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면역우산은 없다. 다만 개인의 작은 우산이 모여 공동체의 우산이 될 수는 있다. 우산을 펼치지 못한 사람도 그 아래서 비를 피한다. ⓒ시사IN 신선영

“세상에 펑!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배우 윤여정씨가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했다. ‘뉴노멀’ 시상식이었다. 조촐한 규모의 홀에 유명 배우들이 띄엄띄엄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소수의 참석자들 박수 소리만 간소하게 들렸다. 나머지 영화인과 관객들은 비대면 이원 생중계 방식으로 화면을 통해 시상식에 참가했다. 팬데믹 풍경 속에서 나온 한 영화배우의 수상 소감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공통의 소망에 관해서도 본질을 꿰뚫었다.

2021년 전 세계인의 소망은 코로나19 이전으로 일상을 되돌리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코로나가 끝나면…”으로 시작하는 팬데믹 이후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 ‘끝’이라는 것을 ‘코로나19 종식’이라고도 부르고 ‘집단면역 달성’이라고도 부른다. 한국 정부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놓았다. “11월까지 인구의 70% 이상 백신접종을 마쳐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

이 목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주로 백신 수급 문제 때문이다.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위한 백신 수입 물량이 ‘많다’ ‘적다’ ‘더 들어올 거다’ ‘모자랄 거다’라고 예측하며 싸우는 일이, 현재 한국 정치권과 언론이 국민 공통의 소망 ‘코로나가 끝나면’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런데 각 개인에게 혹은 한 국가 안에서 혹은 전 세계 관점에서 ‘코로나가 끝나는’ 것이란 정확히 어떤 상황일까? 어떤 특정한 지점, 시점, 상태를 말하는 걸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돼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일까, 아니면 일단 자기 나라 안에서만 ‘0’이 되는 상태일까, 아니면 적어도 (백신접종을 한) ‘나’는 감염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걸까?

한국 정부가 잡아놓은 목표 ‘11월까지 인구 70% 접종으로 집단면역 달성’ 문구 속의 ‘집단면역’이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 인구 70%가 백신을 접종하면 정말 집단면역이라는 것이 달성될까? 11월 며칠 몇 시가 되면 ‘땡’ 하고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 종이 울려서 모두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전 국민 밀집·밀접·밀폐 파티를 벌일 수 있게 될까? 만약 집단면역이라는 것의 특정 시점과 특정 상태가 있다면, 거기까지 가는 길은 또 어때야 하는가? 숨죽여 꾹 참으며 일상을 꽉 조여야 할까, 조금씩 완화하며 숨통을 틔워가도 될까? 백신 수급 논쟁을 넘어 ‘코로나가 끝나면’을 그리는 데 필요한 질문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해외와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미 이 질문들의 답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Q:집단면역이 되면 ‘나’는 안전해지나?

A:예 혹은 아니요. ‘우리’가 안전해진다.

지난 4월12일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언론 브리핑에서 CBS 한 기자가 물었다. “현재 백신 주저율을 감안할 때 미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도 집단면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은 대답했다. “집단면역에 관해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정의하기 매우 애매한(elusive) 것을 언급하는 이 개념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인구 내 백신접종 비율, 감염 회복 비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70~85% 사이 어디쯤으로 추정하지만 우리는 사실 모릅니다. 그래서 파악하기 어려운 숫자에 집중하는 대신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도록 합시다.” 4월26일 브리핑에서 파우치 박사는 집단면역을 ‘움직이는 표적(moving target)’이라고 표현했다. 목표는 목표이되 고정돼 있지 않은 목표, 실시간으로 지점이 바뀌고 변수에 따라 움직이는 목표가 바로 ‘집단면역’이다.

