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필씨(54)는 29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다. 1994년 대우전자에 입사해 회사 소유주가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만큼 직장 내에서 꾸준히 성과도 쌓았다. 생산라인 현장 직원으로 입사해 뒤늦게 해외영업으로 직렬을 옮겼고, 능력을 인정받아 2019년 본사 해외영업팀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최정필씨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회사는 영업손실이 누적돼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며 희망퇴직 신청자를 모집했다. 최씨는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했다. 인원을 줄여야만 회사가 살 수 있다면, 자신이 나가서라도 회사가 살길 바랐다. 경력이 길고 직급이 높아 더 이상 이직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 여겼다.

6월8일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최정필 대표(맨 왼쪽)가 퇴직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6월8일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최정필 대표(맨 왼쪽)가 퇴직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퇴직 후 반년이 지난 요즘 최정필씨는 다시 회사를 찾아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마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확성기를 든 채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이하 퇴직금연대) 대표 자격으로 간다는 것이다. 회사는 희망퇴직자에게 퇴직금뿐 아니라 위로금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재직 당시 체불된 임금조차 아직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받지 못한 연차수당, 지난해 연말정산 환급금도 마찬가지다. 최정필씨가 위니아전자로부터 받지 못한 금액은 총 2억3000만원가량이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을 시 회사가 매달 지급해야 하는 지연이자(법정 연 20%)도 못 받고 있다. “당장은 실업급여와 대출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돈마저 떨어지면 막막한 상황이다. 회사가 아무 대책도 없이 희망퇴직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퇴직금연대 측에 따르면,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퇴직자는 200여 명이다. 미지급 액수는 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월 퇴직금이 미지급되고, 연이어 지연이자마저 지급되지 않자 퇴직자들은 3월부터 퇴직금연대를 구성해 회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이 단체에 가입한 퇴직자 수만 137명이다. 최정필씨를 비롯해 평생 노동조합 활동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이 대다수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회사 건물은 물론 모기업인 대유위니아그룹 박영우 회장 자택 앞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고용노동부와 국회도 찾아갔다. 퇴직자들이 뭉치니 회사의 대응이 달라졌다. 지난 3월에는 그동안 밀린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4월에도 정상적으로 지연이자를 지급했다. 그러나 5월 이후에는 퇴직금·체불액·환급금·지연이자 지급이 다시 미뤄졌다.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김전욱 집회수석, 최정필 대표, 이창훈 홍보수석(왼쪽부터). ⓒ시사IN 이명익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김전욱 집회수석, 최정필 대표, 이창훈 홍보수석(왼쪽부터). ⓒ시사IN 이명익

지연이자의 이율이 높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도 퇴직금과 체불임금 등을 빠르게 지급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다. 그러나 위니아전자는 현재 재직자들의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니아전자 재직자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단 한 번(4월)을 제외하고 모두 월급을 50%씩만 지급받았다. 위니아전자 측이 지난해 사원들에게 공지한 바에 따르면, 2022년에 발생한 영업손실은 약 1000억원 규모다. 2020년 반짝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21년부터 다시 손실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퇴직금연대 측은 경영진의 연이은 오판으로 경영 적자가 심화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경영진의 오판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다. ‘대우’ 이름을 버리고 ‘위니아’로 이름을 통일한 까닭에 해외영업실적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2014년 당시 대유그룹은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현 위니아)를 인수했다. 2018년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한 이후에는 동부대우전자의 국내영업 부문을 위니아로 흡수시켰다. 해외영업 부문만 남은 동부대우전자의 이름을 위니아전자로 변경했다. 위니아전자 매출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는다.

언제 해결될지 아직도 모른다

문제는 해외 소비자와 현지 유통업체들에게 ‘위니아’라는 브랜드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은 해체됐지만 중동·유럽 등지에서는 여전히 ‘대우’ 브랜드가 인정을 받고 있었다고 퇴직금연대는 주장한다. ‘대우’ 상표권을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2019년 포스코대우에서 사명 변경)이 지난해 ‘대우’ 상표를 이용하는 업체들로부터 벌어들인 상표권 수익만 91억원 수준이다. 반면 김치냉장고가 주력 상품인 위니아는 해외에선 생소한 브랜드로 취급됐다는 게 영업 일선에서 일하던 퇴직금연대 측의 주장이다. 최정필씨는 “심지어 한 사우디아라비아 업체는 상표권 비용을 자신들이 지불할 테니 대우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니아전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대우’ 이름을 2020년부로 포기했다. 퇴직금연대 측은 이 결정으로 인해 해외 매출에 의존적인 위니아전자가 대규모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회원들이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위니아전자 퇴직금사수연대 회원들이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위니아전자는 남양유업 인수전에서 대유위니아그룹이 투자한 계약금 320억원을 소송을 통해 돌려받고, 멕시코 현지 공장을 매각해 체불된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계약금 소송은 언제 마무리될지 장담할 수 없고, 멕시코 공장 매각도 올해 9월이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임금과 퇴직금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퇴직금연대 역시 현재 위니아전자 재무 상태로는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이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들은 그룹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적자의 원인이 된 경영상 결정이 대유위니아그룹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반면 위니아전자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그룹 차원에서 위니아전자 문제를 해결하면 추후 업무상 배임 등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위니아전자는 체불과 관련해 회사 측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위니아전자 관계자는 “대우 브랜드를 뗀 것 자체가 경영에 큰 타격을 준 것은 아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위니아전자 주 타깃인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며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회사 차원에서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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