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11월3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11월7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5단계 체계로 개편된다.

지속 가능한 방역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시사IN〉 제681·682호(한가위 합병호)의 오명돈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가 논의의 발제문이 되었다. 〈시사IN〉 제685호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와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기고문에 이어,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감염내과 전문의)이 글을 보내왔다. 더 나은 대안 도출을 위한 숙의의 광장으로서 〈시사IN〉의 지면을 활용하고 싶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를 기다린다(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

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두려움 해소’ 아닌 ‘위험 대처’가 중요하다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

‘당장의 손실’보다 ‘미래의 이득’을 보자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

지속 가능 방역, 검사·조사·기술보다 ‘질적 전환’이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⑤‘균형 잡힌’ 방역이라야 지속가능하다
COVID-19 워킹그룹

⑥우리의 ‘방역 소통’은 충분히 최선이었을까
COVID-19 워킹그룹

⑦“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⑧확진자 수에 집착 말고 '위험 수용 능력' 높여야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한국은 9개월이 넘도록 통제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특별한 국가 중 하나다. 검사(testing)·추적(tracing)·격리(isolation)에 역량을 집중 투입한 이른바 K방역 덕분이다. 통제에 성공했다는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경험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풀이도 된다. 지난 10월26일 한국의 신규 확진자 수는 119명이었다. 같은 날 프랑스는 5만2010명이 확진되었다. 이 437배의 차이를 과연 우리는 제대로 감각하거나 이해할 수 있을까?

세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팬데믹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거칠게 분류하면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아래 〈그림 1〉 참조). 그룹 1은 확산이 철저히 통제된 국가들이다.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감염 발생은 시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 규모가 방역 당국의 통제를 넘지는 않았다. 사망 그래프도 발생 곡선을 비교적 정직하게 뒤따른다.

그룹 2는 유행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억제되지 않는 나라들이다. 사망도 조절되지 않고 줄곧 비슷한 분율로 기록되어왔다.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러시아 같은 대륙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가장 걱정스러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룹 3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유럽에서 주로 관찰되는 패턴이다. 지난 3월 첫 파도를 맞은 뒤 록다운(lockdown) 같은 적극적인 통제정책으로 유행이 조절되었다가 두 번째 파도를 다시 맞고 있다. 발생 규모는 2차 유행인 최근 더 커지고 있지만 사망 통계는 비교적 조절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철 소강 기간에 고위험군(노인·기저질환자 등)과 고위험 시설(의료기관·요양시설 등)을 보호하는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두 피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틈새

물론 국가 사이의 그래프를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 우열의 문제도 아니다. 유형 분류를 통해 얻어야 할 통찰은 단지 이런 것이다. 한국은 아직 도입부일 수 있다는 것, 다가올 겨울 그리고 내년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앞서 통과한 국가의 경험을 묻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성공담이든 실패의 교훈이든.

지금 우리는 팬데믹 대양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까? 그래프 X축(가로)을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 Y축(세로)을 사망률로 두고 주요 국가별로 점을 찍어보면 〈그림 2〉와 같다(10월29일 세계보건기구 WHO 통계).

이번에는 가로축의 숫자를 100만명당 60만명까지 늘려보았다. 〈그림 3〉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가 최소 60%의 인구집단이 면역을 획득했을 때라고 가정할 때, 〈그림 3〉에 찍힌 국가별 좌표들은 아직 도입부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진단검사로 확진된 사람들만 통계에 포함되기 때문에 발생률은 과소하게, 사망률은 과대하게 표시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인류의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았다.

우리는 이제껏 대략 그래프 X축을 면역 획득의 시간, Y축을 사회가 입는 피해로 이해해왔다. 그 피해란 대개 확진자 수의 증가, 사망자 발생과 같은 방역·의료적 손해다. 그렇다면 이런 방역 비용을 제외한,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여러 사회경제적 손해는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진정한 난제가 시작된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원의 어르신 한 명이 코로나19로 생명을 잃는 건 얼마만큼의 손해이고, 응급실 서비스 이용 장벽이 높아지는 바람에 제때 치료받지 못해 심혈관 질환자가 생명을 잃는 건 얼마인가? 학교에 등교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손해는 어린이 한 명당 하루에 얼마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영업을 포기한 자영업자의 우울과 상심은 대체 얼마인가? 피해는 이렇게 측정하기 어렵고 비교하기는 더욱 어렵다.

