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충남 당진시 탑동사거리에서 한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학생을 추모하는 꽃과 글이 횡단보도 옆에 붙어 있다. ⓒ시사IN 이명익

또 학교 앞 도로에서 어린이가 죽었다. 횡단보도 위, 우회전 차량에 의해서다. 지난 11월25일 오후 3시18분께 충남 당진시 채운동 탑동사거리, 초등학생 A군(13)은 자전거를 타고 교차로 건너편 도서관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A군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려면 총 3개 구간의 위험을 뚫어야 했다. ①출발 지점에서 첫 번째 교통섬까지(5m) ②첫 번째 교통섬에서 두 번째 교통섬까지(40m) ③두 번째 교통섬에서 인도까지(6m). ① 구간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우회전 차량들이 수시로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곳이다. ② 구간은 횡단보도 길이에 비해 보행자 신호 시간이 너무 짧아 저학년 학생들이 매번 건너던 중간에 갇혀서 쩔쩔매던 곳이다. ③ 구간은 그나마 신호등도 없어 보행자가 늘 우회전하는 차량의 눈치를 살피며 건널 수밖에 없는 곳이다.

A군은 ① 구간에서 사망했다. 보행자 녹색신호였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 위를 지나갔다. 운전자는 경찰에 “아이를 보지 못했다”라고 진술했다. 부딪치고도 바로 인지하지 못해 트럭은 10m가량 앞으로 더 나아갔다. 트럭이 멈춘 지점에 자전거 두 바퀴의 동그라미 표시가 남았다.

11월26일 오후 〈시사IN〉 취재팀이 찾아간 사고 교차로에는 여전히 비슷한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살짝 경사가 진 8차선 도로에서 내려오던 우회전 차량 열 중 여덟이 보행자 신호가 떨어진 횡단보도 위를 침범했다. 차량용 보조 신호기는커녕 과속방지턱 하나 설치돼 있지 않다.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은 어제 친구 하나를 잃은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이 켜져도 바로 건너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우회전 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달려 세모꼴 교통섬으로 향했다.

ⓒ브이더블유엘

‘보행신호 시간 5초라도 늘려달라’ 했지만

사고 지점 인근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학부모 안창미씨는 “누구나 예견했던 사고다”라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늘 우회전 차량들로 섬찟했던 곳인데 결국 이렇게 사고가 나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학교 바로 옆 대형 교차로에 신호위반 꼬리물기 등 위험이 높아서, 학부모들이 예전부터 여러 번 안전 개선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동급생이던 피해 학생에게 쓴 애도 편지를 펜스 위에 붙인 뒤 횡단보도 앞에 선 6학년 김보민 양은 “나도 같은 곳에서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초록불 신호라 건너는데 차가 제 곁을 스쳐갔어요.” 김 양이 별다른 지체 없이 ① 구간을 건너 ② 구간을 지나는 도중 벌써 보행자 신호 시간이 끝나갔다. 주황색 대기 신호에 벌써 액셀을 밟고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피해 보행자들은 뛰어서 건너편 인도에 착지했다.

조상연 당진시의원은 3년 반 전부터 이 사거리에서 교통지도를 해왔다. “선거 유세를 여기서 했어요.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니까요. 그때 보니까 이 길이 너무 위험한 거예요.” 당선 후 조 의원은 녹색어머니회 깃발을 하나 얻어 일주일에 네 번 오전 8시부터 8시50분까지 횡단보도 앞에 서서 등교 학생들 안전 지도를 했다.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 급한 출근 차량들이 달려들기 전에 아이들을 인도 위에 올려놓으려고 몇 번이나 깃발을 들고 쫓아가거나 길 건너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며 채근해야 했다. “공직자든 정치인이든 누구든 권한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곳에 보행신호 시간을 5초만이라도 늘려달라, 우회전하는 차량의 과속 방지를 위한 시설물을 설치해달라 요구했어요.” 시의원의 요구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약속했지만 단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당진시 탑동사거리에는 ①~③과 같은 위험 구간이 3쌍 더 존재한다(위 지도 참조). 8차선 교차로가 사분(四分)한 각 택지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도서관, 아파트 단지가 배치돼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통행량이 많다. 동시에 이 교차로는 당진 시내와 인근 당진화력을 오가는 산업용 대형 차량을 포함해 차량의 통행량이 많고 속도도 빠른 곳이다. 이 두 조건이 만나는 도로 위에 이렇다 할 안전장치가 없다.