집단면역은 개인 층위의 면역력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다. ‘백신주사를 맞아 감염병을 예방한다’는 명제는 ‘백신주사를 맞는 개인이 각각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해진다’와 동의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감염병의 집단면역에 필요한 인구 비율이 70%라고 했을 때, 이는 이 감염병에 안전해진 사람이 70%이고 여전히 위험한 사람이 30%라는 뜻이 아니다. 인구집단의 70%가 백신접종이나 감염 후 회복으로 작은 방어막을 얻게 되었을 때 전체 집단을 보호하는 공통의 방어막이 펼쳐질 수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으면,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난 뒤 독감에 걸리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거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누군가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오해를 부르기 쉬운 ‘집단면역’이라는 용어를 ‘면역우산’ ‘집단보호’ ‘무리효과’ 등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5월2일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 하남’ 내 완구점에 들른 사람들. ⓒ시사IN 이명익

Q:집단면역이 달성되는 시기와 조건은 정해져 있나?

A:아니요. 그때그때 변한다.

무엇으로 부르든 집단면역은 확실히 좋은 것이다. 집단면역이든 집단보호든 무리효과든 그것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 삶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때가 언제일지,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지 알고 싶을 수밖에 없다. 수리모델링과 감염병 역학을 공부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코로나19의 경우 전체 인구의 대략 70% 이상이 백신접종을 하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었을 때부터 코로나19 집단면역이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왔다(라고들 대개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국민 수와 코로나19 감염 비율, 백신 도입 일정과 물량 등을 고려해 ‘11월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구체적인 시기를 박아놓았다.

그런데 이 수치는 거의 전부가 ‘가정(假定)’에 기대어서 나온 값이다. 계산식을 구성하는 각 항은 고정된 값(상수)이 아닌,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변수들이다. 대표적인 변수가 지난해 초부터 익히 들어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단어,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 R0는 한 명의 감염자가 평균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수치다. R0가 1보다 높으면 유행 확산, 1보다 낮으면 유행 감소 흐름이다. 보통 홍역의 경우 15, 사스는 3.5, 코로나19는 2.5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R0는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 변수다. 홍역, 사스, 코로나19가 각각의 특성상 15, 3.5, 2.5라는 고정된 R0 값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바이러스들이 실제 세계에서 얼마나 전파되는지를 측정해서 R0 값을 추정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어떤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지에 따라 바이러스의 R0 값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지금 당장도 세상 모든 이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한 달 동안 혼자 집에 격리돼 있으면 코로나19의 R0는 0에 수렴할 수 있다. 마스크를 벗고 창문 없는 지하 클럽에서 소리 지르며 춤춘다면 그 시간 그 공간에서 R0는 100까지도 치솟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R0란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시점, 어느 지점을 잘라서 본 단면과도 같다. 그 단면을 보고 이 강이 향후 범람할지 메마를지 판단할 수 없듯, 고정된 R0를 상수로 놓고 감염병 확산의 미래를 점칠 수 없다. 때문에 R0 값을 토대로 계산해내는 ‘집단면역 도달 임계값’도 매번 매 순간 변동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전염병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앤서니 파우치 소장도 집단면역 도달 비율과 시기에 대해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R0를 고정해놓고 집단면역 시기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설명하기 위해,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는 ‘홍역’을 예로 들었다. 오 교수에 따르면 홍역은 R0 혹은 백신 정책에서 가장 많이 오랫동안 연구돼온 감염병이다. 그렇게 각각 연구마다 결론 내린 홍역의 R0 범위는 5에서부터 55까지 이른다. 같은 대륙에서도 시기마다 다르고 같은 시기에도 국가마다 다르고 같은 국가에서도 집단마다 다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불과 1년 전인 2019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학술지 〈EID〉에 R0에 관한 논문 하나가 실렸는데 제목이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의 복잡성’이다. 오명돈 교수는 말했다. “R0는 어떤 바이러스에 붙어 있는 고정된 수가 아니다. 학계에서도 R0를 다룰 때의 복잡성을 강조하는 논문이 나올 정도인데, ‘코로나19의 R0는 3이고 집단면역 도달 수치는 70%’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 진리처럼 굳어져서 모두가 ‘어떻게 접종 비율 70%에 도달하지?’만 보고 있는 상황이 매우 걱정스럽다.”

