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의 빈소.ⓒ시사IN 박미소

윤석열 정부가 건설 현장 노조 활동을 ‘건폭’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건설 노동자 양회동씨(50)가 노동절인 5월1일 분신했다. 양씨는 지난 1월부터 네 차례 경찰 수사를 받았다. 4월26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로 한 5월1일, 그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 잔디밭에서 몸에 화학성 물질을 붓고 불을 붙였다. 이튿날인 5월2일 숨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7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양회동씨는 42세 때인 2015년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철근공’이었다. 3년 만에 ‘반장’을 달 만큼 죽기 살기로 기능도를 올렸다. 그는 중간관리자에게 임금을 부당하게 떼인 경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2019년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에 가입한 양씨는 2022년 1월부터 ‘3지대장’을 맡았다. 강원도의 네 개 권역 중 하나인 3지대(고성·속초·양양·강릉 북부권)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에는 1000여 명, 그중 3지대에는 160여 명이 조합원으로 있다. 3지대장인 양씨의 주 임무는 이들의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것이었다. 아파트나 호텔 같은 신축 건설 현장이 들어서면, 양씨는 노동조합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설업체 현장소장을 찾아가 명함을 건네고 조합원들을 채용해달라고 했다.

누구를 몇 명 채용할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유다. 그런데 왜 이런 요구를 하는 걸까? “아파트를 예로 들면, 사람이 살지 않는 지하주차장까지만 내국인이 한다. 소위 ‘뚜껑’을 다 덮으면 내국인들은 일이 끝난다. 지상층부터는 내국인이 거의 한 명도 없다고 보면 된다. 알폼 공정이라고 해서 20㎏짜리 중량물을 들어 올려가며 조립해야 하는데, 노동강도가 높아서 내국인들은 엄두를 못 낸다. 처음 그 공정이 나왔을 때 내국인 팀들이 해본다고 했는데, 두 달을 넘긴 사람이 없다.” 김정배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장의 말이다.

건설 현장에 적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것과 채용 요구가 무슨 상관일까? “밖에서 보면 건설 현장 하나에 2~3년 일할 것 같지만, 내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아파트라도 지하 1층짜리면 3개월, 지하 2층이면 5~7개월밖에 안 된다. 아파트 동이 많아도 최대 1년을 못 넘긴다. 강원도는 아파트보다는 작은 건설 현장이 많은데, 이런 곳은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더 짧다. 그러다 보니 계속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 생기는 현장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때마다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김정배 지부장)."

삼성물산이니 GS건설이니 대기업 브랜드가 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건물을 짓는 사람은 삼성물산이나 GS건설 직원이 아니다. 원청(1군·종합 건설사)이 전문건설업체(2군·단종 건설사)에 하청을 준다. 그렇다고 공사장 인력이 전문건설업체 소속의 정규직인 것도 아니다. 전문건설업체들은 전국 어딘가에서 공사 일감을 따면 그때그때 필요한 시기에만 사람을 구해다 쓰고 일당을 준다. 전체 건설업 종사자 165만2000명 중에서 84만6000명(51.2%)이 임시·일용직이다(통계청, 2021년 건설업 조사 결과).

일용직들은 대기업처럼 공채 시험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팀장·반장·기능공 등 인맥(74.9%)이나 유료 직업소개소(7.6%)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건설근로자공제회, 2022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 이렇게 일자리를 구하다 보면, 임금의 일부를 떼일 가능성이 있다. 유료 직업소개소의 경우 수수료를 내야 한다. 불법 하도급 업체나 ‘오야지’ 등으로 불리는 팀장이 일용직의 월급 일부를 가져가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이를 ‘똥띠기(똥떼기)’라고 부른다. “노동조합이 채용을 요구하지 않을 때는 선택지가 크게 두 개밖에 없었다. 인력시장으로 가서 똥띠어지든가, 아니면 누구 소개로 오야지 밑에 가서 똥띠어지든가(김현웅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

