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앞두고 영정행진단 참석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앞두고 영정행진단 참석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6월10일 민족민주열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600여 명이 영정을 들고 행진했다. ‘민주열사와 함께하는 시민대행진’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진 780여 명의 민족민주열사 희생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영정 사진을 든 행렬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출발해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신흥정밀 노동자였던 고 박영진(사망 당시 26세)의 여동생 박현희씨(57)가 오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박영진씨는 노조의 임금인상 투쟁 과정에서 경찰과 회사 측의 폭력적 탄압에 맞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며 분신했다. ⓒ시사IN 박미소
시민 유진우씨(28)가 장애여성활동가였던 고 최옥란(사망 당시 36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최씨는 장애문제연구회 '울림터'를 창립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공대위 활동, 장애인 이동권, 수급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정 사진을 든 유씨는 최씨와 연고는 없지만, 장애여성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투쟁한 존재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행진에 참여했다. ⓒ시사IN 박미소
시민 유진우씨(28)가 장애여성활동가였던 고 최옥란(사망 당시 36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최씨는 장애문제연구회 '울림터'를 창립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공대위 활동, 장애인 이동권, 수급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정 사진을 든 유씨는 최씨와 연고는 없지만, 장애여성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투쟁한 존재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행진에 참여했다. ⓒ시사IN 박미소
박종화씨(30)와 박미숙씨(57)가 고 박성열(사망 당시 56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종화씨의 아버지이자, 미숙씨의 남편인 박성열씨는 서울지하철공사의 파업 때 중앙간부를 맡아 두 번의 해고를 당했다. 해고 생활을 하면서도 민주노조 재건활동을 하다 2022년 9월에 사망했다. 박미숙씨는 고인이 된 남편 박씨에 대해 '평생 실천하는 노동자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시사IN 박미소
박종화씨(30)와 박미숙씨(57)가 고 박성열(사망 당시 56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종화씨의 아버지이자, 미숙씨의 남편인 박성열씨는 서울지하철공사의 파업 때 중앙간부를 맡아 두 번의 해고를 당했다. 해고 생활을 하면서도 민주노조 재건활동을 하다 2022년 9월에 사망했다. 박미숙씨는 고인이 된 남편 박씨에 대해 '평생 실천하는 노동자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시사IN 박미소
영정행진단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 마련된 제단에 영정을 올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시사IN 박미소
영정행진단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 마련된 제단에 영정을 올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시사IN 박미소
1987년 6월9일 시위 도중 최루탄에 피격 당해 7월5일 사망한 대학생 고 이한열의 영정 사진. ⓒ시사IN 박미소
1987년 6월9일 시위 도중 최루탄에 피격 당해 7월5일 사망한 대학생 고 이한열의 영정 사진. ⓒ시사IN 박미소

행렬이 멈춘 서울시청광장은 1987년 7월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노제가 열린 곳이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약 15만명이 자리를 메웠다. 36년이 지난 2023년 6월10일, 이곳에서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가 열렸다.

열사정신계승실천단원들이 제단에 영정 사진을 올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열사정신계승실천단원들이 제단에 영정 사진을 올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수사에 항의하며 최근 분신 사망한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의 영정 사진이 제단에 올라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수사에 항의하며 최근 분신 사망한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의 영정 사진이 제단에 올라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건설노조원들이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의 사진을 들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건설노조원들이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의 사진을 들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제단에 올려진 영정 사진들. ⓒ시사IN 박미소
제단에 올려진 영정 사진들. ⓒ시사IN 박미소
열사정신계승실천단원이 영정 사진을 제단에 올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열사정신계승실천단원이 영정 사진을 제단에 올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633명의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의 영정 사진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희생자들의 유가족, 당시 현장에 함께했던 이들, 그 상황을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까지. 영정 사진 앞에 모여 고개를 숙이고,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이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1991년 5월25일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숨진 대학생 고 김귀정의 어머니 김종분 여사가 딸의 영정 사진을 찾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1991년 5월25일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숨진 대학생 고 김귀정의 어머니 김종분 여사가 딸의 영정 사진을 찾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추진단장이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추진단장이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 시민이 헌화 후 영정 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 시민이 헌화 후 영정 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영정 사진 앞에 놓인 국화꽃들 ⓒ시사IN 박미소
영정 사진 앞에 놓인 국화꽃들 ⓒ시사IN 박미소
추모제가 끝난 후, 제단에 국화꽃만 놓여 있다. ⓒ시사IN 박미소
추모제가 끝난 후, 제단에 국화꽃만 놓여 있다. ⓒ시사IN 박미소

 

기자명 박미소 기자 다른기사 보기 psalms27@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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