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1월29일 첫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재가했다. ⓒ대통령실 제공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반복한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불법이었을까?

파업 참가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기사들의 화물운송을 물리적으로 막거나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불법이다. 실제로 경찰은 관련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타협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정부는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운전대를 놓은 것 자체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파업이 아니라 ‘집단운송 거부’라고 불렀다. 화물연대는 현재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은 정식 노동조합이 아니다. 화물차 기사들은 개인사업자로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차량도 스스로 마련한다.

정식 노조가 아닌 ‘법외(法外) 노조’가 파업하면 불법일까? “노동조합법상 노조가 아니라고 해서 헌법상의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향유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말했다. “노동조합 설립 ‘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영하면 헌법에 반한다. 우리 판례도, 근로자가 자주적으로 근로조건 향상 등을 목적으로 단결했다면 헌법상 단결체로 인정한다. 노조법상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는 점점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결국 화물연대 파업이 불법이라는 근거는 딱 하나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4조 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 화물차 기사가 이 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무엇이 ‘정당한 사유’인가? 화물차 기사들이 구간별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제도인 ‘안전운임제’를 확대 적용하라며 운송을 거부한다면, 이는 정당한 사유인가,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이 보기에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었던 듯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윤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파업 닷새 만인 11월29일 시멘트를 나르는 화물차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한 뒤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치(法治)란 법의 지배를 말한다. 사람에 의한 자의적인 통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누구도 법에 의하지 않으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법이라는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나치 독일도 법을 갖추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도 형식상으로는 법이었다. 절차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원리가 구현되어야 실질적 법치주의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은 민주주의 원리가 구현된 법인가? 박귀천 교수는 “법의 형식을 갖춘 제도이지만 위헌성이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커다란 지장’ ‘매우 심각한 위기’처럼 추상적인 표현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비슷한 조항이 있지만, 화물차 기사의 파업이 의사 파업만큼 시민 생명에 직결되는지 논란이 많다. “사실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은 어색하다. 노사관계에서는 ‘자치(스스로 통치함)’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그 핵심은 대화와 협상이다. 대통령이 준법과 법치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박귀천 교수).”

12월6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도로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파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ILO 개입 공문에도 “의견조회에 불과”

이제 우리는 윤석열식 법치주의의 핵심 키워드에 도달했다. 그가 주문하는 것은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법치주의라기보다는 ‘준법’인데, 그 적용은 퍽 자의적이다. 윤 대통령은 화물차 기사들이 운전대를 놓은 행위가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선언적으로 판단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면서 업무에 복귀하라고 명령했는데, 그 근거 조항은 위헌성이 있다(2004년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발동된 적 없는 명령이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화물연대 파업 9일째인 12월2일 한국 고용노동부에 개입(intervention) 공문을 보냈다. 정부는 이 공문이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공개한 ILO 공문은 이렇게 쓴다. “ILO 감시감독 기구는 운송 서비스 및 유사한 부문의 업무복귀명령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간주하고, 평화적인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 형사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공문은 과거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내린 권고에 “주목하기 바란다”라고도 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2012년 제2602호 이의 제기 사건에서, “화물차 기사 등 자영 노동자(self-employed workers)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이 완전한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헌법 제6조 1항). ILO 협약 중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과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비준해 올해 4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데,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이 협약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는 “정부는 국제규범을 존중해야 하며, 협약 비준 이후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ILO의 이번 공문을 두고) 의견조회로 치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비난받을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헌법과 국제규범 위반을 감수하면서 이런 조치를 하는 이유로 윤 대통령이 든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이번 파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인 만큼 형평성 있는 노동조건 형성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한국 노동시장이 대기업·정규직으로 대표되는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그 격차도 극심함을 뜻한다.

정부가 상대적 약자에게 자원을 쓰겠다는 것 자체는 올바른 목표다. 그런데 화물연대 기사들이 과연 1차 노동시장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화물차 기사들은 특수고용직이다. 고용된 노동자들이 누리는 유무형의 기업복지는 물론, 노동법과 4대 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에서 비켜나 있다. 월 500만원을 번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 일해서 버는 것인지, 이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위험과 비용은 어떠한지 고려해야 한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주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여타의 2차 노동시장에 있는 이들보다는 처지가 낫다. 이때 국가가 할 일은 조직된 이들을 비난하는 것인가? 박명준 주임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은 ‘자기 노동력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기회의 차등화’다. 대기업에 고용된 이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해 임금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하청이나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의 임금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상층부를 끌어내릴 게 아니라 오히려 하층에게도 목소리 낼 기회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실은 화물연대야말로 2차 노동시장에서 그나마 기존 노동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가격 결정 메커니즘(안전운임제)을 요구하고 발전시켜온 주체다. 이들의 요구를 불법으로 낙인찍는다면, 자칫 노동법 테두리에서 벗어난 하층은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맨 오른쪽)이 12월8일 업무개시명령 발동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사 윤석열’의 관료제적 루틴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느 사회에서나 전체 시민 가운데 노동자 시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다수다. 구성원들이 직업 활동으로 소득을 얻고 가족을 건사하며 아이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한 가장 기초적 정책이 노동정책이다. 노동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보편적 이슈인데, 윤석열 정부가 노동을 너무 쉽게 민주당 이슈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번 파업에서 대통령이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이 보인 태도도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는 인간 활동이다. 다름 속에서 그 역할이 빛나야 하는 게 정치다. 정치는 어떤 갈등도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려는 게 아니라 어느 한 편에 서서 상대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행위는 정치의 본령뿐 아니라 법치주의의 기본 이상과도 배치된다. 강자들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게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약자들에게 통제를 명령하는 것은 법에 의한 권위주의적 지배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참모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종일관 ‘선(先)복귀 후(後)대화’를 압박했고 아마 그 전략은 통할 듯하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화물운송 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시장에 맡겨서 해결될 성격이라 보기 어렵다. 이들의 사업장이 민간인이 다니는 도로라는 점에서 일반 사업장과도 다르다. 산업이 파멸로 향해 가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면 정치력이 필요한데, 정부가 이런 산업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는 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일련의 대응이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은 ‘한국에서 관료가 직접 통치를 시작하게 된 사건’이다. 관료의 세계관에서는 루틴(규정, 틀)을 벗어나는 모든 게 범법이다. 정치란 선거를 통해 관료제적 루틴을 깨는 건데,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직권남용을 수사함으로써 관료제적 루틴에서 벗어나는 어떤 형태의 정치의 공간도 부정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선 이다. 정부가 문제를 풀 생각이 없는 것을 넘어서 ‘풀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앙상한 준법의 실천만 남았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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