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10월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던 미결수 12명이 호송 버스를 장악하고 탈출해버린 황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철사로 수갑을 풀고 일제히 교도관을 습격해 제압한 뒤 권총 1정과 실탄 5발, 영치금 125만5000원까지 탈탈 털어 갔다. 그중 4명은 일당을 이뤄 서울 시내 가정집 곳곳을 침입했다. 다행히 그들은 흉포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폭력이나 위해를 가하지 않고 얌전히 숙식을 해결한 뒤 떠났으니까. 그런데 10월15일, 그들이 침입한 집의 가장이 탈출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사건은 역사에 남을 인질극으로 비화되고 말았어.
주범 지강헌을 비롯해 탈주범 4명은 그 집 딸의 목에 식칼을 들이대고 권총을 쏘며 경찰과 대치한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강영일이 나섰어. “영등포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 나라의 법이 이렇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사건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고 두고두고 대한민국 영세 불변의 진리로 운위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렇게 등장했단다. 범인 두 명이 자살하고 한 명은 사살되고 1명이 체포되면서 인질극은 끝났다.
지강헌 등은 대관절 왜 위험천만한 탈주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일까? 거기에는 역시 황망한 사연이 있어. “12명의 탈주자 중 지강헌, 손동완, 김동련은 구속 전 자신들이 턴 귀금속과 달러 등 억대의 금품을 상자에 담아 서울 우이동 도봉산 숲속에 묻어두었고(〈중앙일보〉 1988넌 10월12일)” 이 보물을 찾기 위해 탈주했다는 거야. 더 황망한 사실은 이 위치가 적힌 보물 지도를 안면 있는 교도관을 통해 자신들의 가족에게 전달했고, 이 교도관은 그 지도를 들고 재소자 가족과 함께 보물을 찾아 헤맸다는 사실이지. 즉 교도관이 장물 취득 노력에 적극 가담해서 범인들이 제공한 지도를 들고 사방을 삽질하고 다닌 거야. 감시를 소홀히 해서 대량 탈주 사태를 야기한 것도 모자라 범인들이 준 보물 지도를 들고 ‘뺑뺑이’ 돌았던 교도관까지 있었으니 교정 당국은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되었어.
그런데 자수한 김동련이 보물 운운은 교도관들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탈주범들의 보물 얘기는 ‘사실무근’으로 일단락된다. 탈주한 뒤에도 가족에게 “누군가 보물을 가져갔다”라고 알린 정황 등 미심쩍은 구석도 있었으나 일단 지강헌 일파의 보물은 ‘없던 일’이 되었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1988년 지강헌 사건의 인질들이 만들었다는 보물 지도’가 나타나(정확히는 그렇게 주장되는 것이겠지)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현혹시킬지도 몰라. 지난 수십 년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발생했으니까 말이야.
우리나라뿐 아니라 타이완, 필리핀 등에서도 보물찾기 소동으로 유명한 인물 중에 일본군 장성 야마시타 도모유키라는 사람이 있어. 사방의 보물을 긁어모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전쟁 후 전범으로 사형당한 그가 숨겨놓았다는 보물은 아시아 각국의 보물찾기꾼들의 영혼을 빼앗았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어. 1976년 9월24일 〈동아일보〉에는 진해 앞바다의 중죽도 정상에서 보물을 찾아 헤매는 박 아무개씨가 나온다. 그에 따르면 야마시타 대장이 중국에서 긁어모은 보물을 중죽도 정상에 묻었다고 해. 박씨는 20년 동안 중죽도를 파헤쳤지만 안타깝게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어. 부산 감만동 일대의 옛 일본군 잠수함 기지에 엄청난 금괴가 묻혀 있다는 ‘보물 지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사람도 수십 년간 한두 명이 아니야. 이처럼 사람들의 ‘보물’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어.
1999년께에 앞서 말한 야마시타 대장의 금괴를 일본으로 옮기던 ‘쾌창환호’가 군산 앞바다에 침몰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한 기업이 이를 인양하겠다며 투자를 끌어모았지. 그들의 광고 내용은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 사람들의 욕심 밑바닥을 긁었다. “쥐꼬리만 한 은행 이자 가지고 언제 돈을 모으는가.” 이 보물 사냥꾼(?)들은 “군산 해저 보물선 인양사업에 돈을 투자하면 투자일로부터 4일 후에 투자 원금 20%를 지급하고 4일 간격으로 6차례에 걸쳐 24일 만에 투자 원금과 배당금 20%, 보상금 10% 등 모두 130%를 지급하겠다고 속이는 수법(〈매일경제신문〉 1999년 10월14일)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이들은 전국 8개 지점에 점조직 형태의 영업사원을 두고 투자자를 더 데리고 올 경우 일정액의 수당을 제공하는 피라미드식 수법까지 동원했어. 보물찾기에 뛰어든 투자자는 무려 1140명, 피해액은 179억2000만원에 달했다.
