋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오빠 생각〉 감상도 좋다. 이 책이 말하는 여섯 가지는 물론이고, 더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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