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위는 기관총 사격훈련을 하는 여성 군 후보생들. ⓒ연합뉴스

젊은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재미있는 이슈네요”라는 밈(meme)이 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정부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한다는 맥락에서 쓰인다. 유래는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다. 지지 서명을 많이 받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거론하던 문 대통령이 “남녀가 국방의무를 함께 해야 된다는 청원도 (인기가) 만만치 않던데요? 하여튼 다 재밌는 이슈 같아요”라고 말한 것. 대통령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수석보좌관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문제의 청원은 ‘여성도 남성처럼 의무복무하게 해달라’는 취지에 가까웠으나, 이날 회의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대신 대통령은 “사관학교에서 여성 생도의 성적이 좋다”라고 언급했고, 주영훈 당시 경호처장은 “여성 채용 비중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청원은 12만명 동의를 받은 뒤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채우지 못해 삭제됐다.

‘재미있는 이슈’가 최근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먼저 제기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여파로 보인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70% 이상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 이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군 문제를 꺼내든 것이다. ‘제대 군인은 취업, 주택청약, 사회복귀 적응 등에서 국방 유공자에 걸맞게 정당한 예우를 하겠다(김병기 의원)’, ‘지자체 채용 시 군에서의 전문 경력이 인정되도록 하겠다(김남국 의원)’, ‘군 가산점 제도를 재도입하겠다(전용기 의원)’ 등 다양한 ‘공약’이 나온다.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단연 박용진 의원의 제안이다. 박 의원은 징병제를 폐지한 뒤 모병제를 도입하고, 남녀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소중한 청년기를 군대에 강제로 가게 하지 말고, 군에 오고 싶은 사람이 오되 파격 대우를 해주면 정예 강군을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징병제 폐지로 줄어드는 병력 수는 군사훈련을 받은 남녀가 예비군이 되면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내용을 담은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펴낸 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군 관련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주십시오’라는 제목이다. 청원인은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 (…) 여자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라고 썼다. 4월29일 기준 24만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응답 기준을 넘는다. 이 건은 이제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여성 징병 않는 게 안보에 이롭다는 결정

여성을 징병하자는 의견이 갑자기 튀어나온 생각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논쟁에 가깝다. 온라인 공간의 설전만 반복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다뤄진 적도 여러 차례 있다. 결정적 계기는 2010년과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두 차례 모두 헌재는 남성만의 의무복무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특히 2014년에는 재판관 전원이 합헌 의견을 냈다. 그래서 여성 징병론은 ‘헌재 판단이 끝난 문제’라는 이유로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징집 대상에 대한 헌법과 법률의 규정은 일견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정하는데 법률은 ‘국민’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눈다. 병역법 제3조 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남성은 (…)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 제11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남성 징병은 위헌적 차별이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그렇지 않은 이유를 ‘최적의 전투력’에서 찾는다. 안보는 특수하고 중요한 영역이기에 누구를 어떻게 징집할지는 입법권자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 2014년 헌재 결정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징집 대상자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되어 있고 (…) 최적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목적적으로 정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입법자 등의 입법 형성권이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헌재는 이어, 군이 ‘최적의 전투력’을 갖추는 데 여성이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나열한다. “근력 등이 우수한 남성이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신체적 능력이 매우 뛰어난 여성의 경우에도 월경이 있는 매월 1주일 정도의 기간 훈련 및 전투 관련 업무수행에 장애가 있을 수 있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일정 기간 위생 및 자녀양육 필요성에 비춰 영내 생활이나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군을 위한 시설과 관리체계를 충당하기 어렵고, 성희롱이나 성적 기강 해이 우려가 있다고도 부연한다. 헌재는 ‘군 전력’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판단했다. ‘여성의 생래적 결격사유를 감안하면 징병하지 않는 게 안보에 이로운 결정’이라는 결론에 가깝다.

