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국보 제119호(정식 명칭은 ‘금동연가칠년명 여래입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연가(延嘉·중국 역사에 없는 연호) 7년 기미년 고려(고구려) 낙랑(樂浪) 동사(東寺)’에서 40여 명의 승려가 발원해 조성한 불상이라고 명확한 유래가 새겨진 드문 작품이란다. 그런데 1967년 10월24일 서울 덕수궁 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던 이 불상이 사라졌다. 불상이 사라진 자리엔 “문화재관리국장에게 직접 알리시오.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소”라는 메모가 놓여 있었어.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와서 “돌려주겠다”라고 설레발치던 범인은 밤 11시쯤 문화재관리국장에게 전화를 건다. “한강철교 16,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라.” 기적처럼 불상은 그곳에 있었다. 유령 같은 범인은 끝내 잡히지도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이 불상은 돌아왔지만, 문화재 담당 관청이나 역사학자들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도굴돼 누군가의 깊숙한 벽장 속이나 나라 밖으로 증발해버린 문화재의 규모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야. 도굴꾼들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을 훔친 이보다 더 신출귀몰했고 종종 고고학자들보다도 더 큰 성과(?)를 거두었지. 오죽하면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가 생전에 “한국에는 고고학자는 없고 호리꾼들이 고고학자 노릇을 하고 있다(〈서울신문〉 2017년 4월21일)”라고 탄식했을까.
‘호리꾼’이란 ‘구멍을 파고 캐는 일’을 뜻하는 일본어 ‘호리’에 우리말 ‘꾼’을 갖다 붙인 말이다. 즉 우리말로 ‘도굴꾼’이야. 일본인들은 각지의 무덤과 땅을 파헤쳐 우리 유물을 쓸어갔고, 그 밑에서 땅을 팠던 조선인들은 해방 이후에도 호리꾼으로 계속 활개를 쳤다. 까마득한 옛날의 얘기가 아니야. 지역 문화재 지킴이로서 국고 지원금 수천만 원을 받던 사람이 유물을 팔아먹다가 들킨 것이 2014년의 일이었으니까. 오늘은 그중 가장 간 크고 스펙터클했던 도굴단 이야기를 들려줄게.
1966년 9월8일 〈동아일보〉는 이런 기사를 싣고 있어.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일명 무영탑)이 지난 8월29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기고 7도가량 기울어져 도괴 직전에 있음이 뒤늦게 발견되었다.” 그해 8월29일 발생한 지진은 규모 2였다. 기록상 경주 지역은 지진이 상대적으로 잦았던 곳이야. 그곳에서 10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틴 석가탑이 규모 2의 지진에 그렇게 망가진 것은 사뭇 이상한 일이었지. 급파된 문화재 관리국 조사원들은 전 국민이 소스라칠 만한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석가탑은 강력한 외부의 힘에 파손되었다. (…) 석가탑 제1층 옥개석의 북쪽 중앙부와 제2기단석 사이에 ‘재키’를 대고 몇 차례 탑을 올리는 바람에 제2탑신이 남쪽으로 기울었고 제2탑신의 왼쪽 상단이 손바닥만큼 네 군데나 떨어져 나갔으며….” 여기서 ‘재키’란 자동차 정비소에서 차를 들어올릴 때 사용하는 유압식 장비를 말한다. 즉 도굴단이 그런 장비를 가지고 석가탑을 들어올리고 탑 안의 사리함 등 부장품을 노렸다는 얘기야.
워낙 어마어마한 사건인지라 다각도로 수사가 진행됐고 결국 도굴단은 덜미가 잡힌다. 이 일당은 석가탑 외에도 황룡사 목탑 터에서 사리장엄을 털었고, 경주 남산 절터에서 금불상을 파내 팔아치웠으며 양산 통도사의 사리합도 빼냈던 죄질 나쁜 호리꾼들이었어. 그 가운데 부두목 격인 윤 아무개는 경주 박물관 수위로 오래 근무하면서 문화재를 배운 이였지. 생선가게에서 고양이를 키운 셈이랄까.
