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 커플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PHOTO

나도 마스크를 벗어야 하나. 오늘 아침은 여느 미국인들처럼 복잡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엊그제까지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에 플라스틱 실드까지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이 시점에서 마스크는 마음의 문제인가, 과학의 문제인가.

지난 5월13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자는 대부분의 환경에서 마스크 착용이나 물리적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자 미국이 크게 술렁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문제에 정치를 제거하고 ‘과학을 따르겠다’며 축하했다. 공화당도 크게 환영했다. ‘마침내 자유’라고 말했던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의 노(no)마스크 사진이 〈뉴욕타임스〉 대문을 장식했다. 폭스뉴스의 대표 진행자 터커 칼슨은 한술 더 떠 ‘마스크를 착용한 어린이를 보면 아동보호소에 신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PA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의원

반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백신접종을 받지 않았으므로 의회에서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라고 말해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펠로시 의장은 대유행 동안 30명 이상의 의원이 코로나19에 걸렸고, 공화당 소속 론 라이트 의원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지난 2월 사망했음을 지적했다.

지금껏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행위는 정치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58만5000명 이상의 미국인(600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한 팬데믹 동안 마스크 착용 여부는 정치 분쟁의 인화점이 되었다. 매일 평균 6만 건 이상 코로나19 신규 감염 사례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던 대표적인 ‘안티 마스커(anti-masker)’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12일이 되어서야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안티 백서(anti-vaxxer·백신 거부자)’의 상당수가 공화당 지지자라는 조사도 나왔다.

미국인들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환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공공장소에서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나요?” “나는 의사이지 정치인이 아니오.”

마스크 완화 지침 일주일 후, 뉴욕 맨해튼 거리는 얼핏 봐도 사람들 반 이상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백신접종을 끝낸 이들일까? 길에서 만난 뉴욕 시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백신 완료자를 식별할 수 없으며 백신 면역 기간을 확신할 수 없고 아동용 백신은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얼마 전에는 백신접종을 마친 뉴욕 양키스 코치와 스태프 등 7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불안을 가중했다.

CDC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가 높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하버드 대학 챈 연구소와 로버트우드존슨 재단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 가운데 52%만이 CDC를 신뢰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이나 식품의약국에 대한 신뢰는 37%에 불과했다. CDC는 지난봄에 ‘아프지 않으면 마스크가 필요 없다’는 지침을 내놓아 큰 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타임스퀘어에서 만난 조 가르시아 씨(72)는 “CDC는 최소한의 과학을 제시하는 정치집단일 뿐이다”라며 CDC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내비쳤다. 제인 매도 씨(43)는 “마스크 해제가 팬데믹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 야외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7년째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인근에서 케밥을 만들어 파는 무함마드 아흐마드 씨(31)는 두 살 딸과 아내가 있는 푸드카트 노점상 주인이다. 그는 즉석 케밥을 5달러에 팔고 있다. “새벽에 나왔는데 겨우 80달러 벌었어요. 그래도 지난해에 비하면 나은 거예요.”

ⓒAP Photo 2020년 1월1일,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뉴욕 타임 스퀘어에 모인 군중들.

금요일 오후 3시를 넘긴 맨해튼 거리는 대유행 이전에 비할 수는 없지만 보행자들로 활력이 넘친다. 팬데믹 이전엔 타임스퀘어를 찾는 사람이 하루 평균 35만명에 달했으나, 그에 비하면 지금은 3분의 1 수준이다.

“보세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실감 나지 않아요?” 아흐마드 씨는 지난해 4개월 동안 노점을 닫아야 했다. 3월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후 관광객이 크게 줄고 주 고객인 사무 노동자들이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4개월간 수입이 한 푼도 없었죠. 정말 믿을 수 없게도 0달러였어요. 다시 문을 열고 하루에 손님 한 명 받은 날도 있었어요.”

아흐마드 씨는 정부의 마스크 완화 조치에 기뻐했다. 이 때문에 브로드웨이, 사무실, 쇼핑몰에 사람이 가득 차기를 기대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리라는 거 알아요. 임차료도 못 냈는데 그때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아흐마드 씨는 지난해 2만5000달러(약 2800만원)에 달하는 노점 임차료를 내지 못했다. 뉴욕시가 노점 영업 면허(license)를 5100개로 제한한 탓에 후발 노점 사업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사업자에게서 면허를 빌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면허는 암시장에서 평균 2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데, 아흐마드 씨는 목이 좋은 터여서 2만5000달러를 낸다고 했다. 뉴욕시의 노점 업주 대부분은 이렇게 면허를 빌리거나 아예 무허가로 영업한다. 단속을 피해 다녀야 하는 무허가 노점만 2만여 개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 1월 노점주들에게 희소식이 있었다. 소기업자들의 반발로 6년째 계류 중이던 노점업 제한 해제 법안(1116-B)이 통과되어 뉴욕시는 면허 허가 수를 10년에 걸쳐 4000개를 더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흐마드 씨는 뉴욕시로부터 정식 면허를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면 2년마다 내야 할 면허 임차료 2만5000달러가 아닌, 연 200달러만 시청에 내고 노점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차료 내야 하니 쉬는 날이 없어요.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밤늦게까지 일해야 해요.”

