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가로등 밑에서 무언가 다급하게 찾고 있다. “잃어버리신 게 있나 봐요?” “예, 열쇠를 찾고 있어요.” 그런데 가로등 밑은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아스팔트다. “여기에 열쇠를 떨어뜨리셨나요?” “아뇨, 저쪽 덤불에 떨어뜨렸지만 거기는 너무 어두워서 밝은 여기서 찾고 있습니다.” 오래된 일화다. 키는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조합이 보조금을 받고도 회계장부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면 보조금 정산 회계 제출은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다. 회계자료를 내지 않으면 환수되기 때문이다. 보조금 지급 부처는 보조금이 지원 목적에 잘 쓰였는지 서류를 꼼꼼히 확인한다. 기획재정부 보조사업평가단도 재차 점검한다. 그래도 정 미덥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노조가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데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미 제출한 보조금 회계자료를 다시 한번 꺼내서 점검하고 환수하면 된다.
노동조합이 정부에 제출하지 않는다는 회계자료란 무엇일까? 그것은 보조금 사용 회계가 아니라 조합원이 낸 조합비 회계자료를 뜻한다. 이를 보조금 회계와 혼동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인테리어 공사를 발주하고 공사 대금을 지급했으면, 구체적 공사 내역 서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테리어 업체에 고객 명단 등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찬가지로, 특정 사업을 요구하고 보조금을 지급했으면 그 보조 사업에 대한 회계자료는 정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 부분은 이미 잘 제출되고 있다. 최소한 노동조합이 수행한 보조 사업이라고 특별히 다른 조합·협회·기업이 수행한 보조 사업보다 회계처리를 더 설렁설렁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노동조합에 지급한 보조금 액수는 2021년 46억원에 불과하다. 2017년에도 45억원이었으니 문재인 정부 4년간 노동조합 보조금은 정체했다. 같은 기간 국가가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13조원에서 23조원으로 약 75%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한국경영자총협회 보조금은 213억원에서 490억원으로 무려 130% 증가했다.
보조금 회계와 조합비 회계는 별개다
노동조합이 정부에 제출하지 않는 회계자료는 보조금 회계가 아니라 조합비 회계자료다. 노동조합의 회계는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조합비 회계를 잘 공개하고 있는지 정부가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하는 11종류의 조합 회계자료 ‘표지’를 정부에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리고 이미 노동조합은 정부의 요구에 따라 표지는 대부분 잘 제출했다. 다만 정부가 요구한 ‘내지’ 11종류 제출은 거부하고 있다. 내지에는 조합원 명단 등 민감한 내부 자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회계 투명성의 가치를 보조금 회계라는 가로등 밑에서 찾으면 언론은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보조금 회계와 조합원 회계는 별개라는 사실을. 다만 조합원이 조합비를 내면 다른 기부금 단체처럼 일정 부분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즉, 노동조합의 회계가 투명해야 할 이유는 보조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조합비에 세액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물론 이 점에서는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투명 회계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혼동하면 언론은 정확히 구분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길 바란다.
첫째, 보조금 회계는 이미 잘 제출되고 있다. 둘째, 노동조합은 조합원 명부 등 민감 자료는 조합원에게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지만 이를 정부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 셋째, 노동조합 재무제표는 사적 자치와 투명 회계의 가치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개 범위를 확대해가는 논의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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