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조폭, 깡패, 가짜 근로자, 귀족 노동자, 무법자, 가짜 약자, 민폐 집단…. 요즘 우리 사회가 어떤 부류의 국민을 부르는 말이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조어(措語)하고 입에 올리면 다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단어다. 이 모진 말들이 향하는 대상은 건설 현장 노동자,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서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가끔 잊는다. 이들의 개별성을. 이들 각각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고 친구이고, 또 시민이고 국민이라는 사실을. 건설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건설노조 조합원이 되었는지 한국 사회는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시사IN〉은 세 사람의 건설 현장 노동자를 만났다. 모두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가입된 조합원이다. 이들은 동시에 철근공, 형틀목수, 타워크레인 조종사다. 그리고 30대 청년이고, 워킹맘이고, 가장이고,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아버지다. 

6년 차 형틀목수 김명숙씨가 아파트 건설 현장 근로자 휴게실 근처에서 포즈를 취했다.  ⓒ시사IN 이명익
6년 차 형틀목수 김명숙씨(43)가 아파트 건설 현장 근로자 휴게실 근처에서 포즈를 취했다. ⓒ시사IN 이명익

#삿포드#망치#시누#줄자#못주머니…. 김명숙씨(43)의 인스타그램 게시물마다 달려 있는 태그들이다. 김씨가 일할 때 늘 몸에 차고 다니거나 다루는 물건들이기도 하다. 그의 인스타 계정에는 공사장 사진이 가득하다. 눈 내리는 공사장, 아침 해 뜨는 공사장, 지하 4층 철근 코어 다 들어간 공사장, 블루폼(거푸집 자재) 짜는 공사장, 공구리 치는(콘크리트 타설하는) 공사장, 공구리 터진(거푸집이 터져 굳지 않은 콘크리트가 흘러나오는) 공사장…. 김씨의 인스타 계정 이름은 ‘k.w.c.w’, 한국 여성 건설 노동자(Korea Woman Construction Worker)의 약자다.  

김씨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형틀목수다. 형틀목수는 콘크리트의 ‘모양’을 만드는 직업이다. 철근 뼈대를 둘러쌀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서는 거푸집이 필요하다. 설계 도면대로 건축 구조물들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일을 형틀목수가 한다. 유로폼, 스틸폼, 알폼 등 규격에 맞춰 제작된 기성 폼을 필요한 곳에 알맞게 이어 붙이기도 하고 합판과 앵글을 잘라 직접 폼을 만들어 설치하기도 한다. 보통은 비계(시스템) 발판, 가끔은 아시바(봉) 하나에 의지해 곡예사처럼 폼을 옮기고 연결하고 자르고 망치질한다. 그렇게 짜맞춘 틀(거푸집) 안에 콘크리트를 붓고 굳혀 다시 폼을 뜯어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벽과 바닥 기둥과 천장과 계단이 완성된다. 

김씨에게 공사장은 아주 익숙한 공간이다. 어머니와 함께 12년간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을 운영했다. 큰딸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전학시키면서 울산, 평택, 광주 등 건설 현장을 따라다녔다. 밥 먹으러 오는 건설 노동자들의 옷만 봐도 무슨 공정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10월부터는 김씨도 그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많이 한다는 방수, 조적(벽돌쌓기), 견출(표면처리) 같은 걸 할까 했죠. 그런데 마침 집 가까운 곳에 형틀목수 기능학교라는 게 있더라고요. 여자도 받냐고 물어보니 받는대요. 얼른 가서 등록하고 교육을 받았죠.”

기능 교육을 받고 처음 나간 발령지는 경기도 과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첫날 작업복도 받지 못했다. “저거 가져와” “이거 갖다놔” 심부름만 시키고 못이라도 한번 박으려 나서면 “저기로 비켜”라며 제지당하기 일쑤였다. 새 현장에 처음 나갈 때마다 “여자가 왜 왔냐”라는 소리를 듣는다. 몇 개월 같이 일하다 보면 아무도 김씨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현장 가면 첫 하루 이틀은 무조건 제일 잘 보이는 데서 일해요. ‘아~ 여자도 저렇게 잘할 수 있구나’를 딱 느끼게 해주면, 그다음부터는 그런 말 못해요(웃음).” 

“우리 엄마 건설 현장 목수야, 멋있지?”

김씨는 건설 현장의 유일한 여성이 아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장 내 형틀목수 4개 팀 안에만 해도 여자 선배 둘, 후배 한 명이 같은 일을 한다. 지게차 신호수, 화기 감시자(용접 불똥 등이 화재로 번지지 않게 점검하는 노동자) 등에도 여자가 많이 늘었다. “한 현장에 500명 정도가 일한다고 했을 때,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 5명 정도가 여자였다면 지금은 체감상 한 30~40명은 되는 것 같아요.” 통계청 건설업 취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여성 건설 노동자는 2015년 15만5000명(전체의 8.4%)에서 2021년 22만1000명(전체의 10.4%)으로 늘었다. 

형틀목수 김명숙씨가 일할 때 늘 차고 다니는 장비 꾸러미. ⓒ시사IN 이명익
형틀목수 김명숙씨가 일할 때 늘 차고 다니는 장비 꾸러미. ⓒ시사IN 이명익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차별받거나 곤란한 일에 부딪혔을 때 김씨는 자주 앞장서서 싸웠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화기 감시 언니랑 같이 지하층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포클레인 기사가 위층에서 바지를 벗고 소변을 본 거예요. 일부러 여자 둘이 있는 쪽을 향해서요. 저는 뒤돌아 있었는데 언니가 악, 놀란 소리를 내더라고요. 제가 쳐다봤을 때 바지를 올리고 있었고 이 언니는 다 봐버린 거죠. 너무 화가 나서 ‘언니 얘기하자, 이건 얘기해야 해’ 하니 안 된다고, 그러다 잘리면 어떡하냐는 거예요.” 김씨는 총대를 메고 담당 관리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상황을 전달하고 빠른 조치를 요구했다. 관리자는 포클레인 기사에게 각서를 받아 사진을 보내주고 다음 날 다른 기사를 배치했다. 