아흐마드 씨 부부는 서류 미비자 신분(합법 체류 신분 없이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딸을 낳았다. 딸은 시민권자이지만 부모의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서류 미비자들은 평소에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아흐마드 씨는 몇 년 전부터 국세청(IRS)에 납세자 식별번호(ITIN)를 받아 매년 세금 신고를 했다. 국세청이 이민국에 납세자 체류 신분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1100만 서류 미비자들은 자발적으로 세금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영주권을 받게 될 날을 대비해서다. 아흐마드 씨는 세금 신고를 한 덕에 지난해와 올해 연방정부 긴급구제 수표(stimulus check)와 이전 해 세금 신고분에 대해 환급받을 수 있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뉴욕시의 서류 미비자를 위한 소외 노동자 펀드(excluded worker fund) 대상에도 해당되었다. 그러나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구제 법안(CARES)에 따른 자영업자 연방정부 PPP론(급여보호 프로그램)은 받을 수 없었다(중소기업 및 자영업자가 직원의 급여, 사업장 임차료, 각종 공과금 지급에 사용할 수 있는 무담보 저금리 대출이다. 대출금 수령 후 8주 내에 직원 수와 급여 수준을 유지하고 대출금을 급여로 60%, 운영비로 40%를 소진하면 대출금 전액을 상환 면제한다).

“정부가 지원해줬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저축한 돈은 바닥났고 친구에게 돈을 빌렸어요.”

그런데도 아흐마드 씨는 서류 미비자들 중에 자기는 형편이 좋은 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서류 미비자들이 팬데믹 동안 일터에서 내쫓겨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 영안실이 없어 시신이 가득한 냉동 트럭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웃도 있었다.

“서류 미비자 중에 필수 노동자들이 많은데 우리가 없으면 미국이 돌아갈까요?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어요. 우리도 미국 시민입니다.”

5월10일 뉴욕 타임스퀘어의 노점. 올해 1월, 6년째 계류 중이던 노점업 제한 해제 법안이 통과되었다. ⓒAFP PHOTO

요즘은 서류 미비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이들의 체류 신분 약점을 노려 이민국에 신고하겠다며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용주가 신고할 경우 보복성이라고 판단해 자칫하면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할 때 서류 미비자들에게 합법 체류 신분을 주는 ‘미국 시민권 법안(U.S. Citizen Act)’을 발표했다. 이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할 경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서류 미비자 구제 조치가 될 것이다.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까요?”

마스크 벗고 처음 보는 사람부터 신뢰하자

뉴욕 맨해튼에 어둠이 깔리자 나는 재즈 클럽으로 향했다. 뉴욕은 재즈의 도시다. 대공황 때 이상으로 뉴욕의 재즈는 코로나19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했다. 오래전 나는 재즈 잡지 발행인이자 재즈 클럽 오너였다. 20년 동안 재즈 비평가로서 재즈 클럽을 들락거렸고 재즈 연주자들을 만났다. 나는 코로나19로 사망한 재즈 연주자의 추모글만은 쓰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재즈의 거장 월러스 로니, 엘리스 마살리스, 버키 피자렐리, 리 코니츠에 대해 써야 했고 지난해 말엔 맨해튼 최고의 재즈 클럽 중 하나인 ‘재즈 스탠더드’의 폐업 소식을 알려야 했다. 재즈 스탠더드는 내게 팬데믹 이전 마지막으로 갔던 재즈 클럽으로 기억될 것이다. ‘찰스 밍거스 빅밴드’ 무대였는데, 빅밴드를 지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즈 클럽이라 자랑스러워했다. 블루노트 재즈 클럽은 팬데믹 동안 문을 닫았다가 6월15일 다시 손님을 받는다. 세계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꼽힐 만한 ‘빌리지 뱅가드’는 클럽 문은 닫은 채 실시간 공연을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팬데믹을 버티고 있다. 재즈 클럽의 거리,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스몰스’와 ‘메즈로’만이 지난 4월 말부터 조금씩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도 테이블에 플라스틱 투명 가림막을 치고 거리두기를 지키고 있었다.

메즈로 무대에 오른 재즈 피아니스트 존 친 씨(45)를 만났다. 그는 한국계로 네 살 때 이민 온 뒤 영재로 선발되어 열네 살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했다. 그 후 노스텍사스 대학을 거쳐 럿거스 대학과 줄리어드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을 중심으로 맹활약해온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팬데믹이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존 친 씨는 지난해 코로나19에 걸려 8일간 사경을 헤맸다.

“그렇게 아픈 적은 평생 처음이었어요. 입원할 병원을 찾을 수도 없었죠. 대기 중인 환자가 넘치고 사망자로 가득했으니까요. 병원에선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을 때 다시 연락하라더군요.”

그는 ‘집에서 이렇게 죽겠구나’ 하며 절망했지만, 임신 중인 아내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여드레가 지나서야 펄펄 끓던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서 회복한 뒤에는 생계를 위해 전전긍긍했다. 재즈 클럽은 문을 닫아 공연을 할 수 없고 강사로 일하던 학교도 수업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때 아기가 태어났으니 눈앞이 캄캄했죠. 그러나 다른 연주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 전 불평할 수가 없어요.”

존 친 씨는 온라인 레슨과 실업자 급여로 버티고 있다. 운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가운데 지난해 5월, 싱어송라이터 리처드 줄리언과 함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모스 앨리슨을 테마로 한 새 앨범을 발표했다.

“전 죽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희망을 줍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

5월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 Photo

뉴욕이 폐허 속에서 다시 건설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가? ‘사랑의 꽃가루’를 눈에 바르면 처음 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듯 마스크를 벗은 뒤 처음 보는 사람부터 신뢰하면 된다(사랑의 꽃가루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마법의 꽃가루다). 백신 완료자들 간의 대면 만남이 더 늘어나야 미국이 작동한다. 지난달 노마스크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에 상징적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 미국에서 신뢰는 쌓는 것이 아니라 벗는 것이다. 

기자명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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