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국민이 그의 KO승에 열광했고, 챔피언 벨트가 허리에 둘러졌어. 적어도 그는 그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그날의 화려함과 잔인할 만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칠흑의 연속이었단다.
요즘은 소매치기라는 범죄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만 옛날 소매치기는 경찰서마다 전담반이 있을 만큼 흔하고도 골치 아픈 범죄였어. 신용카드 같은 게 없어서 누구나 지갑에 현금을 두둑이 넣어 가지고 다녔던 시절, 소매치기들은 귀신도 놀랄 만한 재주를 발휘하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칼로 찢고 지갑을 털었어. 김성준은 그 세계에서 ‘황금 손’이었다고 해. 걸출한 소매치기 실력으로 한번 거리에 나서면 수십만원은 예사로 훑어왔다고 하니까(당시 수십만원은 요즘 가치로 하면 수백만원이 훨씬 넘어).
어느 날 소매치기단 두목이 김성준에게 이런 말을 해. “너 몸도 날래고 주먹도 좀 쓰는 거 같은데 복싱 배워보면 어때?” 권투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김성준은 경력 2년의 복서를 KO시켜버리는 놀라운 소질을 보였지. 안 그래도 남의 피를 빨아먹는 소매치기 세계에 환멸을 느끼던 김성준은 본격적으로 권투에 뛰어들었어. 소매치기 동료들도 의리가 있었던지 김성준을 다시 ‘사업’에 끌어들이지 않았고 생활비도 주면서 응원했다고 해. 마침내 권투 시작 4년 만인 1976년 김성준은 한국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때부터 불안감은 시작됐어. 이제 동양 챔피언도 되고 세계 챔피언의 꿈도 꿀 판인데 자신의 과거가 너무 어두운 거야. 전전긍긍하던 김성준은 마침내 한 검사를 찾아가 과거를 고백한단다. 검사는 뜻밖에 찾아온 한국 챔피언을 관대하게 풀어주었고 김성준은 동양 타이틀전을 열심히 준비 중이었는데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벌어져. 옛 소매치기 동료가 며칠만 머물게 해달라고 그를 찾아왔어.
너는 ‘일’ 걱정 말고 권투나 하라던 동료에 대한 의리였을까. 김성준은 그를 내치지 못하고 숨겨주었는데 그만 경찰이 김성준의 집을 덮치고 말았어. 그와 함께 김성준의 과거가 온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지. “빽따기(소매치기 기술) 치기배의 가장 유능한 일꾼으로 5년 동안 1억여원 상당을 소매치기한(〈동아일보〉 1976년 2월9일자)” 혐의를 받은 김성준은 자신이 찾아갔던 김진세 검사에 의해 구속된다.
김진세 검사도 소매치기 출신 한국 챔피언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야. 창살 안에 갇혀서도 섀도복싱을 멈추지 않았다는 김성준에게 김진세 검사가 물어. “너 진짜로 손 씻을 수 있겠냐?” 김성준의 답은 간단했어. “권투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김진세 검사는 김성준을 돕기로 결심해. 김성준은 곧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되는데 그 판결문이 재미있어. “재질 있는 복싱 선수임을 감안,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김진세 검사의 입김이 느껴지는 건 아빠만의 착각일까? 이후에도 김진세 검사는 김성준 후원회장을 자처하며 그의 재기를 도왔고, 김성준이 부상당했을 때는 웅담까지 구해 먹이며 기운을 북돋웠다고 해. 마침내 한국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을 때 검사와 전직 소매치기는 링 위에서 함께 만세를 불렀다.
김성준을 돕고 싶었던 사람들은 또 있었어. 김성준의 경기가 있던 날 복싱 중계 전담 아나운서였던 박병학씨는 허겁지겁 체육관을 찾았어. 그런데 주머니가 허전해. 아뿔싸, 주머니는 찢겨 있고 지갑은 온데간데없네. 소매치기를 당한 거야. 어쨌든 중계는 해야 했고 열심히 중계를 끝내고 한숨 돌리는데 중계석 테이블 한귀퉁이에 잃어버린 지갑이 얌전히 놓여 있지 뭐냐. 내막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
불우한 한국인이 몸으로 그린 고달픈 행위예술
이름 모를 소매치기가 입장하는 관중들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한 신사의 지갑을 실례해놓고 보니 방송사 아나운서라. 그는 혹여 이 사실이 전직 소매치기 김성준의 이름에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다시금 소매치기의 섬세한 실력으로 살금살금 중계석에 접근해 책상에 지갑을 올려놨던 거지.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범죄를 되돌리려고 자신이 훔친 지갑의 임자에게 다가서던 소매치기의 마음, 상상이 되니?
검사와 소매치기의 응원 속에 김성준은 한국 복싱 역사상 다섯 번째 세계 챔피언이 됐어. 하지만 이후 그의 경기는 시원치 않았다. 졸전을 거듭하며 2차 방어를 마쳤을 때 사람들은 그걸로 김성준은 끝이라고 했어. 그때껏 세계 챔피언으로서 3차 방어에 성공한 한국 선수는 아무도 없었거든. 더욱이 1차 방어전 상대였던 도미니카의 멜렌데스는 판정에 불만을 품고 WBC에 제소했고, WBC는 재경기를 명령했지. 아빠는 김성준의 3차 방어전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어.
마지막 15라운드에서 김성준은 미친 듯한 파이팅으로 멜렌데스를 몰아붙인다. 권투 경기를 했다기보다 싸움을 했다고나 할까. 클린치한 상태에서 멜렌데스를 로프로 던지다시피 한 뒤 주먹을 휘두르고, 빠져나가려는 멜렌데스를 붙잡고 늘어져 주먹을 내밀었어. 그리고 쏟아내던 비명 같은 기합 소리. 으아아악. 그날 김성준의 동작 하나하나가 아빠 기억 속에 선연해. 그건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서 그려낸 몸부림이었어. 눈이 부시는 영광과 눈이 찔리는 듯한 좌절을 골고루 경험했던 한 복서, 나아가 그 시대를 살았던 한 불우한 한국인이 몸으로 그려낸 고달픈 행위예술이었어.
그렇듯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끈적끈적한 범죄의 유혹도 극복해냈던 소매치기 출신 챔피언 김성준. 그는 링을 떠난 뒤 세상과의 싸움에서는 아쉽게 패했고, 1989년 슬프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을 마감하고 말았어. 현역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다운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던 김성준이지만 세상은 끝내 링보다 무서웠던 모양이지. 그 서글프고 덧없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김성준의 삶을 기억하고 싶구나. 그의 비명 같은 기합이 쟁쟁하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내밀던 그의 주먹질이 눈앞을 소나기처럼 가로막는구나.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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