윤석열 정부는 건설 현장의 노조 활동을 ‘건폭’이라 부르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건설 현장의 노조 활동을 ‘건폭’이라 부르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일용직인 조합원들이 적어도 불법 하도급 업체나 ‘오야지’가 아니라 전문건설업체들에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전개해왔다. 고용뿐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을 사용자 측(사측)과 의논하고 절충해 문서로 남겼다. 이 과정을 ‘교섭’이라고 하며, 그 결과 체결된 문서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라고 한다. 그런데 건설 현장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고 빠르게 생겼다가 사라진다. 각 기업들과 일일이 임금 등을 합의하려면 협약을 맺는 사이에 공사가 끝나기 마련이다. 2017년, 서울·경기·인천 지역의 고용주 단체인 ‘철근콘크리트 서·경·인 사용자연합회(이하 서경인 철콘연합회)’와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전국 250개 철근·콘크리트 업체 중 100개 가까이가 소속돼 있는 수도권 고용주 단체와의 협약은 ‘전국 단위 임금 및 단체협약(중앙 임단협)’으로 기능한다.

채용 요구는 어떻게 ‘공갈’이 되었나

2021년 체결되어 올해 6월30일까지 유효한 단체협약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담고 있다. 예컨대 조합원들은 빨간 날에도 임금을 받으며 쉴 수 있다(유급휴일 수당). 근무시간이 월~금요일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로 정해져 있고 토요일은 3시까지만 근무하며 이보다 오래 일하면 연장수당을 받는다. 노조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에겐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권리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의 일당은 비조합원보다 최소 하루 2만~3만원 더 높다.

문제는 몇 달에 걸쳐 합의한 이런 노동조건이 실제로 적용되려면, 업체가 일단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별 업체로서는 비조합원이나 다른 노조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협약은 제16조에 이런 조항을 두었다.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 바로 이 조항을 바탕으로 양회동 3지대장이 조합원의 채용을 요구한 것이라고,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설명한다. 더 많은 조합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려고 한 활동이라는 취지다.

수사기관의 판단은 달랐다. 양회동씨가 받고 있던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공갈’이다. 공갈(恐喝)이란 ‘재산상의 불법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일’을 말한다. 구속영장 청구서는 양회동씨가 다른 노조원들과 “공사업체를 공갈하여 금원을 교부”받았다고 썼다. 도대체 무슨 ‘금원’을 받았다는 걸까?

경찰이 지목한 돈 중 하나는 ‘노조 전임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에 따르면, 9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1년에 2000시간까지는 회사나 노조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 이를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라고 한다. 물론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측이 동의해야 한다.

앞서 건설노조가 서경인 철콘연합회와 맺은 중앙 임단협 제9조 1항은 “회사는 노조가 임명하는 자를 노조업무에 전임함을 인정한다”라고 쓴다. 노동조합들은 바로 이 중앙 임단협을 기준으로 각 업체들과 별도로 단체협약을 맺어 전임비를 지급받았다고 말한다. 영장에는 ‘피해’ 건설업체 4곳이 나오는데,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는 한 달 177만원 수준의 노조 전임비를 각각의 현장에서 1~7개월 지급받았다. 이는 모두 앞서의 김정배 지부장 등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상근자들(6명)의 인건비로 쓰였다. 양 지대장은 상근자가 아니어서 이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4곳 중 한 업체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채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비를 지급했다. 김정배 지부장은 “일부 어용 노조들이 조합원 고용과 무관하게 단체협약을 체결해 전임비만 받는 경우가 있다. 건설노조는 우리 조합원이 고용된 이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 사례에서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측이 처음에는 우리 조합원을 채용하기로 해놓고 공사 상황을 이유로 늦추다가, 바쁠 때 부르기로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결과적으로 채용을 하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경찰조사 이후 해당 금액은 지부 판단으로 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지목한 또 다른 돈은 이른바 ‘무노동 임금’이다. 노조 전임비와 별도로, 양회동 지대장은 ‘철근팀장’으로서, 노동조합 교섭단장 및 부지부장 ㄱ씨는 ‘해체팀장’으로서, 조합원 ㄴ씨는 ‘형틀팀장’으로서 월급을 받았는데, 이것이 ‘무노동 임금’이라는 논리다. 영장에 따르면, 양 지대장은 이에 대해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노조 활동을 했다”라고 진술했다.

