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조폭, 깡패, 가짜 근로자, 귀족 노동자, 무법자, 가짜 약자, 민폐 집단…. 요즘 우리 사회가 어떤 부류의 국민을 부르는 말이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조어(措語)하고 입에 올리면 다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단어다. 이 모진 말들이 향하는 대상은 건설 현장 노동자,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서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가끔 잊는다. 이들의 개별성을. 이들 각각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고 친구이고, 또 시민이고 국민이라는 사실을. 건설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건설노조 조합원이 되었는지 한국 사회는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시사IN〉은 세 사람의 건설 현장 노동자를 만났다. 모두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가입된 조합원이다. 이들은 동시에 철근공, 형틀목수, 타워크레인 조종사다. 그리고 30대 청년이고, 워킹맘이고, 가장이고,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아버지다. 

철근공 김상윤씨(35)가 네 살 딸의 손을 잡고 경기도 김포시 한 건물 공사장 인근에 섰다. ⓒ시사IN 조남진
철근공 김상윤씨(35)가 네 살 딸의 손을 잡고 경기도 김포시 한 건물 공사장 인근에 섰다. ⓒ시사IN 조남진

건설은 철저한 분업 세계다. 각각이 맡은 바가 있고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건물이 지어지지 않는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예로 들면, 먼저 건물의 뼈대를 세운다. 철근공이 하는 일이다. 철근 뼈대에 콘크리트라는 살을 붙이려면 모양에 맞는 거푸집(틀)이 필요하다. 그걸 형틀목수가 만든다. 거푸집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히는 역할은 타설공이, 거푸집 자재를 떼어내고 정리하는 일은 해체·정리팀이 맡는다. 이들의 발판과 손잡이가 될 시스템(비계)은 비계공이 설치한다. 끝도 없이 나열될 수 있는 이런 분업이 모여 벽과 바닥과 기둥과 천장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단단한 건물은 다양하고 수많은 건설 노동자들의 손길 하나하나로 쌓아올린 공동 작업물이다. 

1988년생 청년 김상윤씨(35)는 이 가운데 가장 첫 공정,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철근공이다. 철근공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배근(配筋)과 결속(結束)이다. 철근을 설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고(배근) 그것들을 한 덩어리가 되게끔 묶어준다(결속). 19㎜, 29㎜(단면 지름) 철근을 옆으로 옮기고 아래에 깔기도 하고 위로 세우기도 한다. 수직근과 수평근이 교차된 자리마다 수없이 많은 접점이 만들어진다. 갈고리를 잡고 구부러진 철사끈의 머리를 두 바퀴 돌리면 접점마다 결속력이 생긴다. 그렇게 김씨는 건물의 견고한 수평과 수직을 처음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한 건설 현장의 철근 골조물. ⓒ시사IN 변진경
한 건설 현장의 철근 골조물. ⓒ시사IN 변진경

김씨는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처음 건설 현장을 경험했다. 졸업 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철근공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건설업, 그중에서도 철근 일을 택한 건 일당이 센 편이었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어도 일한 만큼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에도 가입했다. 기성 노조를 불신하고 기피한다는 MZ 세대에 속하는 김씨는 왜 스스로 건설노조 조합원이 되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노조가 아닌 일반팀, 로터리팀(인력대기소 등에서 충원되는 팀)으로 들어가서 일하면 (일당) 단가가 최소 하루 2만~3만원 낮고 고용도 불안정하며 욕하고 때리는 팀·반장을 만나기 일쑤다. 표준화된 단가표에 따라 근무시간도 일정하고 근로조건도 어느 정도 괜찮게 일하려고 나를 포함해 많은 청년들이 노조에 들어갔다.”  

무슨 말일까? 건설 현장에서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차이는 왜 발생할까? 이는 복잡하고 기형적인 건설 현장 인력 수급 구조와 관련이 있다. 아파트 공사장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삼성물산이니 GS건설이니 대기업 건설사 브랜드가 붙은 아파트일지라도, 건물을 짓는 사람은 삼성물산이나 GS건설 직원이 아니다. 원청(1군·종합 건설사)이 전문건설업체(2군·단종 건설사)에 하청을 준다.

그래서 공사장 인력은 전문건설업체 소속 직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건설 현장에서 연장을 들고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정규 인력은 한 명도 없다. 노무관리 인력도 없다. 공사장 현장이 벌어질 때마다, 혹은 그날그날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수만큼 외부 인력시장에서 사람을 구해다 쓴다. 말 그대로 ‘일용직’이다. 일용직은 대부분 불법 하도급 업자, 이른바 ‘오야지’를 거친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지만 건설업계 종사자 누구나 알고 활용하고 묵인하는 존재다. 

오야지는 하청업체로부터 평당 단가로 일감을 따고 그 일을 할 노동자를 구한다.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소개소에서, 최근에는 또 단톡방이나 밴드 등을 활용해 사람을 모은다. 하청업체에서 받은 공사비는 정해져 있으니, 최대한 낮은 일당에 인력을 모집해서 최대한 빠른 기간 내 공사를 끝내야 중간 업자인 오야지도 이윤이 남는다. 한 인부당 일당을 얼마 줄지, 언제 줄지, 줄지 말지도 오야지 마음에 달려 있다. 부당노동행위를 당해도, 산재 위험이 있어도, 부실 공사 위험이 있어도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다. 오야지가 “내일 또 나와” 하면 취업이 연장되고 “내일 나오지 마”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런 복마전 업계를 개선하기 위해 나선 곳이 민주노총 건설노조였다. 1997년부터 무료 취업알선센터와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하며 노동자가 전문건설업체에 직고용될 수 있게끔 다리를 놓았다. 2007년 시공참여자제도 폐지를 이끌어내 법률상으로나마 오야지를 없앴다. 전문건설업체와 단체교섭을 해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 수준을 꾸준히 상향 평준화해왔다. 2018년부터는 250개 철근콘크리트연합회와 건설노조가 중앙교섭을 벌여 매년 기능·업종별 표준화 임금 단가를 결정하고 있다. 노동시간, 휴일, 산재 보상, 안전화·안전모 지급 등에 관한 내용도 표준계약서에 포함되었다. 

