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7조 2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 원칙이 처참하게 깨진 역사는 일일이 세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오늘은 자신이 한 행동 이상으로 처벌받고 고통받고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 중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병역을 거부하는 사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전쟁과 군복무를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라는 원칙과 적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했기에 우리는 그 가르침을 따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일왕 숭배와 징병을 거부하다가 무더기로 체포된 ‘등대사 사건(1939)’의 희생자가 된 바 있다. 전쟁을 치른 분단국으로서 또 다른 전쟁의 공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도 이 종교의 ‘신앙’은 강고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언젠가 네게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주체사상까지 별의별 사상이 젊은이들 사이에 횡행했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처럼 징집영장을 불태우는 등의 병역거부 투쟁이 벌어진 적은 없다고 말이다. 나라를 잃었던 경험과 참혹한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일종의 성역 같은 단어였다.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됐고 그 ‘범죄’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러야 했지.
1969년 정춘국이라는 스물한 살의 젊은이가 병역을 거부했다. 정춘국은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생이었어. 온 집안의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았던 예비 의사였지. 정춘국의 형은 동생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였고 교도관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아버지는 “(장차) 아들에게 병원을 차려주겠다”라며 택시 운전에 나설 정도였다고 하니 그 기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여호와의 증인 신앙을 받아들인 거야. 그는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살고 나온다. 학교도 포기한 채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춘국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건 이른바 ‘유신체제’ 이후였어.
1973년 1월20일 박정희는 국방부를 순시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서슬 퍼런 대통령의 명령으로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졌어. 이 법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실형을 살고 나온 뒤에도 또다시 영장을 발부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처벌할 수 있었다. 즉 한 번 실형을 살고 나온 정춘국이지만 징집영장을 또 발부하고 이를 거부하면 다시 처벌하는 시스템이었지. 1974년 정춘국은 감옥행 열차표와 같은 입영영장을 손에 쥐게 된다.
1심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정춘국은 정성 들여 항소이유서를 썼어. 그가 인용한 건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이었다. “날개가 자신의 삶의 의미이고 행복임을 깨달은 갈매기 조나단은 갈매기 사회에서 대대손손 이어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합니다. 그러자 원로들은 평의회를 열어 조나단을 추방합니다. ‘해오던 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 추방이다.’ 우리 사회와 꼭 닮았습니다.” 이 애타는 항소이유서는 판사를 전혀 감동시키지 못했다. 판사는 “왜 항소했느냐”라고 무뚝뚝하게 물은 뒤 곧바로 “일주일 후 선고”라며 입을 막아버렸어. 일주일 뒤 나온 판결은 1심의 두 배인 징역 3년.
감옥에 간 정춘국에게는 가혹한 처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수형 기간 부과된 노역조차 할 수 없었어. 다른 사람에게 여호와의 증인을 전도할 수 있다는 이유였지. 그의 임무는 그저 ‘앉아 있기’였다. 하루 15분씩의 운동 시간과 식사 시간에만 엉덩이를 바닥에서 뗄 수 있었다고 해. 아마 천하제일의 고승대덕이라도 이런 수도를 한 적이 없었을 거야. “일을 하고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대목에서는 그저 혀를 차게 될 뿐이다.
어쨌건 국방부, 아니 법무부의 시계는 돌아가서 3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징역이 끝나던 날 그를 마중 나온 건 병무청 직원이었어. “32사단 신병교육대로 갈 거야.” 거부의 의사를 밝힐 틈도 없이 정춘국은 또다시 재판을 받고 형을 치러야 했다. 재판부는 항명죄까지 곁들여 징역 4년을 때려버렸다. 당시 고졸 학력자의 징집 연한은 28세였고 정춘국의 나이는 그보다 많았다. 항변하는 정춘국에게 병무청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대학 한 학기 다녔으니 ‘대학 학력자’다.” 대학 학력자들에게는 서른 살까지 징집영장을 날릴 수 있었거든. 정춘국의 20대는 무려 7년10개월 동안의 감옥살이로 채워졌다.
개인 족치는 데 골몰했던 국가 폭력의 시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만은 아니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줄여 말하면 안식교인들도 있었어. 어느 안식교인은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해 감옥을 네 번 다녀왔다. 다섯 번째로 훈련소에 들어오자 훈련소 측은 그야말로 불쌍해서 그를 의무실에 ‘입원’시켜 집총 없이 훈련을 마치게 해주었어. 자대 배치 후에도 이 청년의 기록을 보고 놀란 지휘관의 특별 배려로 집총을 피해 군대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해(한홍구 지음, 〈대한민국사 2〉). 이런 ‘배려’와 ‘예외’가 대한민국이 이 신앙인들에게 해준 전부였다면 솔직히 얼굴이 벌게지는 걸 피하기 어렵다.
아빠는 군대가 있어야 하며,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대체복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의 ‘양심’만큼이나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희생’도 중요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조차 없이 그저 “너 한번 죽어봐라”는 식으로 개인을 ‘범죄자’로 족치는 데에만 골몰했던 국가폭력의 시대를 직시할 필요 또한 있다.
재심 신청을 사양하며 정춘국씨가 한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큰 것 같구나. “제게 제가 갈 길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처럼 그분들도 조국에 대한 열정이 있었겠지요. 사회를 우리가 지켜야 하는데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하면 ‘안 되면 되게 만들어!’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 못할 건 아니잖아요(〈중앙일보〉 2017년 9월13일).” 또 한번 얼굴이 벌게진다. 왜 우리 사회는 조금의 이해심도 발휘하지 못한 채 한없이 잔인해져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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