Q. 코로나19는 끝날 것인가?

A:아니요. 불가능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집단면역 도달 조건을 모른다고 해서 집단면역 도달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얼마나 더 올라야 정상이 나올지 몰라도 묵묵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이르는 등산처럼, 코로나19 집단면역이라는 목표 또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성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와 관련, 국제 학술잡지 〈네이처〉는 지난 3월18일 불길한 기사 하나를 냈다. 제목이 심지어 ‘코로나19 집단면역이 불가능한 5가지 이유’다. 그 5가지 이유란 다음과 같다.

첫째, 백신들이 ‘증상이 있는 코로나19’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그러나 아직 입증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백신이 ‘무증상 감염’을 방지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까지 방지하는지는 아직 통계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오명돈 교수는 “무증상 감염까지 막아야 전파가 차단될 수 있는데, 현재 백신들이 이것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믿을 만한 데이터가 없다. 일부 실험실 데이터가 발표됐지만 현실 세계 데이터는 좀 더 지켜봐야 안다”라고 말했다. 전파가 차단되지 않으면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 즉 코로나19 취약층에게 바이러스가 흘러갈 수 있어 우리가 원하던 집단면역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

불길한 전망의 두 번째 이유는 백신접종의 불균등성이다. 백신 접종률이 연령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다르다. 고령층 접종률은 그나마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은 아직 접종할 수 있는 백신 자체가 없다. 이스라엘이 접종률 60%에 다다르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웃 국가 레바논·시리아·요르단·이집트는 아직 인구의 1%도 예방접종을 마치지 못했다. 일부 집단과 일부 국가가 대규모 백신접종에 성공했다고 해도 이들 역시 다른 연령대, 다른 국민,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교류를 끊지 않는다면 ‘두더지잡기 게임’은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세 번째는 ‘변이’ 때문이다. 지난 1월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브라질 마나우스에서는 지난해 시민 76%가 항체 양성으로 추정될 만큼 엄청난 규모의 유행을 경험했다. 집단면역 이론에 따르면 더 이상의 유행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마나우스시에서 올해 1월부터 다시 대규모 코로나19 확산이 일어났다. ‘P.1’으로 이름 붙은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이 사례에서 ‘감염’을 ‘백신접종’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백신접종을 마쳐도 변이 바이러스가 번지면 또다시 대응해야 한다.

넷째, 항체 지속 기간도 변수다.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백신을 접종했을 때 몸에 생기는 면역세포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에 대해 과학자들도 아직 정확한 답을 모른다. 6개월~1년이라는 추정치들이 제시되지만 역시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실험실 데이터’다. 재감염 가능성 여부는 연령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덴마크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차 유행 때 감염된 사람이 6개월 뒤인 2차 유행 때 재감염되지 않은 비율이, 65세 미만은 80~83%인 데 비해 65세 이상은 47%밖에 되지 않았다. 중증도와 치사율뿐 아니라 재감염 가능성 역시 고령층이 더 취약한 것이다.

코로나19 집단면역이 불가능한 마지막 이유는 ‘백신의 역설’이다. 백신이 인간의 행동을 바꾼다. 백신은 바이러스 배출량을 줄여 R0 값을 낮추는 동시에 사람의 행동을 과감하게 바꾸어 R0 값을 높일 수도 있다. 〈네이처〉 기사에서 이스라엘의 의학 데이터 과학자 드비르 아란은 이렇게 말했다. “백신은 방탄이 아니다. (백신이 90%의 보호를 제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백신을 접종하기 전 한 명을 만난 사람이 백신접종 후 열 명을 만났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마도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엔데믹(endemic)’으로 불리는,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고착되는 현상’은 지금 전 세계 과학자 대부분이 지지하는 가설이다. 〈네이처〉는 지난 1월 전 세계 면역학자, 감염병 연구자, 바이러스 학자 119명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박멸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이들 중 89%가 ‘아니다’에 손을 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앞으로 전 세계 인구 사이에서 순환하는 ‘엔데믹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아직 불확실한 것들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유행의 앞날을 그려보면 오른쪽 〈그림 1〉과 같은 흐름도로 정리된다. 1번 시나리오로 간다면 홍역 모델이고 2번이나 3번 시나리오로 간다면 인플루엔자 모델에 가깝다. 6번 시나리오가 가장 매력적이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고 그중 대다수는 이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전문가들도 코로나19의 앞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2번이나 3번, ‘인플루엔자 모델’ 시나리오를 전망한다.