망가진 석가탑 보수 중 발견된 다라니경
1966년 9월3일 윤씨와 그 일당은 밤 11시 불국사에 침입했다. 첫날은 실패했고 다음 날엔 기어코 1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이 끈질긴 호리꾼들은 그다음 날 또 불국사에 들어가 3층 옥개석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통탄할 일이지만 거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건 2층이었다. 내일은 기필코 보물을 손에 넣으리라 발도 굴렀을 테지만 작업 와중에 석가탑이 심하게 망가지면서 도굴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경찰의 필사적인 수사 끝에 도굴단은 서울과 경주 양쪽에서 덜미가 잡힌다. 경북도경은 재키를 실은 사람들을 태우고 불국사까지 다녀온 택시 기사를 찾아냈고, 택시 기사의 진술에 따라 두목 격인 김 아무개 등의 덜미를 잡았어. 그즈음 부두목 격인 윤 아무개는 서울에 있었어. 윤씨 일당은 경주 남산 절터에서 파낸 금불상을 어느 기업 회장에게 250만원을 받고 넘겼다. 당시 서울 집 한 채가 70만원쯤이었으니 상당한 거금이었지. 그런데 이 거래에서 소외된 이가 불만을 품고 서울시경에 이를 낱낱이 고해 바치면서 윤씨 역시 경찰에 붙잡혔어. 석가탑 도굴 수사가 진행될 무렵 윤씨는 불상을 팔아치운 회장님 댁에 며칠 숨기도 했는데 그 회장의 이름이 이병각이야. 그의 동생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삼성 재벌 회장의 형이자 삼강유지 회장 이병각은 장물 취득과 범인은닉 혐의로 쇠고랑을 차야 했단다.
도굴꾼들에 의해 망가진 석가탑은 1200년 만에 전면 해체 보수를 겪게 된다. 그런데 또 한 번 큰 사고가 발생하지. 도르래를 써서 2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는 와중에 지주 역할을 하던 전신주가 부러지면서 옥개석이 3층 탑부 위로 떨어진 거야. 3층 탑부는 세 동강이 났고 옥개석도 일부가 파손됐어. 해체 작업을 구경하던 시민 수백 명이 분노해 작업자들을 몰매질하려는 것을 경찰이 막아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지. 그런데 이 참담한 불행 끝에는 기적 같은 행운이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어. 2층 옥개석 밑에서 도굴꾼들이 그렇게 찾으려 했던 금빛 사리함과 함께 현존 최고의 목판본으로 추정되는 다라니경이 발견된 거야. 석가탑의 가호라고 해야 할지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해야 할지.
일제강점기의 ‘대도굴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호리꾼, 즉 도굴꾼들의 기승은 수그러든 적이 없어. 기껏 힘들여 발굴한 유적 속에 유물은 간데없고 도굴꾼들이 남기고 간 양초와 라면 봉지만 남아 있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병각 회장처럼 그걸 사들여 자신의 ‘취미’를 즐기거나 과시 수단으로 삼은 이들도 막중한 책임이 있고, 문화재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우리 사회와 정부도 허물을 피할 수 없겠지. 역사는 만인의 것이고 유물은 선대가 후대에 남긴 기억의 결정체일 텐데 이들을 허무하게 잃어버린다면 이 막대한 ‘기억상실’에 대해 우리는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니. 석가탑 고치려다 다라니경 발견하는 ‘부수적 이득’에 만족해야 할까. “도굴꾼과 고고학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라는 고고학계의 자조적 속설처럼, 도굴꾼들이 유적을 파헤쳐 햇빛을 보게 만든 공로(?)에 감지덕지해야 할까.
한때 ‘업계 1인자’로 불렸다는 도굴꾼 서 아무개씨에 따르면 그가 도굴한 물건 중에는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 상권(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은 하권이다)과 그보다 앞선 불경도 있었다고 해(〈신동아〉 2007년 9월호). 그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게 진실이라면 우리는 조상들이 간직했던 세계적인 보물을 눈 뜨고 잃어버린 셈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한숨을 쉬면서 조유전 전 토지박물관장의 가슴 치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도굴 소식이 줄어든 것은 전국 봉분의 99%가 도굴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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