2010년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해 3년간 여군으로 복무한 주하림씨는 ‘최적의 전투력’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2017년 그는 군 경험을 토대로 〈나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라는 책을 썼다. 주씨는 전력의 관점에서 보면 남성만의 징병은 더욱 지속 불가능하다고 본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징집 대상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병력 수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어디에선가는 충원해야 한다. 현실적 대안이 성인 여성이다. 모병제보다 이쪽이 더 온건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는 근력 등 신체의 힘이 결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기술화·첨단화를 통해 여성도 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주씨는 병영 내에서 여군이 갖는 한계는 ‘힘’의 차이보다 남군(남자 군인)들의 구시대적 인식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일을 못해도 여군이면 서너 배씩 욕을 먹었다. 잘하면 성격이나 외모를 깎아내렸다. ‘남성성’을 보여주는 여군이 참된 여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과일을 깎거나 차를 내올 일이 있으면 남군들은 여군을 쳐다봤다. 한 상관은 주하림씨와 여타 남군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솔직히 여군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여군 생길 때부터 반대했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여군이 군 내에서 겪는 수모로 미뤄보면 여성 징병론은 더욱 피해야 할 선택지 아닐까? 그러나 주하림씨는 여군의 열악한 환경과 남성 징병제가 인과관계에 있다고 본다. “여군의 지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군 조직 내 여군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성 장교, 부사관 비율을 늘린다고 해도 절대다수의 (징병된) 남자들은 선택해서 군대에 오는 여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의무이자 선택’으로 군에 온 남자 장교나 부사관에 대한 시선과 다르다.”

여성 징병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예외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의외로 적지 않은 여성이 여성의 군복무에 긍정적이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병역 담론의 전환을 위한 기초 연구’를 펴냈다. 20대부터 50대까지, 국민 2012명에게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결과물이다. 여성 응답자 절반 이상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아래 〈그림 1〉 참조). 병역 대상이 될 수 있는 20대 여성도 53.2%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온라인상에서 떠들썩한 논쟁과 달리 이 조사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은 ‘성별 대결’이 아니라 연령별 이견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군복무를 긍정적으로 여긴다. 예컨대 50대 남성 3분의 2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데 동의했다. 같은 의견인 20대 남성은 절반 수준이다. 연령대별 남녀는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그림 2〉). 대부분 남성들은 병역에 대해 몹시 부정적 의견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군대에 대한 부정적 명제를 제시했을 때, 동의하는 비율은 세대에 따라 완전히 갈렸다(〈그림 3〉). 20대 남성은 65.3%가 ‘군대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50대 남성은 21.2%만 그렇게 본다. ‘군복무는 잃는 것이 많다’는 데 대해서도 20대 남성은 72.9%가 동의하는데, 비슷한 비율의 50대 남성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심지어 ‘군대는 안 가는 게 좋다’는 말에도 20대와 50대의 동의율(각각 82.5%, 44.6%)은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

이 보고서의 공동연구자 중 한 사람인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은 여성 징병론이 대두된 까닭을 젠더 갈등보다 사회구조 변화에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군복무에 긍정적인 여성의 응답은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40~50%대가 나왔다. 추이가 바뀐 건 남성 응답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젠더 지형’이 변한 게 이유라고 본다. 지금의 징병제는 1960~1970년대 완성되었는데, 당시와 사회상이 너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의 말이다. “병역과 경제활동의 연관관계가 무너졌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이 취직에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군에서 취업 훈련을 시켰고, 특례 대상자들은 중화학공업에서 일하도록 했다. 국가가 남성의 경제권을 장려한 것이다.” 직접적 이익이 점차 사라진 뒤에도 “남성이 군인이 되고, 그를 통해 국민이 되는” 과정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보상을 받지 않아도 신념, 애국심으로 병역을 수행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군에 대한 이견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1990년대, 2000년대 들어 이런 의식이 약해진다. 김 소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이전의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약자라고 봤다. 그런데 지금의 20~30대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약자가 아니라 ‘경쟁 대상’이다. 학업성적도 여성이 더 우수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자 남성들 간에만 적용되던 ‘공정’의 기준이 여성에게도 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여자가 안 가서’ 벌어진 게 아니다. 젊은 병역 대상자들이 국가를 향해 ‘계약조건’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데에 가깝다.

