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로 쓰이는 질병관리청의 COOV 애플리케이션. 백신 패스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

백신접종은 분명한 차이 하나를 만들어낸다. 이제 시민들은 코로나19에 면역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돼 면역을 획득한 이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극소수에 그쳐 그동안은 의미 있는 기준이 되지 못했다. 면역을 보유한 사람들의 비중은 앞으로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점점 커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만만치 않은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통행하고, 교류하고, 각종 방역 수칙에서 해방될 자유를 우선적으로 줄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일상을 회복하는 속도와 범위에 어디까지 차등을 둘 것인가? 그것은 어떤 효과와 어떤 부작용을 만들어낼까? 그리고 과연 옳은 방향일까?

세계 공중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백신 여권’이나 ‘백신 패스’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다만 찬성하든 반대하든 공히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딜레마를 피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백신접종의 윤리〉의 저자이자 ‘백신 패스’를 옹호하는 생명윤리학자 알베르토 주빌리니 박사는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 논쟁은) 두 가지 악함 중에 덜 악한 쪽으로 가는 일처럼 보인다.”

면역 획득에 비례해 개인에게 자유의 공간을 확대하는 조치는 현대사회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획득해왔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의무화하고,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 등 특정 국가에 입국하려는 사람들에게 황열병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일에 반박하는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그런데 유독 코로나19 예방접종에는 ‘백신 여권’이나 ‘백신 패스’ 같은 우대 정책을 두고 여러 논쟁이 제기된다. 무엇 때문일까?

먼저 ‘백신 여권’의 개념과 현재를 살펴보자. 백신 여권, 백신 패스, 백신 패스포트, 백신 증명서, 백신 인증서 등 여러 단어가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정된 용어나 정의는 아직 없다(이 기사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쓰이는 통행권을 ‘백신 여권’, 국내에서 이동이나 모임의 자유를 허용하는 형태의 증명서를 ‘백신 패스’라고 칭한다). ‘백신 여권’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게 해주는 백신접종 증명서’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백신 증명서’를 발행하는 나라도, 백신 접종자라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도 없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입국자는 제외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입국금지 여부는 개인의 백신접종 여부 자체보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코로나19 유행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5월5일부터 한국에서 백신을 접종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국내 입국 시 2주 자가격리 면제를 발표했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될 위험이 높고 유행세가 심각한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입국자는 제외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는 백신 여권의 완전한 의미에 가깝게 백신 접종자에게 조건 없이 국경을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이슬란드의 유행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시행이 보류됐다.

3월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축구장 앞에서 공연 관람을 위해 ‘그린 패스’를 보여주는 사람들. ⓒAP Photo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범용’ 백신접종 증명서를 개발하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통일된 형식의 백신 여권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연합(EU)에서 역내 국가 간 통행에 쓰일 ‘디지털 그린 패스’를 여름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각 나라의 유행 상황에 따라 자유로운 왕래를 제한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백신 여권의 보다 현실적인 모습은 각 국가 간의 개별 협약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유행세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방접종을 공신력 있게 입증할 수단이 확보된 국가들 사이에 2주 자가격리 같은 제한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5월17일 브리핑에서 “국내 승인된 백신과 함께 WHO에서 긴급승인한 백신까지 입국 시 자가격리 면제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현재 외교부를 중심으로 각국이 어느 정도 엄밀하게 (접종 증명) 절차를 확인하는지 검토해 국가별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특정 지역 내에서 자유로운 이동과 입장을 허용하는 ‘백신 패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일부 주 등에서 도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전반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이 완화되고 있지만 호텔, 실내 수영장, 체육관 같은 몇몇 다중이용시설은 아직 고위험 시설로 분류돼 있다. 이런 시설은 ‘그린 패스’ 소지자만 이용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백신 패스뿐 아니라 백신 접종과 연계된 일상의 자유가 다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5월13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자는 실내외 상관없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권고했다. 채용 과정이나 대학 기숙사 입소 시 백신접종 증명서를 요구하는 등 특정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접종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움직임까지 민간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 평등고용위원회(EEOC)는 각 기업이 직원들에게 백신접종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이 일부 도입되었다.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접종을 2회 완료하고 2주가 지난 사람은 확진자와 밀접접촉 시 혹은 해외 귀국 후 부과되었던 자가격리 2주 의무가 면제된다. 백신 접종자는 5인 이상 집합금지나 밤 10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를 풀어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 경우, 현재 ‘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로 쓰이는 질병관리청 COOV(쿠브) 앱이 ‘백신 패스’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을 맡게 된 김부겸 총리는 취임 직후인 5월16일 “관계부처는 접종을 마친 분들을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조속히 검토해주기 바란다. 백신접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일상 회복을 체감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백신접종 의향이 하향세를 그리는 가운데 접종 시 이득을 높여 접종률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일부 선진국에만 돌아가는 혜택