팬데믹의 시간과 방역적 피해, 사회경제적 피해라는 이 세 가지 항에 대해 이제껏 우리가 대개 인식해온 형태는 아마 〈그림 4〉와 같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방역·의료적 피해와 사회경제적 피해는 서로 반대 방향의 힘이 작동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한데,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힘이 강하면 방역에 방해가 된다고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도식은 사실 틀렸다. 실제 구조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표현돼야 한다. 〈그림 5〉를 보자. Z축이 추가됐다. X축은 집단면역을 향해 흐르는 시간이다. 감염 확산도 백신 활용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 시간은 국가별로 다른 속도로 진행한다. Y축은 방역·의료적 피해를, Z축은 사회경제적 피해를 나타낸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정은 평평한 수면 위 항해가 아니라 위도와 경도 그리고 고도를 갖는 비행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전 세계는 제각기 다른 항로로 비행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두 피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틈새를 찾아야 한다. 기회는 선순환형 구조에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검사·추적·격리의 방역 활동을 수행하면 의료시스템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확보된 여유 시간에 중환자 병상 같은 치료 자원의 양을 늘리고 운영 효율을 높이면 봉쇄정책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그러면 일상에 좀 더 여유가 생기고 더 많은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정부와 시민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세련된 위험소통이 가능해지며, 그 결과 사회 결속력이 상승하면서 방역 활동의 강도와 범위를 상황에 맞춰 세밀하게 조절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 속에서 사회 전반의 유연성이 확보되고 어떤 정책을 시도해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역 활동과 사회경제적 활동은 이제 더 이상 반대 방향의 힘이 아니다. 이 둘이 각각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적절히 상호작용하면, 삼차원의 공간을 ‘나선’ 형태로 지날 수 있다(〈그림 6〉 참조). 지속 가능한 방역이라는 난해한 질문의 실마리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방역·의료의 지속가능성 담론이 꼭 이어져야 하는 길은 ‘확대가능성’ 혹은 ‘전환가능성’이다. 지난여름 한국의 2차 유행 시 일일 최대 확진자 수는 8월27일 441명이었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했고 가정 대기자들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처럼 하루 5만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해도, 스웨덴처럼 2000명의 확진자가 매일 발생한다면 한국은 대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올해 초 강력한 방역정책으로 어렵게 시간을 벌어두었지만 그 여유시간의 준비가 미흡했다. 치료 자원 확보, 고위험 시설 보호대책 마련, 유행 폭증 시의 국가전략 수립, 장기 전망에 대한 소통 모두 부족했다.

경기도의 코로나19 병상 자원 예를 들어보자. 경기 지역은 병원도 많고 병상수도 적지 않다. 종합병원이 총 65곳, 병상수는 2만5256개다. 그런데 10월29일 기준 경기도에 확보된 코로나19 격리 진료 병상은 총 675개뿐이다. 그중 90%를 지방 공공의료원 7곳이 제공한다. 지난 10개월 동안 5400명 이상의 누적 확진자 중 95%를 경기도의료원 산하 여섯 개 병원과 성남시의료원이 진료했다. 병원이 아무리 많다 한들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규모가 작고, 중환자 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공공병원 몇 곳 말고는 거의 찾기 힘든 것이 지금 우리의 실정이다.

ⓒAP Photo10월21일 캐나다 토론토의 한 식당. 야외에 마련된 비닐하우스 좌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시민.

지속가능성에서 전환가능성으로

그렇다면 ‘한국 의료체계 안에서 양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질적으로 우월한 민간 의료기관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이 앞으로 지속 가능한 방역을 위해 필수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정부와 사회에 이 질문을 던졌지만 어떤 답변도 받은 기억이 없다. 공공병원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어 한국 코로나19 대응은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더 많은 진단검사, 더 많은 역학조사, 더 많은 중환자 병상 같은 ‘양적 확대’도 중요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질적 전환’이 핵심이 될 수 있다. 봉쇄(containment)에서 완화(mitigation)로 전략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다가오는 겨울 어느 날, 너무 늘어난 감염자를 다른 국가들처럼 가정에서 관리하자고 한다면? 역학 추적조사는 이제 큰 의미가 없으니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자고 한다면? 접촉자들 중에서도 유증상자만 검사하고, 확진된다 해도 증세가 심한 환자들만 가려서 병원에 입원시키자고 한다면? 이제 음압 공조 없는 병실에서 진료하자고 한다면? 국제표준에 맞춰 D 레벨 방호복은 이제 그만 입자고 한다면? 끝없이 이어질 이런 질문들 앞에서 K방역은 다음 전략으로, 그다음 전략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을까? 전환이 의도대로 가능하지 않다면 그 사회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까?

우리는 이 재난을 벗어날 길을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 같은 의료·방역기술에서 찾으려는 오류를 쉽게 범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주연은 위기 소통, 민주주의, 분배정의 이런 것들이리라. 그런 점에서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하고 복지체계가 튼튼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감염 확산을 방관하면서 집단면역을 도모한다는 오해 속에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은 스웨덴을 지켜보며 가장 놀라웠던 일은 그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스웨덴 방역 당국은 지난봄 다른 유럽 국가들과 차별적이었던 정책이 두 가지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첫째, 국경 폐쇄를 하지 않은 것. 바이러스의 강한 전파력을 생각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부족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둘째, 공권력을 동원한 록다운은 가능한 한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 시민의 자율성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을 오래 유지할 수 없으며, 정부와 시민 사이 신뢰에 균열이 생기면 그 후로는 어떤 방역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랐다고 한다.

그 결과 스웨덴은 〈그림 7〉처럼 봄에 불길이 잡히는 속도가 늦었고 여름의 진화도 확실히 끝을 보지 못했지만, 동시에 가을에 새로운 불길이 번져도 여전히 피해(사망률)를 최소화하는 그래프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스웨덴 역시 신규 확진자 하루 2000명까지는 견디던 의료시스템이 하루 3000명, 5000명, 1만명까지 치솟을 경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면에서 입체로, 지속가능성에서 확대가능성 혹은 전환가능성으로, 기술에서 사회체제로, 질문은 점점 더 고차원이 되고 난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답일지 너무 힘들게 논쟁하지 말자. 인류가 처음 가는 길, 어차피 답 같은 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문을 발견해내는 지혜, 그리고 그 질문에 당당히 맞설 용기뿐이다.

재난의 시대, 시민들이 할 일은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슈퍼히어로’를 그저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삶은 영화가 아니다. 팬데믹 시대에도 주인공은 역시 평범한 우리들(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알아야 한다. 팬데믹의 바다란 대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손 들고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항로는 지금 어디를 향하는지.

 

기자명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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