특히 전교생 1750여 명에 달하는 대형 초등학교가 사거리 바로 위에 있는데도 탑동사거리는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초등학교 정문에서 시작된 어린이보호구역은 A군이 사고를 당한, 학교 인근에서 가장 위험도가 높은 이 교차로 구간 바로 앞에서 해제된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가 죽었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므로 가해 운전자는 ‘민식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여기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2011년 5월27일, 2016년 4월14일 각각 10세와 11세 어린이가 이 교차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 중상(3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을 입었다(위 지도 참조).

당진시 탑동사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사고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지난 6~8월 〈시사IN〉 ‘스쿨존 너머’ 특별취재팀이 전국의 어린이 보행 사망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해가 갈수록 단일로 사고는 줄어드는 데 비해 교차로 사고는 최근 5년 사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지난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예외)였다(〈시사IN〉 제733호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기사 참조). 특히 교차로 횡단보도 내 사고, 그중에서도 교차로 우회전 차량에 의한 사고가 많았다.

우회전 후 횡단보도는 운전자와 보행자, 특히 어린이 보행자에게 동상이몽의 공간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우회전 후 횡단보도를 보행자 신호에도 지나가는 행위는 사실상 불법이 아니다. 운전자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하고, 보행자나 자전거 등이 지나가는 경우 멈추거나 서행해야 한다는 조건 정도만 붙어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운전자들이 교차로 우회전 후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지나가든 아니든 관행상 ‘그냥 통과해도 되는 구간’으로 인식한다.

초등학교 앞 사거리 교차로에서 우회전한 차량이 횡단보도 위를 지나가고 있는 모습. ⓒ시사IN 이명익

우회전 차량 823대를 조사해보니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5월11~12일 서울 시내 교차로 6곳에서 우회전하는 차량 823대를 조사해본 결과,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을 때 완전히 멈춘 차는 19.3%(159대)뿐이었다. 이 중 45대는 정지선이 아닌 횡단보도 위를 침범한 상태에서 차를 세웠다. 26.9%(221대)는 보행자에게 양보는 했지만 계속 횡단보도에 접근했다. 53.8%(443대)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나아갔다.

반면 어린이들은 학교 등에서 ‘보행자 신호등이 켜지면 길을 건넙니다’라고 배운다. 도로교통법의 모호한 조문과 운전자들 사이 통용되는 교차로 우회전의 관행 같은 것을 보행 어린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동상이몽이 만나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8~2019년 ‘차 대 사람(보행)’ 교통사고를 분석해보니 우회전 교통사고의 치사율(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은 1.6명으로 전체 평균(1.5명)보다 다소 높았다. 덤프트럭 등 사업용 자동차에 의한 우회전 보행 사고 치사율은 3.3명에 달했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18일 인천시 신흥동과 전주시 금암동에서, 8월30일 경주시 동천동 등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각각 우회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모두 이번 당진시의 A군 사고처럼 가해 차종이 덤프트럭이나 레미콘 트럭 같은 대형 산업 차량이었다. 운전자들은 모두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획기적인 개선책이 실현되지 않는 한, 비슷한 사고는 어디선가 또 발생할 것이다.(지면 기사를 마감한 후에도 똑같은 유형의 어린이 사망 사고가 계속 추가되었다. 지난 12월4일에는 경남 창원시 명서동에서 B군(11)이, 12월8일에는 인천시 부평구에서 C군(9)이 보행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목숨을 잃었다. 모두 교차로를 우회전하는 화물차량에 의해서다.)

A군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12월1일)까지, 사고지점의 도로 환경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과 시청 측은 신호체계 보완 등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은 아직 나온 게 없다.

*‘스쿨존 너머’ 특별 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기자명 당진·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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