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가운데). ⓒ연합뉴스

〈시사IN〉·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확인한 국내 반중 정서의 대전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반중 또는 친미 정서를 부채질하는 분위기다.

국제정치경제학자인 박홍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 연구교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지난해 펴낸 〈미중 카르텔〉을 통해 미·중 관계를 자본주의 국제질서 안에서 경쟁하는 ‘카르텔 관계’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중 양자택일’ 역시 텅 빈 논쟁일 수밖에 없다. 박홍서 교수에게 국내 반중 정서와 미·중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미국과 중국에서 생산되는 논리로 국제관계를 봐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반중 정서가 심각해진 이유가 뭘까?

이것은 사회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몫이라는 전제로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다. 우선 중국이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다. 코로나19 이후 주요국의 반중 여론이 일제히 높아졌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도 주효했다. 트럼프는 팬데믹 초기에만 해도 중국이 대처를 잘한다고 칭찬하다가 미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하자 중국을 때리면서 미국 내 정치용으로 활용했다. 젊은 세대의 반중 정서는 확실히 심각하다.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사업하고 무역하고 공부하면서 이득을 취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위상이 변하면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어쩌면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소외감이 중국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론이 반중·친미로 모아지고 있다.

이념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체와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력과 군사력은 물론 소프트파워까지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에는 중국에 대한 기대가 컸다.

중국의 성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 그랬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미국의 달러 패권 체제에 올라타서 성장한 나라다. 프랜차이즈 식당에 비유하면 미국은 레시피를 장악하고 있는 본점이고, 중국은 그대로 따라 하는 지점에 불과하다. 미국이 맡아온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이나 문제해결 능력을, 중국은 보여준 적이 없다. 중국식 사회주의란 중국식 신자유주의였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그러했다. 1989년의 톈안먼 사건은 개혁·개방 이후 불거진 불평등, 인플레이션, 부정부패 등에 대한 시민 저항이었다.

미·중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신흥 강국과 기존 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유령이라고 했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함정’이다. 지금 미·중은 상호의존적이다. 미국의 달러와 기술을 이용해 중국이 세계에 수출하는 구조로 세계경제가 굴러간다. 디커플링(결별) 가능성도 크지 않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 때문에 산업자본에서 디커플링은 가능하지만, 금융자본은 다르다. 무역전쟁 이후에도 미·중 간 금융거래는 엄청나게 늘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투키디데스의 함정 논리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미국은 글로벌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언제나 적이 필요하다. 지금 미국에게 중국은 국방예산을 늘리고 일본·한국·아세안 국가를 관리할 수 있는 명분이다.

박홍서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반중 정서를 선동해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세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시사IN 신선영

미·중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면, 국내의 친중·친미 이슈를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이나 중국이나 자본주의 질서의 안정을 원한다. 트럼프 정부 때 시진핑이 오히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요구했다. 2017년 사드 배치 논란으로 한국이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양국이 협력해야 할 이유는 1000가지에 달하지만 깨뜨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때리기가 일종의 전략자산이고, 트럼프는 말하자면 배드캅(badcop)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친중·친미 논쟁은 미국과 중국에겐 소극(笑劇)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에 진짜 친중 세력이 있기는 한가? 있다면 한·미, 한·중 균형론자 정도일 것이다.

한국에 중국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역사적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는 중국이 불안할 때 벌어졌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한국전쟁이 모두 대륙이 혼란할 때 벌어졌다. 중국 정세가 불안할수록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본다. 핵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때문이다. 북한을 때리면 중국이 나서니까. 한반도 평화까지는 아니어도 안정을 위해 중국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미·중 외교를 ‘널뛰기 외교’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 전승절 행사에 미국의 동맹국 중 유일하게 참석해 미국을 자극했다. 한 달 뒤에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확인하면서 곧바로 중국을 배신했다. 2016년 사드 배치 논란은 그 연장선에서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이 위안화의 허브가 되겠다”라는 말까지 하지 않았나. 널뛰기 외교였다.

당시 사드 배치 문제가 현재 반중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홍콩, 타이완 문제를 자신의 주권 문제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권 문제라고 해야 한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되 미국의 선봉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중국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정권이 한국의 미사일 지침을 해제한 건 영리하다. 주권 문제니까 중국이 아무 말도 못하지 않나.

국제정치경제학자로서 국내 반중 정서를 바라보는 소회는?

보수는 반중을 상품화하고, 진보는 반일을 상품화한다. 진정성 없는 돈벌이다. 그런데 이것이 풍선효과처럼 현실에서 부풀어 오른다. 중국이 문제를 제공한 건 분명 있다. 그러나 팩트를 정확히 보자. 중국이 한반도에 악마적 행동만 했던가. 반중을 선동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세력을 경계하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목표를 둬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반중 정서가 심각하니까 중국과 경제협력마저 끊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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