백신을 접종하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의료적인 이득이다.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 여권, 백신 패스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사회적인 이득이다. 코로나19 고위험군, 즉 고령층일수록 백신접종의 의료적 이득이 커진다. 감염 시 목숨을 잃거나 중증으로 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백신접종의 의료적 이득이 작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란 한층 까다로운 일이다. 고위험군 대상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접종 범위가 넓어지는 7월 이후에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의료적 이득’이 줄어든 대신 ‘사회적 이득’을 높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쟁점들이 국제적인 차원과 국내 수준에서 각각 남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여권 도입에 부정적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WHO 수석과학자인 숨야 스와미나탄 박사는 5월1일 국제 보건단체 ‘인권을 위한 의사들(PHR)’ 온라인 토론에서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 번째는 과학적 측면이다. 코로나19 백신이 중증이나 사망을 막아주는 효과는 확인되고 있지만 무증상 상태로 감염된 채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것까지 막는지는 아직 모른다. 두 번째는 윤리적 측면이다. 전 세계적인 백신 분배가 극도로 불공평한 가운데 백신 여권을 도입한다면 소수의 선진국에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지구상의 전체 코로나19 백신 계약에서 선진국과 중상위 국가가 확보한 물량은 86%에 달한다.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데이터센터장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의료진이나 고령자처럼 최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이들에게 접종할 백신도 충분치 않다. 그런데 백신 여권이 제도화된다면 이들을 제치고 비즈니스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종 우선순위가 돌아갈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백신 여권이 던지는 질문은 외국으로 휴가를 갈 수 있을지, 그 이상이다. 위는 지난해 8월 제주국제공항 대합실. ⓒ시사IN 이명익

‘백신 패스’가 한 국가 내에서 가져올 변화는 좀 더 미묘한 지점을 건드린다. 백신 접종자에 한정한 우대정책은 뒤집어보면 비접종자에 대한 차별이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혹은 한 사회가 코로나19로부터 회복하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접종자와 비접종자 사이에 차이를 두는 것은 정당한가. 만약 둔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구체적인 정책마다 차별의 정도는 달라진다. 2주 자가격리를 면제하거나, 요양병원·요양원 면회를 좀 더 자유롭게 하는 수준의 방침은 차별적인 요소가 약하다. 반면 미국처럼 고용주가 노동자의 백신접종을 의무화하거나, 채용 과정에서 백신 비접종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차별과 배제의 성격을 짙게 깔고 있다. 대신 반대급부로 접종을 유인하는 효과는 훨씬 강력하다.

각 사회는 그 사이에서 나름의 경로를 찾을 것이다. 한국의 방역정책을 면밀히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백신 여권, 백신 패스처럼 접종자의 자유를 확대하는 조치들이 접종률을 높이려는 인센티브 측면에서만 조명되는 현재의 흐름을 경계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상충되는 가치들 간에 균형점을 찾아가는 논의가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백신 여권’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올여름 외국으로 휴가를 갈 수 있을지, 그 이상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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