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의 행진’ 집회에 수많은 참여자가 운집해 있다. ⓒAFP PHOTO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진 것은 페미니즘의 패배인 양 간주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기간에 스스로 ‘유리천장을 깨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부각했다.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은 것으로 조사된 그는 당선이 명백해 보였다.

반면 부동산 거부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당시 여성과 성소수자, 이민자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선거 직전에는 여성 다섯 명이 트럼프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공직 진출 자체가 문제시됐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클린턴을 지지했던 페미니스트들을 격분시킨 사실이 있었다. 트럼프의 승리에 백인 여성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백인 여성의 53%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이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은 35%,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여성은 56%였다. 흑인 여성의 94%와 라틴계 여성의 68%가 클린턴에게 표를 던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팝스타 마돈나는 〈빌보드〉지에 “백인 여성이 우리를 배신했다. 여성은 여성을 싫어한다”라는 자극적인 말을 남겼다. 저널리스트 수전 무어는 “여성혐오는 남성만의 속성이 아니다”라며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정관념까지 소환했다.

2016년 대선 이후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 53%’라는 통계는 밈(meme)이 되었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내내 이 ‘53%’를 강조하며 페미니스트들과 보란 듯 맞섰다.

이런 트럼프를 통해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트럼프 취임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페미니스트 300여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단일 시위로 기록됐다.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으로 불린 이 페미니즘 시위는 세계 168개국으로 퍼지면서 400여만 명이 참석했다. 여러 분파로 나뉜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행진’을 통해 트럼프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했다. 반면 ‘포스트 페미니즘’(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이미 여성들의 지위가 확보되었고 앞으로도 증대될 것이므로 페미니즘 자체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조류)은 뭇매를 맞았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아버지의 반페미니즘 이미지를 의식한 듯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남녀 임금차별 철폐를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성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 같은 발언으로, 성공한 백인 여성을 대표하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2016년 미국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버니 샌더스의 ‘사회민주주의 페미니즘’ 사이에 깊게 파인 골을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같은 해 2월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선거’ 때 그는 샌더스에게 20% 이상의 큰 차이로 패배했다. 이는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45세 이하 젊은 여성 가운데 64%가 샌더스를 전폭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 연령대 여성 가운데 34%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클린턴 캠프는 충격에 빠졌다.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샌더스를 ‘비록 여성은 아니지만 힐러리 클린턴보다 나은 페미니스트’로 여긴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당시 샌더스를 지지한 여성 유권자들은 페미니즘 의제(성차별과 억압 반대)를 성소수자에까지 확대하는 경향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는 버몬트 시장이던 1983년에 게이 퍼레이드를 지지했다. 대중의 68%가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던 1996년에도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남성과 여성만의 결합을 결혼으로 규정한 법률)’에 반대할 정도로 성차별주의 및 억압과 싸워온 인물로 간주되었다.

이에 비해 힐러리 클린턴이 변화된 여성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인지 의문시되었다. 페미니즘을 브랜드로 활용하며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도 나왔다. 예컨대 2016년 대선 국면에서 그는 메디케이드(빈곤층과 장애인에 대한 의료보장제도)를 낙태 비용에 적용하는 것을 금지한 수정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2008년 대선 당시엔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에도 침묵한 바 있다. 클린턴은 또한 ‘미국 자본주의의 기회와 자유’를 칭송하며 “우리는 덴마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힐러리는 미국 여성이 덴마크보다 더 많은 빈곤과 실업을 견뎌야 하는 것을 알 만큼 똑똑하지만, 그 사실을 무시할 만큼 뻔뻔한 여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클린턴의 정치적 궤적은 결국 백인 중산층 여성을 대표할 뿐 다양한 인종과 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발언도 페미니즘 내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들을 향해 “여성을 지지하지 않는 여성은 지옥에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 운동의 전설로 통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남자들이 샌더스와 함께하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 버니를 지지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샌더스를 지지하는 남성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버니 브로스(Bernie Bros·버니의 형제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스타이넘의 발언이 나오기 4개월 전 ‘버니 브로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유명 시사지 〈애틀랜틱〉의 로빈슨 마이어 기자는 이 용어가 원래 의도와 달리 경멸의 의미로 통용되자 당혹한 나머지 공개 탄원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6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여성이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트럼프에게 투표할 때 영웅심을 느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들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거부감은 2016년 5월 오리건주 예비선거에서 절정을 이뤘다. 샌더스가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카운티를 휩쓸었던, 흠잡을 데 없이 진보적인 오리건주에서 여성의 27%가 (힐러리에게 투표하느니 차라리)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여론조사에서 답변한 것이다. 페미니즘계가 술렁였다. 오리건주에서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가운데는 클린턴에 대해 단지 결함 있는 후보가 아니라 ‘사탄 같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 클린턴은 (성별은 여성이지만) ‘자본주의 가부장’의 전형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후 조사들에서 샌더스 지지자 중 일부가 실제로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페미니스트 성향으로 보이는 ‘샌더스→트럼프’ 유권자들이 심각한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를 실감한 듯 버니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실패한 뒤 힐러리 클린턴을 미지근하게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2020년 경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뒤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바이든에게 투표해달라’고 강력히 호소했다. 여성들에게도 트럼프 재선은 미국의 페미니즘을 총체적 난국으로 밀어넣을 것이 분명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의 한계를 마주해야 할 운명이었다.

