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군기교육을 받다 사망한 군인 훙중추의 초상화를 든 시민들이 타이완 타이베이에 모였다. ⓒAP Photo

타이완은 우리와 닮았다. 군사 강대국 중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고 있으며, 징병제를 통해 강력한 군대를 양성했다. 인구는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 본토 수복’을 기치로 1950년대에는 군인 60만명, 1990년대에도 40만명을 징병제로 유지했다.

타이완은 2000년 이후 단계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해 2018년 12월부터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 사례라는 점에서 모병제 논의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다. 모병제라고 해도 일반 남성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94년 이후 출생한 남성은 4개월 군사훈련을 수료해야 병역의무를 마치고 예비군이 된다.

모병제 논의는 2008년 집권한 마잉주 총통의 대선 공약에서 시작했다. 당시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며 ‘양안 경제협력 기본협정’이 체결되는 등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전례 없는 우호 기류가 조성됐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단순한 정치·외교적 압박으로 인식하면서 모병제 추진이 급물살을 탔다. 군의 규모를 축소해 남은 예산을 다른 분야에 쓰겠다는 계획도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문제도 있었다.

징병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한몫했다. 타이완 군대도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인권유린 사고가 잦았고, 군 내 자살이 잇따라 사회문제가 됐다. 병역기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13년에는 제대를 3일 앞둔 군인이 휴대전화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군기교육을 받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타이베이시에 10만명 넘는 시민이 모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징병제 폐지 여론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모병제 전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징병제 폐지 여론이 곧 모병제에 대한 지지로 바뀐 건 아니었다. 군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오히려 모병에 애를 먹었다. 2013년 병력 모집 2만8000명을 목표로 했지만, 지원자는 8000명에 그쳤다. 2014년 병사 급여를 성인 소득 평균치 이상으로 올린 뒤에야 1만5000명을 모집할 수 있었다. 타이완은 모병제 성공을 위해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야 했다. 당초 2015년을 목표로 했던 모병제는 2018년 말에야 시행될 수 있었다.

지금 타이완 모병제는 흔들리는 중이다. 병력 부족 문제와 함께 타이완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이 2016년 집권하면서 양안관계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타이완 침공 시나리오를 거론한다. 이처럼 양안 간 군사적 긴장이 커지면서 징병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타이완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모병제 전환은 신중에 신중을 더한 사회적 토론 끝에 이루어져야 한다. 군이 스스로 변화해서 군인의 길을 자랑스럽게 여기게끔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모병제가 인구절벽 시대 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참고 자료:‘한국군의 모병제 전환 가능성 모색’(〈한국군사학논집〉, 2018),
〈세계 5대 군사강소국과 한국의 자주국방〉(김재엽, 선학사, 2020)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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