한 건설 현장 노동자 휴게실의 내부 모습. ⓒ시사IN 변진경
한 건설 현장 노동자 휴게실의 내부 모습. ⓒ시사IN 변진경

이처럼 어느 정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끔 약속된 조합원을 건설 현장에 많이 수급하기 위해 노조는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때로는 교섭을, 때로는 투쟁을 벌여왔다. ‘노조를 통해 현장에 들어가면 그래도 임금 안 떼이고 덜 위험하게 일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고 그 과정 중에 김씨 같은 청년 구직자들도 건설 현장으로 들어왔다. 인맥과 눈치와 술·담배·현금 상납으로 이뤄지던 기존 건설 현장 고용구조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를, 건설노조가 바꾸었다. 미국, 독일, 캐나다 퀘백 주 등에서는 노조를 통한 건설 인력 ‘직고용’이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한국의 직업안정법 제33조에도 노동조합의 ‘근로자 공급 사업권’이 명시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와 다수 언론은 건설노조의 조합원 직고용 요구 교섭 활동을 ‘불법 채용 강요’로 규정짓고 수사와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상 노조의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상향 평준화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해나갈 수 있었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일부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설 현장은 아직까지 청년층에게 그리 이상적인 일터는 아니다. 2022년 건설 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건설 노동자 평균연령은 53.1세. 인력은 고령화돼가는데 건설업체들은 당장 공기를 단축하는 것에만 집중해 젊은 ‘감자(신입 양성공)’를 받지도 키우지도 않으려고만 한다. 진입하기도 어렵고 일 배우기는 더 어렵다. 김씨도 노조 팀에서 짝지어주는 선임을 졸졸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우고 똑같이 따라 하며 한 사이클을 돌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해보는 과정을 거치며, 이 악물고 버텨나갔다. 

철근공 김상윤씨의 작업 모습.  갈고리를 이용해 수평근과 수직근의 접점을 일일이 철사로 묶는다. ⓒ시사IN 변진경
철근공 김상윤씨의 작업 모습.  갈고리를 이용해 수평근과 수직근의 접점을 일일이 철사로 묶는다. ⓒ시사IN 변진경

한 줄에 30㎏까지 나가는 철근을 옮기고 깔고 세우고 들어 올리는 매 순간이 아찔했다. 허공 위에 깔아놓은 철근 위를 걸어 다닐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고, 여기저기 튀어나온 사시낑(삽입 철근)에 허벅지와 정강이가 긁히는 건 기본이었다. 철근에 얼굴이 긁혀 열 바늘을 꿰맨 동료를 보기도 했다. 허리 굽혀 일할 때가 많아 철근공 중에 허리 디스크 없는 이가 없다. 

“건설 일용직 아닌 건설 직업인 되고 싶다”

임금 지급 시기도 상식적이지 않다. 1월에 일한 대가를 2월15일이 되어서야 받는다. 일명 ‘쓰메끼리’라고, 일단 보름 치 임금을 깔고 준다. 그나마 노조 조합원들이니 보름 치에 그친다. 비조합원들은 두세 달 뒤에 임금을 지급받는 일도 허다하다. 오야지와 하청업체, 하청업체와 원청 건설사 사이 공사비를 두고 분쟁이 일어나면 그보다 더 오랫동안 임금이 묶이기도 한다. 하청업체가 중간에 부도를 내고 사라지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는 새로 들어온 하청업체가 고용 승계를 해주거나 원청이 선의를 베풀어 임금을 대신 지급해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안 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가장 괴로울 때는 일하고 싶은데 일하지 못할 때다. 노조에 가입돼 있어도 고용불안은 여전하다. 현장 일을 구해 나가도 몇 개월 단위, 아무리 길어봤자 1년에 못 미치는 공사 기간이 끝날 때마다 실업이 다시 반복된다. 다음 현장 출근을 통보받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피말림의 연속이다. 실업 시기엔 절박한 심정으로 노조 집회 참석을 위해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방에서 자고 있는 네 살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 무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김씨는 일용직이 아닌 직업인이 되고 싶었다. “팀원들과 손발 맞춰서 착착착 철근이 세워질 때, 완성해놓고 나중에 검침받는 데 지적 사항이 하나도 없을 때, 낮에 함께 땀 흘리고 퇴근 후 동료와 맥주 한잔 기울일 때” 김씨는 일의 기쁨을 느꼈다. 그 일을 좀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이어나가는 게 건설노조 조합원이자 청년 철근공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김씨의 바람이다. 

김상윤씨는 건설노조 조합원이자 청년 철근공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시사IN 조남진
김상윤씨는 건설노조 조합원이자 청년 철근공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시사IN 조남진

“정부는 건설업계 지표를 통해 자주 실업률을 가늠하던데요, 현장에 가보면 내국인 청년들은 일용직 잡부가 대부분이에요. 청년층이 직업인으로서 건설 현장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공정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청년층이 제 목소리를 내면 건설 현장의 부조리와 근로조건이 많이 해결될 겁니다. 청년이 직업인으로서 건설 현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역할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탄압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대상, 직업인이자 건설기능인으로 우리를 봐주기를 바랍니다.” 김씨가 자신을 ‘조폭’과 ‘깡패’로 부르는 정부와 사회를 향해 간곡히 부탁하는 말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