종합해보면, 만약 당신이 생각한 코로나19의 ‘끝’이 코로나19 확진자(감염자)가 영원히 0명인 세상을 의미한다면, 그 끝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올해 11월부터 코로나19가 없던 시절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면 그것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Q:그럼 망했나, 우리는?

A:아니요.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던 바가 고정된 의미의 ‘집단면역’과 ‘종식’이 아니라면, 그저 ‘감염병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삶’이라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다시 새로이 정의될 수 있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응단장은 “집단면역 성공과 실패를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확산 속도가 2.5이고 1 이하로 낮아져야 바이러스가 언젠가 소멸된다고 보았을 때, 1 아래로 내려가면 성공, 내려가지 못하면 실패가 아니다. 3보다는 2가, 2보다는 1.5가, 1.5보다는 1.4가 유행을 조절하기 용이할 것이고 일정 숫자가 되면 훨씬 유리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성공-실패, 합격-불합격의 이분법이 아니라 꾸준히 점수를 올려가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승기를 잡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임승관 단장은 그 시점을 “더 이상 서지(surge, 의료 과부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암이나 심장병은 왜 중대본과 중수본을 만들어 대응하지 않나? 적극적 개입을 하지 않아도 폭증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발생 자체가 큰 오류는 아니다.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이라도 일정하고 대략 예측대로만 굴러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증상자 찾고 관리 잘해서 ‘서지’만 방지하면, 종식이 아닌 조절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지금의 확진자 700명은 불안한 700명이다. 확산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어서 언제든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백신접종이 원활히 진행되면, 오는 11~12월쯤 똑같은 700명이 발병하더라도 확산 폭증과 사망자 등 극심한 피해를 유발하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감당 가능한 감염병’이 되어야 한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 시점 집단면역 목표를 “코로나19를 우리 의료 역량이 감당 가능한 정도의 통상적인 호흡기 감염병으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한 해 3000~5000명 수준이다. 코로나19도 (별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없이) 백신접종과 통상적 감염관리 조치를 통해 사망자가 한 해 3000명 이하 발생하는 정도가 되면 우리 사회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학 경제학과 교수 역시 독감과 비교하며 코로나19 대응의 목표를 말했다. “매해 매달 매일 계절성 독감에 걸린 사람의 숫자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일일이 세지 않는다. 단지 가을마다 열심히 예방접종을 해서 겨울철 유행으로 중환자와 사망자가 대량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막을 뿐이다. 코로나19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이고, 그래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18~21쪽 관련 기사 참조).”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19의 ‘종식’ 혹은 ‘집단면역 달성’을 꼭 사전적 의미, 정확한 학술적 개념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감염병을 더 이상 특별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상황을 종식이라 여긴다면, 코로나19 종식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코로나19 종식의 가장 빠른 시점은 고위험군의 백신접종이 완료되는 시점이다.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종식의 가장 느린 시점은 예방접종이 가능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마칠 때다. 그러면 낮은 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코로나19 사망의 위험도 막게 된다. 그 과정 자체, 혹은 그 사이 어느 시점이 집단면역 달성의 순간일 수 있다.”

Q:11월에 마스크 벗을 수 있나?

