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9월7일 정주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IBF 플라이급 타이틀매치. 권순천 선수(왼쪽)가 승리했다. ⓒ연합뉴스

한국 프로복싱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홍수환·유제두·염동균·박찬희·김성준·김태식·장정구·유명우 등 복서들 이름을 지금도 줄줄 외는 걸 보면 아빠도 열렬한 권투 팬이었다 싶구나. 1980년대 초반, 세계 프로복싱의 양대 산맥이던 WBA와 WBC 사이에 새로운 단체 이름이 끼어들었어. ‘IBF’ 국제복싱연맹이었다. 이로써 같은 체급에 세 명의 ‘세계 챔피언’이 존재하게 된 거지.

세계 챔피언에 목말라 있던 한국 복싱계는 초창기 IBF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그렇게도 험난했던 챔피언 고지에 뻔질나게 태극기가 꽂히기 시작했어. 심지어 한국 선수들끼리 세계 타이틀전을 벌이는 진귀한 풍경도 여러 번 펼쳐졌으며, 챔피언벨트의 값어치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갔지. 잠깐 여담을 덧대면,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으레 성냥을 사용했고, 은빛 미제 라이터가 뇌물성 선물로도 이용되던 시절, 혜성처럼 나타난 일회용 라이터가 있었다. ‘불티나’라는 상표였어. IMF 사태를 전후해 중국산 싸구려의 인해전술에 침몰하고 말았지만, 불티나의 로고는 한 권투선수의 트렁크에 쓰인 반짝이 글씨로 아빠의 기억 박물관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그 트렁크를 입은 이가 IBF 플라이급 챔피언 권순천이었어.

IBF 플라이급 챔피언이 되어 기세 좋게 3차 방어에 성공한 권순천은 1984년 머나먼 나라 콜롬비아에서 온 상대와 4차 방어전을 치르게 돼. 상대의 이름은 알베르토 카스트로.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으며 KO율도 70%를 넘는 하드 펀처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는 지루했어. 남미 특유의 끈끈함은 있었지만 커리어다운 파괴력은 간데없이 링 사이드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권순천은 헉헉대고 따라붙어 카스트로에게 계속 주먹을 날렸다. 그러다가 경기 종반 권순천이 날린 회심의 레프트가 카스트로의 턱에 꽂혔고 카스트로는 맥없이 무릎을 꿇어버렸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권순천이, 까다로운 선수였노라며 카스트로를 평한 건 그렇다고 칠 수 있어. 자신에게 패배한 상대를 칭찬하는 승자의 미덕을 과시하는 것이려니 했지. 그런데 경기를 주선한 프로모터 전호연 극동프로모션 대표가 극구 카스트로를 칭찬하는 건 좀 귀에 거슬렸다. 문제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불거져서 네이팜탄처럼 터지기 시작했어.

경기 며칠 뒤 중남미 현지에서 외신이 날아들었다. “한국에서 타이틀전을 치렀다는 IBF 세계 랭커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한국에 간 적이 없다.” 아니 그럼 한국에 와서 시합도 하고 훌륭한 복서라는 칭찬도 받은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어디 사는 누구란 말이냐. 연이어 외신이 날아왔단다. “한국에서 경기를 한 선수는 카라발로 플로레스이고 진짜 카스트로는 황당해하고 있다.” 즉 가짜 도전자를 상대로 세계 타이틀매치가 벌어졌고, 수천 명이 표를 사고 KBS가 중계하는 가운데 수백만 명이 경기를 지켜보며 열광했던 거야.

