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부동산 기업이 되었다. ⓒREUTERS

헝다그룹(恒大集團·Evergrande Group)의 이름은 ‘항상 크다(恒大)’는 뜻이다. 잘나가는 기업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명명했겠지만, 역설적으로 헝다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부동산 기업이 되었다. 부채 규모가 무려 1조9700억 위안(약 360조원)에 달한다. 빚 많은 기업도 잘나갈 수 있다. 그러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미가 보이면 해당 기업은 물론 관련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패닉이 확산된다.

헝다그룹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 9월 말에 두 차례 예정되어 있었던 1억3000만 달러 규모의 이자 지급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신호가 추석 연휴 직후(9월23일)에 시장으로 타전된 것이다. 헝다그룹이 무너져 ‘중국판 리먼 사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홍콩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출렁였다.

창업주 쉬자인은 1996년 광저우에서 헝다를 설립했다. 헝다그룹은 대출을 받아 지방 소도시에서 토지사용권을 확보한 뒤 저가 소규모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중국 부동산업계에서 2위까지 올랐다. 매년 60만 채가량 집을 지었고, 지난해 매출은 1100억 달러(약 130조2400억원)를 기록했다. 미국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122위까지 올랐다. 헝다에 소속된 인원은 20만명이 넘고, 협력업체 직원은 380만명에 달한다. 쉬자인은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과 함께 중국 부호 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배당금으로 500억 위안(약 9조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기업으로 출발한 헝다그룹은 2016년부터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전공 분야’인 부동산에서 전기차, IT, 테마파크, 생수·식료품 사업, 프로축구단 등 다양한 분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부채가 더욱 빠른 규모로 늘어났다. 최근 헝다그룹의 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56배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부채가 헝다그룹의 발목을 잡게 된다.

헝다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것은 중국 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시장 규제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중국 정부는 부동산업체들이 지나친 빚을 지지 못하게 강력히 규제하겠다며 3대 ‘레드라인’을 제시했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 70% 이하’ ‘자본 대비 부채비율 100% 이하’ ‘단기차입금 대비 현금보유 비율 100% 유지’ 등이다. 다른 메이저 부동산 기업들은 중국 정부 정책에 발맞춰 부채를 줄여나갔는데, 헝다그룹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6월, 헝다그룹은 중국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지키지 못해 추가 대출이 금지되었다. 또 중국 정부가 주택 구입 희망자들에 대한 대출까지 규제하면서 주택 판매 환경도 나빠졌다. 이에 따라 헝다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신용평가 회사들이 헝다그룹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의식주→문화생활→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쉬자인 헝다그룹 창업주. ⓒAFP PHOTO

헝다그룹이 이처럼 파산 직전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헝다는 대마불사라고 할 정도로 큰 기업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정부가 헝다그룹을 구제할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중국 정부가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세우며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헝다그룹의 구제 가능성을 낮게 보게 하는 요인이다.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는 공동부유는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중국식 사회주의를 관통하는 기본사상이다. 1955년 마오쩌둥이 농업집단 경영 정책을 발표하며 처음 언급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선부론(先富論)’이 등장했다. 선부론은 모두가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일부 지역 및 인민이 노력과 성과에 따라 더 많은 부를 가지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에서 이 선부론은 공동부유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에 불과하다.

시진핑 주석은 공동부유에 대해 몇 차례 언급했다. “우리의 책임은 개혁·개방을 이어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대중의 생활 어려움을 해결하며 계속해서 공동부유의 길을 가는 것이다(2012년 11월).” “2035년까지 전체 인민 공동부유를 위한 명확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2021년 3월).” 지난 8월17일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공동부유 촉진’을 직접 강조했다.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므로 높은 질적 발전 속에서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공동부유론을 들고 나선 것은 중국공산당의 내적 논리로 보자면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은 사회발전 단계를 3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가 온포사회(溫飽社會)다. 기본적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사회를 뜻한다. 1인당 GDP가 1000달러를 돌파한 2000년 전후에 온포사회를 달성한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소강사회(小康社會)다. 일정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정도의 여유가 확보된 사회를 뜻한다. ‘샤오캉’이라고 부른다. 1921년에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소강사회 달성’을 첫 번째 100년의 목표로 삼았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서 중국의 첫 번째 100년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실현했고,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했다. 1인당 GDP가 1979년 184달러에서 2019년 1만262달러로 올랐고, 1990년 7억5000만명 이상이던 빈곤인구가 2020년에 거의 사라졌다고 본 게 그 근거다.