A:예 혹은 아니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시기를 집단면역 달성의 순간으로 볼지, 코로나 종식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지는 사실 정책 입안자 처지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일반 시민으로서 가장 궁금한 질문들은 사실 이런 것이다. ‘마스크를 언제부터 벗을 수 있나요?’ ‘올해 겨울부터는 5인 이상 회식을 할 수 있을까요?’ ‘내년부터는 우리 아이 매일 등교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코로나19의 위험’과 ‘일상 회복’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최적화된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균형점은 매일,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도 한국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지역별·부문별로 다르게 몇 주 간격을 두고 업데이트되고 있다. 하지만 백신접종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발생이 안정화 추세에 들어가면 앞으로 사람들은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백신접종 후에도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나요?’ ‘백신 맞은 사람끼리 많이 모여도 되나요?’ ‘백신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이 만날 때는 거리두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등등.

미국과 유럽은 최근 이에 대해 잠정적이지만 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4월21일 ‘COVID-19 예방접종의 이점과 비약물적 개입에 대한 임시 지침’을 발표했다. 감염병 대응에서 ‘비약물적 개입(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 NPIs)이란 마스크 쓰기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들을 말한다. ECDC는 16쪽 〈그림 2〉와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은 개인이 각각의 상황에 따른 위험 평가를 기반으로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을 어떻게 결정할지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다.

미국 CDC도 4월29일 ‘백신 접종자를 위한 임시 공중보건 권장사항’이라는 지침서를 냈다.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1회 접종자 포함)의 상황·활동별 코로나19 감염 위험도와 마스크 착용·2m 거리두기 필요성을 알기 쉬운 그림으로 나타냈다(아래 〈그림 3〉 참조). 한국에서도 조만간 이런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다. 5월5일부터 백신접종 완료자들은 확진자와 밀접접촉한다 해도 코로나19 검사 이후 음성으로 확인되면 2주 자가격리가 면제된다. 저위험 국가로 분류된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벌써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 시작된 것이다.

변화는 부문마다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마스크 벗어도 되나요?’ ‘확진자 나와도 정상 운영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그 기관이나 시설의 물리적 특성, 이용자의 분포 등에 따라 다른 답이 내려질 수 있다. 정치권과 여론이 각 부문에 부여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리 매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4월25일 전북 익산시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에서 1.5단계로 내렸다. 오후 10시까지였던 식당·카페·노래방·유흥시설 등의 운영시간 제한이 해제되고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완화됐다. 하지만 공공 체육시설·문화시설·복지관·경로당 등은 폐쇄를 유지하기로 했다. 2020년이 ‘록다운’의 해였다면 2021년은 ‘리오프닝(재개)’의 해일 수 있겠으나, 그 재개의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한 불평등이 올해 하반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갈등 요소로 떠오를 확률이 높다.

변화들은 또한 매우 점진적일 것이다. 또 그래야 한다. 이재갑 교수는 변화가 객관적이고 단계적인 위험평가에 기반하지 않으며 여론의 눈치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성급히 이뤄질까 봐 우려한다. “백신접종이 제대로 안 돼 있는데 거리두기 단계만 먼저 내리면 확진자가 늘고 그에 따라 사망자도 증가할 수 있다. 현재 인도와 같은 위기를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최소 6개월~1년 기간을 두고 확진자 수와 기초감염재생산지수 등을 고려하며 단계적·점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훈상 경희대 공공대학원 객원교수는 “접종률 목표가 60%든 70%든 ‘그걸 달성하는 날이 마스크를 벗는 날이다’는 식의 단언적 메시지를 방역 당국이 내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날에 가까워질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접근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다’ ‘조금씩 희망을 키워가며 장기적으로 일상 회복 수순을 밟자’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대국민 소통을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변화를 위한 용기는 필요하다. ‘걱정은 되지만 마스크를 벗자’와 ‘마스크를 벗지만 조심은 하자’는 한 끗 차이이기도, 하늘과 땅 차이이기도 하다. 분명한 점은 ‘잘 모르겠으니 코로나19가 없어질 때까지 최대한 안전한 길로만 가자’는 판단은, 곧 ‘앞으로 영원히 언제까지나 2020년처럼 지내자’는 결정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코로나19가 어느 순간 ‘감당 가능한 감염병’이 된 시점에도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을 살고 있을 것이다.