여성도 ‘불이익’받는 게 ‘평등’해지는 길?

여성 징병이 새로운 계약이 될 수 있을까? 김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남성이 받는 ‘불이익’을 여성이 똑같이 받는다고 해서 평등해진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체 병역 대상이 아니라 일부 시험에 응시하는 남성에게만 혜택이 가는 군 가산점제 역시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경제적 보상과 문화 개선이다. 국가가 군인을 무상으로 쓰다시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봉급을 주고, 시민사회와 괴리되지 않는 병영 문화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0대 남자 달래기’를 위해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던진” 화두가 여성 징병이라고 김 소장은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여성 징병이 아니라, 사병에 대한 적절한 경제적 보상과 선진적 군대 문화가 본질적 해결책이라고 진단한다. 정작 병역 대상인 남성들의 생각은 차이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을 보면 ‘돈을 덜 줘서’ ‘위험한 곳이라서’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다. 낮은 임금과 위험성은 부차적 이유에 가깝다. 문제는 시간이다. 군복무가 추후 취업에 필요한 경쟁력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성 50.7%는 군에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된 이유로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 손실’ ‘학업 중단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을 꼽았다. ‘부족한 봉급 및 경제활동 제한(7.6%)’ ‘권위적 병영 문화(7.7%)’ ‘군대 내 폭력(3.9%)’ 등 나머지 8가지 사유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군대가 얼마나 민주화되고, 월급을 많이 줘야 병역 대상자들은 군복무를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 않을까? 경쟁력이란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군에서 봉급을 많이 받더라도 제대 후 뒤처지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병역 대상은 아니지만 잠재적 경쟁 대상인 여성도 함께 ‘불이익’을 받는 게 ‘평등’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은 이렇게 나온다.

여성 징병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주하림 작가(왼쪽)와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사IN 이명익(왼쪽)·조남진

이 지점에서 여성 응답자들은 남성들과 의견이 좀 다르다. 남성들의 군복무가 사회적 불이익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이 군복무를 마친 남성에 비해 취업시장에서 차별받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성 60%는 ‘군대에 다녀온 사람은 다녀오지 않은 사람보다 취업에 유리하다’고 답했다. 남성도 42%가 동의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군복무는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문항엔 남녀 모두 3분의 1 정도만 동의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처지에서 볼 때 군복무란 (취업과 연관이 깊은) ‘자기계발’에 그리 이점을 주지 않으면서 정작 구직에는 꽤 도움이 되는 이상한 경험이다. 실제로 기업 면접에서 군과 관련한 성차별적 질문이 나오는 등, 여성들의 이러한 인식에 무게를 실어주는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시사IN〉 제708호 ‘당신이 떨어뜨린 나의 이야기’ 참조).

한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양현아 교수(젠더법학)는 ‘시민권’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군역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여성의 시민권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징병제와 구조적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현대 국가에서, 특히 분단 상황인 한국에서 군사제도가 갖는 시민권적 의미는 남다르다. 남성은 징병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가졌다. 여성은 없다. 군 문제에 발언하지 못하는 집단이 완전한 시민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남성만 징병하는 현 병역제도는 겉보기에는 여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배제되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여성은 시민권의 한 영역에서 거대하게 배제되어 있다.”

국방부는 사회적 합의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4월20일 병역제도 개편을 두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합의’가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군에 대한 청년층과 중년층의 인식은 양극에 있고, 여성과 남성은 군복무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4년 전 청와대 수석들이 웃고 넘겨버린 이 갈등은 사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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