그다음 목표는 ‘대동사회(大同社會)’다. 1949년에 건국한 중국이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경제력·군사력에서 세계 1위인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말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다른 말이 ‘대동사회(모든 인민의 공동부유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이룩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소강사회를 달성했다고 선포했으니 그다음 단계는 대동사회이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부유를 추진한다는 논리다.

중국 정부가 공동부유를 내세운 배경에는 불평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으로 2019년에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2020년 5월, 리커창 총리가 “중국인 1인당 연간 가처분소득은 3만 위안(약 513만원)에 달하지만 14억 인구 중 6억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의 불평등 문제는 지니계수에서도 확인된다. 2019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중국의 지니계수는 0.465였다. 1997년에 0.370에서 상당히 오른 수치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함을 뜻한다.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0.5 이상이면 극단적 사회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분배 구조가 더 악화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지역 간 격차도 크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중국 도시 지역의 가구당 가처분소득은 4만3834위안으로 농촌 가구 1만7131위안의 2.6배였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GDP 최상위 지역(광둥)과 최하위 지역(티베트)의 경제 규모 차이는 58배에 달한다.

시진핑 정부는 민영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공동부유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했다. 소수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커지며 불공정 거래 등 독과점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금융 당국을 공개 비판한 직후인 11월에 마윈 등 앤트그룹 경영진을 ‘소환’했다. 곧이어 앤트그룹의 홍콩 증시 상장(IPO)이 취소되었다. 올해 4월엔 반독점법 위반으로 알리바바에 182억 위안(약 3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시진핑 주석(가운데)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7월1일 ‘소강사회’를 실현했다고 밝혔다. ⓒEPA

무질서한 붕괴를 방치하지는 않을 듯

중국 당국은 지난 7월, 초중고 대상 사교육 기업의 영리행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교육 불평등을 확대하고 출산율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8월에는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규제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시간 동안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부유의 특징 중 하나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공동발전’이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게임이 정신문명을 해친다’라고 본다. 부동산 기업이나 주택 구입자에 대한 대출을 규제하는 것도 공동부유 정책 기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공동부유 촉진을 강조한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에서 공동부유 달성을 위해 1차(계층·지역 간 소득격차 축소), 2차(사회복지 등 정부 이전소득 확대), 3차(기업 등 비정부 부문의 기여) 분배를 통해 격차를 줄이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여기에서 ‘3차 분배’가 눈에 띈다. 부유층과 기업의 ‘사회 환원’을 공동부유의 한 방편으로 제시한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 대표 기업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9월18일 중국의 IT 기업 텐센트는 500억 위안(약 9조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도 100억 위안(약 1조800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홍콩 일간지 〈밍바오(明報)〉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알리바바 등 중국의 6대 빅테크 기업은 2000억 홍콩달러(약 30조원)를 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정부가 헝다그룹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구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중국의 주택가격 상승은 빈부격차 확대의 원인으로 꼽혔고, 헝다그룹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배경으로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헝다그룹은 자회사가 보유한 중국 성징은행(盛京銀行) 지분을 매각하는 등 자금을 확보해 급한 불을 끄고 있다. 그러나 ‘헝다 리스크’는 이어질 전망이다. 헝다그룹은 내년에만 74억 달러(약 8조8000억원) 규모의 만기채권을 상환해야 한다. 헝다그룹은 280여 개 도시에서 1300여 개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헝다의 선분양 아파트를 구입한 입주 예정자도 1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차기 지도부 선출(내년 10~11월 예정)을 앞둔 중국 정부로서는 ‘헝다그룹의 무질서한 붕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기 차원에서 자산매각 등 자구 노력을 우선하게 하고, 경제 전체로 위험이 확대되는 것을 정부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대응 시나리오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공동부유라는 패러다임을 염두에 두고 중국 정부가 관여하는 구조조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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