Q:코로나19는 극복 가능한가?

A:예. 백신을 접종하면.

결국 목표는 하나의 결승점이 아니다. 길이다. 여정과 방향 자체가 코로나19 극복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상을 최대한 회복해가는 균형점을 찾는, 좁고 아슬아슬한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성공해나갈 수 있다. 그 기반이 바로 ‘백신접종’이다. 최대한 많은 이가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을 향한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다. 집단면역 결승점에 이르러야 이윽고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승점에 이르기 위한 길 위에서 우리는 매일 나날이 더 안전해지고 있다.

쉬운 길이 아니다. 백신 수급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부작용에 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재훈 교수는 “2분기 고위험군 접종은 비교적 빨리 진행되는 편이지만 3분기 일반인 대상 접종 때부터는 백신을 맞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본격 설득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20~30대 젊은 층의 백신 접종률이다. 이재갑 교수는 “젊은 층 접종률이 40~50%에 머무르느냐, 그 이상 치고 올라가느냐에 따라 확진자 500~600명대로 1~2년을 지지부진하게 가느냐, 확 줄어들어 사회가 빠르게 일상 회복을 하느냐를 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재갑 교수는 이들에 대한 백신접종 인센티브를 방역 당국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층은 코로나19 감염 시 위험을 낮게 인식하는 반면 백신접종 위험은 비교적 높게 인식하고 있다. 백신접종 휴가나 보너스, 기업 차원의 지원, 이스라엘에서 도입한 ‘그린패스(백신 접종자들의 통행증)’처럼 조금 더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접종 독려책이 필요하다.”

오명돈 교수는 고령층 접종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높은 치사율 때문이다. “만약 내가 70대 노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위험의 판단 기준은 단 두 가지다. 첫째, 내가 백신을 접종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둘째, 내 또래 70대가 백신접종을 90% 가까이 했느냐 50%에도 못 마쳤느냐. 이 두 가지에 따라서 유행 폭발 시점에 ‘내가 중환자실에 누울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 오 교수는 우리 정부와 사회가 고령자의 접종률을 1%라도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접종률이 기대만큼 안 올라간다면 65세 이상만이라도 백신 선택권을 줘서라도 80~90%까지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백신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와 4~5월의 코로나19 속보를 대조해보거나 사망자 발생 수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확진자 수는 700명대로 비슷하지만 요양병원 등에서의 집단감염이 현저히 줄었다. 사망자 발생, 중환자실 부족, 입원 대기 환자 발생 같은 ‘의료 과부하’ 소식도 잘 들리지 않는다. 이미 어떤 곳에서는 ‘작은 집단면역’이 달성되었다는 증거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요양병원처럼 외부 교류가 많지 않은 집단 시설에서 환자와 종사자들이 백신접종을 마치면 적어도 그 안에서는 코로나19가 (잠시나마) 종식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겨우 3% 남짓 백신접종을 마쳤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꺼림칙해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이 비율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이 정도 변화라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 걸까? 임승관 단장은 “이미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백신접종의 가치와 고마움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되고 인식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펑! 하고 펴지는 마법의 초대형 면역우산은 없다. 각자 자기 머리 위를 가리는 개인의 작은 우산이 모일 뿐이다. 하지만 그 우산들이 모이면 공동체의 우산이 된다. 몸이 아파서, 어려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우산을 펼치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도 모여든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할 수 있다. 하나의 큰 우산이 펼쳐지지 않아도 서로가 젖지 않게끔 도와줄 수 있고,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우산을 펼칠수록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

‘11월 집단면역 달성’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실패는 아니다. 지금 우리는 한 명씩 우산을 펼쳐 드는 아름다운 ‘집단면역 과정’에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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