김씨는 왜 나설 수 있었을까? “노조가 있으니까요. 할 말은 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잘리게 되면 노조가 같이 싸워줄 수도 있잖아요.” 김씨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다. 처음 형틀목수 일을 가르쳐주던 기능학교도 알고 보니 건설노조가 운영하던 교육장이었다. “교육을 끝내고 현장으로 나가려던 때에 지자체 취업센터에서 노조에 가입할 건지 말 건지 묻더라고요. 원래 노조에 대해 별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아서 물었죠. 노조 가입 안 하고도 취업이 잘 되냐고요. 1년까지는 취업센터에서 보장을 해주는데 이후에는 알아서 구해야 된대요. 그때 생각하기에 ‘노조에 들어가서 보호를 좀 받으면서 일을 해야겠다’, 그래서 가입했어요.”

노조를 통해 보호받으면서 김씨는 여러 차례 동료 비조합원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했다. 앞서 얘기한 소변 사건 외에, 여자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갈아입는 컨테이너 방문을 벌컥벌컥 여는 관리자에게도 “제발 노크 좀 하라”고 항의했다. 지금 일하는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화장실 사용권도 얻어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의 화장실 환경은 턱없이 열악하다. 화장실을 갖춰놓지 않은 현장이 많아 공사장 구석진 곳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건설노조의 꾸준한 요구 끝에 겨우 올 3월부터 ‘남성 30명당 1개 이상, 여성 20명당 1개 이상’이라는 건설 현장 변기 설치 의무 규정이 건설근로자법 시행규칙으로 들어갔다. 지금 김씨가 출근하는 현장에서는 전체 500여 명 중에서 여성이 30여 명 일하는데, 남녀 공용으로 쓰는 푸세식 간이 변기 외에 입식 변기를 갖춘 멀쩡한 화장실이 남자 4칸, 여자 2칸뿐이다. “그마저 하청 사무직 직원들이 자기들만 쓰겠다고 여자 화장실을 자물쇠로 잠가놓은 거예요. 현장직은 공용 푸세식만 쓰라면서요. 여러 차례 문제 제기하니 한 칸만 열어주는 거예요. 또 얘기했죠. 마저 열어달라고.” 그렇게 겨우 좌변기 화장실 두 칸을 얻어냈다. 

“그래도 진짜 많이 나아진 환경에서 일하는 거래요, 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부당노동행위 사례들을 선배들에게서 종종 듣는다. “예전엔 초과수당 없이 연장근로가 허다했대요. 아침 별 보고 출근해 저녁 별 보고 퇴근하고요. 출근해서 비 오면 돈 한푼 안 주고 그냥 돌아가라고 하고요. 지금은 그래도 일정 금액은 나오거든요. 다쳐도 산재 신청은커녕 일 나오지 말라고 할까 봐 숨기고 끙끙 앓으며 일했대요. 저도 이제까지 일하면서 손가락 두 번 부러지고 뒤로 떨어져서 산재 보상을 받았는데, 예전엔 꿈도 못 꿀 일이었대요. 산재신청서에 회사 사인을 받아서 내야 하는데 그럼 눈치 보여서 누가 신청할 수 있겠어요? 안전모나 안전화도 아예 안 주거나 주더라도 남이 쓰던 더럽고 다 부서진 걸 주기 일쑤였고요.” 최근 몇 년 사이 법이 개정되고 단협안이 수정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현장에서 조금씩 사라지거나 개선되는 중이었다. 모두 노조 활동의 결과다. 

김씨가 노조를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건설 근로자 기능인등급제’라는 자격제도다. 현장 경력, 교육·훈련, 자격, 포상 등에 따라 노동자마다 기능등급(초·중·고·특급)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체계다. 김씨는 고급 기능공으로 산정되었다. “독일 같은 데서는 마이스터 제도라고 이런 기능등급을 현장 건설 인력을 채용할 때 활용을 한대요. 우리나라도 불법 하도급 일용직을 쓰는 대신 이런 방식으로 채용하면 건설 근로자들은 점점 더 기능을 연마하고 회사는 숙련된 양질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고 좋을 텐데요.” 정부도 계획은 여러 번 짰다. 2017년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대책, 2018년 건설산업 혁신방안, 2020년 건설 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 등을 발표할 때마다 다단계 하도급 채용을 근절하고 건설사가 기능인등급제를 활용해 인력을 채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으로 시행된 적은 없다. 

김명숙씨가 전기 그라인더로 폼에 붙일 앵글을 자르고 있다. ⓒ김명숙 제공
김명숙씨가 전기 그라인더로 폼에 붙일 앵글을 자르고 있다. ⓒ김명숙 제공

김씨는 형틀목수 일이 재미있다. “붙였던 폼을 뜯을 때 ‘와꾸’가 딱 잡혀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내가 요렇게 만들면 요렇게, 조렇게 만들면 조렇게 모양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요.” 한 대학병원 건물 신축 현장에서는 지하 8층부터 지상 13층까지 완성되는 모습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일했는데,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 가족과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거길 다시 지나간다. “딸 둘이 고1, 대학교 1학년인데요. 애들한테 자랑해요. ‘저 건물 엄마가 지었다’라면서요(웃음).” 아이들은 항상 무릎에 멍이 들어서 오는 엄마가 일하다가 다칠까 봐 걱정하면서도 학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한단다. “우리 엄마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야. 멋있지?”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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