불운이라기보다 탐욕의 결과 아닐까

1984년 9월11일 자신이 진짜 카스트로라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연 플로레스 선수(왼쪽). ⓒ연합뉴스

프로모터였던 전호연 대표나 가짜 혐의를 받은 선수와 그 매니저 등은 입을 모아 권순천의 상대가 ‘진짜 알베르토 카스트로’라고 우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짜 알베르토 카스트로 측이 WBA 등 국제기구에 정식 항의를 한 마당에 버틸 수도 없었지. 결국 ‘한국에 온 알베르토 카스트로’가 입을 열었다. “저는 카라발로 플로레스입니다.” 전호연 측은 자신이 콜롬비아 측에 속았다고 주장했고 이는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어. 다른 선수와의 시합 때문에 한국에 왔던 페루인 매니저 토레스는 권순천과 카스트로의 대전 계약을 맺고 돌아갔는데, 카스트로 측은 권순천과의 대결에서 승산이 없고 대전료가 싸다는 이유로 대전을 거부해버렸어. 그러자 매니저 토레스는 가짜 도전자를 내세우기로 해. “진짜 카스트로의 사촌 형인 아만시오 카스트로를 끌어들여 선수 경력증을 가짜로 만들고 알베르토 카스트로의 선수 자격증에 플로레스 선수의 사진을 바꿔 붙여 진짜 카스트로 선수인 것처럼 한국권투위원회에 제출(〈조선일보〉 1984년 9월16일)”한 거야.

‘한국 프로복싱의 대부’라고까지 불리던 전호연은 남미에서 온 복싱 사기단(?)과 더불어 구속된다. 플로레스와 매니저 등은 곧 풀려나 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전호연은 근 1년 동안 옥살이를 했지. 출감 후 그는 “플로레스가 가짜 도전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가짜 복서 사건으로 매스컴 등 전국이 시끄러우니까 청와대에서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라고 주장했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아빠는 그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었다고 생각해. 경기가 열리기 전 이 엽기적인 사기극을 중단시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야.

우선 플로레스가 가지고 온 여권에는 도전자 알베르토 카스트로가 아닌 다른 이름이 버젓이 찍혀 있었다. 중계 주관 방송사인 KBS도 이 사실을 감지했고, 프로모터 전호연도 알고 있었으며, 경기를 감독하고 주최하는 한국권투위원회도 파악하고 있었어. 그러나 가짜 카스트로의 프로모터는 그가 진짜 카스트로라고 바득바득 우겼고 한국권투위원회와 전호연은 그 주장의 진실성을 캐기보다 당장 다가온 시합과 이미 팔려나간 입장권, 그리고 유사시 발생할 손익계산서에 더 신경을 썼던 거야.

KBS와 한국권투위원회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구차한 공방전을 벌이는 와중에 전호연 프로모터는 “인생은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중앙일보〉 1984년 12월24일)”라는 한탄 속에서 감옥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정말 운만 나빴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아. 그는 1976년 9월11일 동양 라이트급 타이틀매치를 개최하면서 가짜 필리핀 도전자를 내세웠다가 진짜 선수의 얼굴을 알고 있던 관중이 고발해 경찰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가짜 도전자 사태가 불거진 뒤에는 국내로 불러들인 선수들의 대전료를 가로채 사기 혐의로 기소중지 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어. 가짜 도전자 사태는 불운이라기보다 탐욕과 관성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피해는 엉뚱한 쪽으로 돌아갔다. 한때 IBF에 열렬히 ‘올인’하며 대량생산된 챔피언들의 시합 중계료를 알뜰히 챙기던 한국권투위원회가 180° 태도를 바꿔 IBF 왕따 작전에 나선 거야. 그 방법은 실로 졸렬했다. 국내에서 IBF 시합을 금지해버린 거지. 정부의 외화 절감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이었지만 WBC와 WBA의 챔피언벨트를 두르고 있던 장정구와 유명우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IBF 표적 제재였지. IBF 타이틀전이라면 도전도, 방어전도 국내에서 치를 수가 없었다. 피땀 흘려 샌드백만 두들긴 공으로 조금 볼품이 없긴 하지만 한국권투위원회가 인증한 세계 기구의 챔피언벨트를 두르고 있던 선수들은 창졸간에 국내에서 타이틀전을 할 자격이 없는 얼치기로 전락했다. 그들이 IBF를 만든 것도 아니었고 전호연을 지지한 것도 아니었건만 한동안 국내에서는 시합을 할 수 없었다. 사기는 왕 서방이 치고 열심히 재주넘은 곰들이 매를 맞게 된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우리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기 범죄가 벌어졌지만 ‘가짜 세계 타이틀매치’는 가히 챔피언급으로 남아 있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