양 지대장 등을 대리한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전임비를 받는 노조 상근자와 달리, 현장 활동가는 완전히 조합 활동만 하지는 않고 팀장으로서 중간관리자 역할도 한다. 양회동씨의 경우 지대장이어서 노조 활동 비중이 좀 더 컸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도 팀장으로 채용되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노조 활동을 일부 허용받은 것에 가깝다. 불안정한 단기 고용이 반복되는 현장에서 나름대로 가능한 노조 활동의 양식을 발전시켜온 경과를 고려하지 않고, 정규직 상시고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의 노조 활동이 아니면 ‘불법’이라는 논리는 앞뒤가 거꾸로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들은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양 지대장이 “건설사로부터 8000여 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았다”라고 썼다. 영장에서 “피의자(양 지대장)가 공범들과 건설 현장에서 갈취한 금액 합계는 7996만7750원이다”라고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겼다. 이는 4개 건설 현장에서 지급한 노조 전임비와, 각각 철근·해체·형틀팀장으로 일한 노조 활동가 3명의 급여를 모두 합한 액수다. 이 중에서 양 지대장이 철근팀장으로 일하고 받은 급여는 1개 현장에서 9개월간 3303만1930원이다.

강원도 전문건설업체 15곳의 현장소장들은 영장심사를 앞둔 양 지대장 등을 위해 탄원서를 썼다. 영장에서 ‘피해자’로 적시된 4개 업체 중 2개 업체 현장소장도 탄원서를 써주었다. 그중 한 업체의 현장소장 ㄷ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솔직히 양회동씨가 잘못한 건 없다. 전임비도 저희 현장에선 아무 문제 없이 지급했다. 노조 간부로서 팀장 급여를 받았을 뿐인데, 관례상 저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건설 현장이 (노조 간부에게 팀장 급여를) 다 지급해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 업체’ 현장소장은 전임비뿐 아니라 “팀장 수당도 큰 문제 없이 지급했다”라고 탄원서에 썼다. “민주노총 소속 팀장이나 노조 전임자라는 사람들이 조합원들의 근무를 관리해주고,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수사 과정에서 이런 노사관계의 맥락은 지워졌다. 양 지대장과 김 지부장 등이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시킨 행위에 대해, 경찰은 “마치 일자리 창출한 것처럼 보여지나 그 이면에는 일반 노조원들을 피의자(양 지대장)와 공범들의 이익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근로자 권익 보호와 안전 등의 정당한 노조 활동과는 무관한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불법행위를 자행했으며, 그들의 주된 목적은 단체협약으로 인한 노조 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이었다.” 경찰은 조합원 채용 요구의 목적이 돈이었다고 봤다. 양 지대장이 조합원 채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현장소장이나 회사 부사장을 여러 차례 찾아간 일도, 건설 현장 앞에서 노동가를 틀고 집회 시위를 한 일도, ‘건설자재 관리소홀로 철근이 부식됐다’며 건설 현장의 안전시설 미비를 국민신문고에 민원 접수한 일도 모두 ‘노조 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을 받기 위한 ‘공갈’이 됐다.