“정말 보물이 있는 줄 알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뒤에도 군산 앞바다 보물선에 대한 집착은 가실 줄을 몰랐다. 2000년 군산 앞바다에서 보물을 싣고 가다가 침몰했다는 쾌창환호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지. 그러나 이 역시 사기로 드러나고 말았어. 쾌창환호를 찾았노라고 장담하던 조 아무개씨는 인양에 성공할 경우 금괴 지분의 17%를 주겠다고 속여서 투자자 최 아무개씨에게 7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지. 그는 쾌창환호의 위치도 모르는 상태에서, 발굴 작업이 90% 진척돼 조만간 인양할 것이며 그 배에 실려 있는 금괴가 1조3000억원이라고 뻥을 치고 다녔다(〈동아일보〉 2002년 2월8일).
이렇게 말하면 멍청한 사람들이 사기에 넘어간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진도 죽도 보물선 사건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기도 했던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는 2002년 진도 부근의 죽도 앞바다에서 보물의 위치를 ‘거의’ 확인했다는 보물 탐사자들을 만났고 거기에 홀딱 넘어갔다. 보물이 발굴되면 국고 귀속분과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중 지분 15%까지 약속받은 이형택은 국정원과 해군을 찾아다니며 “IMF 시대 국고를 채울 보물찾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하지만 거절당했어.
그러자 이형택은 삼애인더스 대표 이용호라는 이를 끌어들였어. 이 사람은 “보물 탐사를 주가조작의 재료로 삼아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을 울리고 1054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기는(〈시사저널〉 2002년 2월2일)” 사기 행각을 벌였고, 이형택은 ‘이용호 게이트’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어. 이용호는 국정원이 인공위성으로 보물을 확인했다는 등 달콤한 입소문들을 내며 주가를 조작했고 개미 투자자들은 그 가짜 꿀에 달라붙어 경을 치고 말았지. “죽도 앞바다에 정말 보물이 있는 줄 알았다. 보물이 나오면 나라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는 이형택 역시 구속됐고 실체 없는 보물은 또다시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한 보물이 코앞에 있고 그것을 찾을 지도도 있는데, 여기에 네 돈 얼마만 얹으면 100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 귀에 캔디’ 같은 속삭임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애먼 놈들의 배를 불렸다. 실제로 보물이 있다고 확신한 사람들은 자업자득일 뿐이겠으나 그들의 탐욕은 주변에 전염되고 결국은 그 탐욕을 활용하는 사기꾼들의 발호를 가져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낳았지. ‘보물’이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피를 끓게 만든 마술 같은 단어였단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단어이기도 하겠지. 누군가 탐낼 만한 보물을 모았다는 건 빼앗긴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일 테니까.
이렇게 한 서린 ‘보물’을 탐한다는 건 그리스 신화 속에서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죽음으로 향했던 뱃사람들을 따르는 일이 되기 십상이겠지. 적어도 보물을 둘러싸고 세이렌 같은 사기꾼들이 사람들의 귀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인간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쉽지 않겠지만.
-
중동 특수와 ‘생이별’의 틈으로 날아든 제비족의 전성시대
예전에 네 삼촌 집을 방문할 때 엘리베이터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던 거 기억나니?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지 않고 격층으로 서서 원하는 층에 가려면 계단 하나를 오르내려야 했던 구조 ...
-
도굴꾼들의 기승이 수그러든 적은 없었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국보 제119호(정식 명칭은 ‘금동연가칠년명 여래입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연가(延嘉·중국 역사에 없는 연호) 7년 기미년 고려(고구려...
-
‘사랑하라’ 교리 따라 병역 거부한 젊은이가 받은 가혹한 형벌
헌법 제37조 2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
-
우리에게도 ‘밀수의 역사’가 있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여수 앞바다까지
1997년,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한국에는 금모으기 운동이 그야말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국난 극복이 취미”라는 우스갯소리에 걸맞은 국민...
-
가짜 도전자 상대로 열린 세계 타이틀매치
한국 프로복싱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홍수환·유제두·염동균·박찬희·김성준·김태식·장정구·유명우 등 복서들 이름을 지금도 줄줄 외는 걸 보면 아빠도...
-
담뱃값 얼마인지, 메밀국수 어떻게 먹는지, “그거 모르면 간첩이지”
이 지면에서 세계사 속의 스파이 얘기를 몇 번 한 것 같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소련 스파이로서 일본의 고급 정보를 속속들이 캐내 소련에 전달하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