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 주민들이 성주 사드 운용 기지로 통하는 도로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마을 초입부터 걸려 있는 무수한 ‘사드 반대’ 현수막들이 무색해질 만큼의 적막이었다. 8월22일 정오 무렵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는 행인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2㎞가량을 올라가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운용 기지로 향하는 도로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응축된 곳이라고 볼 만한 단서는 거의 없었다. 부식 등 물자를 실어 나르는 대형 차량들만이 도로를 지나 사드 기지로 향하고 있었다.

8월23일 오전 5시50분, 마을회관 앞 도로의 부산스러움이 전날의 적막과 대조를 이뤘다. 소성리 할머니 9명과 원불교 신자들, 각지에서 연대하러 온 이들이 모여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성리 주민들은 미군 관련 인력과 장비가 기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작년 1월부터 도로에 앉아 집회를 벌여왔다. 시작할 당시 주 1회였던 집회는 현재 주 3회(화·수·목요일)까지 늘어나 161번째를 맞았다. 오전 6시 정각이 되자 할머니들은 익숙한 듯 의자와 피켓을 들고 도로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집회를 주도한 이는 사드철회소성리종합상황실 대변인으로서 2017년부터 소성리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강현욱 원불교 교무였다. 집회 시작을 알리는 구호로 강 교무가 “평화!”를 외친 직후, 바로 마을의 장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8월23일 소성리 주민 도금연 할머니 등이 미군 관련 인력과 장비가 기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도로에 앉아 집회를 시작하자, 경찰이 할머니를 의자째 들고 폴리스라인 바깥으로 옮겼다. ⓒ시사IN 이명익

매주 이어지는 집회에 익숙해진 것은 소성리 주민만이 아니었다. 경찰 역시 능숙한 솜씨로 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한때 골프장 캐디들의 숙소로 쓰였던 건물에 집합해 있던 경찰들은 집회가 시작되자 폴리스라인을 치고 해산 명령 방송을 시작했다. 소성리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 앞 도로에 행진 집회 신고를 했지만 이번에도 제한 통보를 받았다. 경찰이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드 기지로 향하는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다시금 알리며 “해산하지 않을 시 형사처벌될 수 있고, 경찰력을 투입해 직접 해산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6시45분 경찰의 직접 해산이 시작됐다.

161번째 반복되는 집회이지만 강제로 해산당하는 경험은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경찰은 5명이 한 조를 이뤄 집회 참여자들을 의자째 들고 폴리스라인 바깥으로 옮겼다. 옮기려는 경찰과 버티려는 할머니들 사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들지 마라! 내가 일어나서 갈 끼다.” “내를 빼지 말고 저기 저 사드나 빼라!” 경찰에 둘러싸인 소성리 할머니들이 외쳤다. 그러나 소란도 잠시, 이내 모든 집회 참여자들이 폴리스라인 밖으로 옮겨지고 도로는 말끔히 비워졌다. 마지막으로 의자에 실려 옮겨진 도금연 할머니(85)가 한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성리로) 시집을 오지 말 낀데. 옛날에 아(아이) 키울 땐 순사 온다 카면 아도 안 울었는데 이제는 순사도 너무 흔하다.”

텃밭에서 오이와 가지를 따서 집으로 향하는 도금연 할머니.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서 65년을 살았다. ⓒ시사IN 이명익

스무 살에 시집와 65년을 살아온 도금연 할머니에게 소성리는 태어나지만 않았을 뿐 고향이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롯데 골프장(현 사드 기지 부지) 손님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며 3남 2녀와 손녀들까지 뒷바라지했다. 시조부모의 묘 역시 사드 기지 안쪽에 위치해 있다. 그랬던 도금연 할머니가 사드 반대 운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국방부가 성산포대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2016년 7월부터였다. 현재 그는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소성리 주민 중 최고령자가 됐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도금연 할머니의 하루는 사드가 성주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계속됐을 그의 평범한 일상을 어렴풋이 보여줬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감자를 썰고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고,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집 바로 옆 조그만 밭에는 각종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는 텃밭에 가서 무엇이 충분히 영글었는지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오늘의 수확물은 가지 4개와 오이 3개. “원래 촌에서는 이렇게 먹어. 촌에선 고기 말고는 돈 들 게 없으니까.” 재빠른 손놀림으로 가지나물과 오이무침을 만들며 도금연 할머니가 말했다.

7년의 시간은 도금연 할머니의 일상을 선연히 바꿨다. 소성리 할머니들은 집회 시작 전 서로의 지난밤 잠자리를 살펴 물었다. 집회에 참석하기 전날 밤이면 긴장과 불안감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할머니들에게 우울증 증세가 찾아와 단체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도금연 할머니는 두 달 전 남편을 떠나보냈다. 남편이 원래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하다가도 도금연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할부지들은 골병이 들어가 다 죽어뿟다. 7년이나 이카면 살겠나.”

경북 성주군 소성리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에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해 세워져 있다. ⓒ시사IN 이명익

1년, 또 1년…그러다 7년이 지났다

싸움을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1년, 또 1년, 어떻게든 막아내려다 보니 7년이 지나가버렸다. “제일 처음에 동장이 얘기했다. ‘아이고, 이건 싸우는 것도 아니라요. 3~4년은 다 넘어가’ 이렇게 해쌌더라고. 그래가 ‘아이고, 사람 죽이겠다. 거까지 우예 싸우노’ 했다. 이젠 동장이 ‘내 말이 맞제’ 이칸다.” 그럼에도 여전히 싸우는 이유에 대해 묻자 도금연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사드 빼야지. 그리고 외지 사람들도 이렇게 오는데 마을 사람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사드 기지로 가는 육상 출입로 전면 확보(사드 배치 정상화)를 앞두고 소성리의 긴장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8월11일 대통령실은 “운용 측면에서 8월 말 정도에는 (사드 기지가) 거의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도 한국군 관련 물자들은 자유로이 출입하고 있지만 미군과 미군 관련 물자의 출입은 소성리 주민들이 막아서고 있는 상태다. 어쩌면 소성리의 마지막 결전이 될지도 모를 사드 기지 정상화를 앞두고 강현욱 교무는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도 저희 행동은 똑같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저희는 평화를 말하면서 한 번도 폭력을 가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 몸을 던지는 것뿐입니다.”

기자명 성주/글 주하은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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