5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양회동씨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2017년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서경인 철콘연합회 간 중앙 임단협이 체결된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건설노조가 상근자를 두고 노조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요구한 ‘노조 전임비’, 업체를 옮겨다니며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도 경조사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각 회사가 매달 20만원씩 갹출하도록 한 ‘복지비’ 등의 조항을 다른 노동조합들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조 간부들끼리 싸움이 나고, 쪼개지는 일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소위 ‘조폭’들이 연루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7월 조합비 횡령과 비민주적 운영을 이유로 건설산업노조를 제명했다.

김학노 서경인 철콘연합회 대표는 “2023년 중앙 임단협에서 교섭을 요구한 노동조합만 10개다. 건설업계의 크고 작은 노조를 합하면 100개에 이른다. 정의롭게 활동하는 노동조합도 있지만, 사업자하고 ‘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합원을 30명 쓰라고 윽박지른 뒤 10명, 5명만 받는 조건으로 돈을 달라 하는 조합도 있고, 조합원을 채용시키고 공사가 끝났는데, 안 나가고 버티다가 나가는 조건으로 한두 달치 월급을 달라는 경우도 있다. 베테랑이 아닌 팀장을 고용해달라는 노조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안전 관련 신고 또는 외국인 불법 고용 문제를 무기 삼아 갈취를 일삼는 행태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 경찰청 특별단속 중간결과 보도자료에 나오는 문장이다. 노동조합이라 보기 어려운 이들의 ‘협박’이 가능했던 구조에는 사측의 불법이 있었다. 김학노 대표는 “(노조 요구에) 굴복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노조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원·하청을 같이 고발하는데, 이러면 원청에서 압박을 한다. 또 하나는 외국인 고용이라는 아킬레스건이다. 현실적으로 지상층은 내국인이 일을 안 하니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는데 상당수가 미등록 상태다. 그 부분을 해소해달라고 줄기차게 건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사측은 노조의 채용 요구가 ‘강요’이며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련의 판례에 따르면, 채용이나 정리해고 등 인사권도 교섭의 대상으로 볼 여지가 있다. 강한수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건설업계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해 말 이후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고용을 요구하러 가면 ‘협박하러 오셨습니까?’라며 녹음기부터 켜놓는다. 경찰이 다 찍어서 바로 고발하라고 했단다. 대놓고 노조 조끼 벗고 오라고, 불법 하도급 받을 거면 일 시켜준다고 하는 소장들도 있다. 이런 상황은 과연 합법적인가? 노동조합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임단협이다. 우리가 1년에 8~9개월 동안 애써서 임단협을 맺어도 조합원이 고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얼마 줄게 일 할래, 말래?’라는 말에 그저 따라야 했던 과거로 돌아가라는 것밖에 안 된다.” 윤석열 정부의 ‘노사 법치주의’는 일용직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적대적인 듯하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양 지대장의 죽음을 두고 ‘혐오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건설 현장에 노동조합 이름을 쓰는 조폭도 있는 건 사실이다. 건설 노동자들을 ‘노가다’라고 해서, 노동 중에서도 천대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말로 자부심을 가지고 현장을 바꿔보려고 열심히 활동하는 노조원들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과 장관이 이런 사람들까지도 하루아침에 조폭과 동일시하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지 않았을까. 구속영장도 정부기관의 공적 문서인데, 노동조합 이름 대신 ‘무슨무슨 파’라고 넣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경찰이 노조 활동을 조폭과 똑같이 바라보고 있다. 당사자가 읽었다면 충격이 컸을 것이다.”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 지대장은 분신 전날 가족들에게 늘 사주던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사주었다. 분신 당일 아침, 중학교 2학년인 쌍둥이 아들과 딸이 ‘아빠 믿어, 아빠 힘내’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양 지대장은 분신 직전 동료들에게 이렇게 썼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억울하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양 지대장의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 나오게 해주세요.” 한국 사회가 오래 외면해온 모순이 켜켜이 얽힌 현장에서, 한 노동자 시민이 2023년 노동절에 분신했다.

양회동 지대장이 노조 조합원들에게 남긴 유서. ⓒ건설노조 제공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