‘샌더스→트럼프’ 유권자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페미니즘엔 ‘백인 여성 53%’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백인 여성 1만여 명은, 2016년 대선 당일 19세기 후반 여성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수전 앤서니의 무덤을 찾아 “투표했어요(I voted)”라는 스티커를 남겼다. 1세대 페미니스트인 수전 앤서니는 흑인 시민권을 지지했으나 여성을 제외한 흑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인준하려는 움직임에는 반대한 인물이다.

미국 페미니즘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백인 여성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백인 여성 유권자 중 다수는 1952년부터 지속해서 공화당에 투표해왔다. 1960년 선거에서 백인 남성이 존 F. 케네디를 선택할 당시 백인 여성은 대체로 리처드 닉슨에게 투표했다. 1950년대 이후 백인 여성이 지지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과 제42대 빌 클린턴뿐이다. 이에 대해 제인 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는 ‘백인 여성 유권자들이 성장하면서 정치적으로 사회화됐기 때문’으로 파악했다. 자라면서 들어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트럼프에게 투표할 때 영웅심과 애국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백인 여성들이 유색인종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이 직면한 폭력에 거의 주목하지 않으며 심지어 인종 계층의 상위에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는 분석도 있다. 백인 여성들은 백인이 인종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머무르는 한 ‘여성이라는 2등 지위’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은 세계 뉴스를 장식할 만큼 심각했던 트럼프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둔감했다. 공화당 여성의 15%만이 트럼프의 성차별 언행이 큰 문제라고 답했을 뿐이다(민주당은 45%). 또한 공화당 여성의 26%(민주당은 50%)만이 ‘성별 차이로 인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여성의 39%는 ‘여성도 남성만큼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에 클린턴 지지 여성들은 17%만이 동의했다. 트럼프가 저소득 백인 여성의 표심을 확보한 것은 ‘그들의 남편을 일터로 돌려보내겠다’는 구체적인 호소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은 저소득 백인 여성에게 1950년대 가정주부의 안락한 환상을 꿈꾸게 했다는 것이다.

2020년 대선에서는 어땠을까. 지난해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가 우여곡절 끝에 백악관에 입성했는데, 이는 페미니즘의 승리를 의미하는 걸까?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의 행진은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 53%’를 변화시켰을까?

백인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대선에서는 백인 여성의 5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2016년 당시보다 2%포인트 높았다. 다만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들 가운데 51%가 2016년에 클린턴을 지지한 반면 2020년 대선에선 이 집단의 62%가 바이든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페미니즘의 ‘교육적 효과’라기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트럼프의 안일한 태도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젊은 백인 여성 절반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2020년 대선에서는 18~29세 여성들 중 53%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것이다. ‘백인 여성 53% 신화’는 이번 대선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하지만 흑인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 가운데는 2016년과 2020년 모두 각각 90%, 65% 이상이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2016년 11월16일 워싱턴에서 열린 어린이 보호기금 기념식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연설하고 있다. ⓒAP Photo

젠더·인종·계급이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

그렇다면 ‘다양성’과 ‘통합’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페미니즘의 기대에 부합하는가?

바이든이 취임식 직후 발표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및 퇴치에 관한 행정명령’에 대해 페미니즘 분파 중 하나인 터프(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즘)는 “바이든이 오바마 시절로 퇴보했다”라며 반기를 들었다. 행정 조항 가운데 ‘아이들이 화장실, 라커룸(샤워실), 학교 스포츠 등에 대한 자신의 접근이 거부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정한 자신의 젠더(문화적 성정체성:예컨대 생물학적 남성이라도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따라 행위를 해도 이를 거부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생물학적 성정체성을 중시하는 ‘터프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 여성(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우)이 스포츠 대회 수상을 독식하고 여성 화장실에까지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을 ‘페미니즘들(feminisms)’로 불러야 한다고 할 정도로 여성운동 분파가 다양하다. ‘여성들의 행진’과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거치면서 최근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이 세를 얻고 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1989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인 킴벌리 윌리엄스 크렌쇼 교수가 고안한 이론이다. 특정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이란, 그의 젠더·인종·계급 등 다양한 측면이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크렌쇼 교수는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교차성 페미니즘을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함께 작동하고 상호 간에 악화시키는 방식을 보는 프리즘”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흑인 여성’을 이해하려면, 그가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과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이 서로 엮이고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억압이 강화되는 ‘교차 지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폭력과 차별의 오랜 역사적 맥락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 조류의 운동가들은 주장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클린턴과 바이든에게 90%가 넘는 지지를 보냈던 바로 그 흑인 여성들을 대표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백인 여성의 경험에만 초점을 둔 전통적인 백인 페미니즘을 실패로 규정하며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및 LGBTQ(여성·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혹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갈등을 겪는 사람) 권익 운동과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백인 페미니즘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비평가 H. L. 매켄은 여성혐오를 ‘여성이 서로 미워하는 만큼 남성도 여성을 미워하는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성이 서로 미워한다고 말하면 남성도 여성을 미워하도록 암묵적으로 허용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백인 여성 53%’라는 신화를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여성 간 여성혐오 고정관념의 신화를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신화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등장하는 여성 리더들이 나올 때마다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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