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1월15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야외 공공시설 이용이 금지된 서울 마포구 지역 산책로.

〈'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

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두려움 해소’ 아닌 ‘위험 대처’가 중요하다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

‘당장의 손실’보다 ‘미래의 이득’을 보자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

지속 가능 방역, 검사·조사·기술보다 ‘질적 전환’이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⑤‘균형 잡힌’ 방역이라야 지속가능하다
COVID-19 워킹그룹

⑥우리의 ‘방역 소통’은 충분히 최선이었을까
COVID-19 워킹그룹

⑦“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⑧확진자 수에 집착 말고 '위험 수용 능력' 높여야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초기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게 관리했고, 인구당 확진자 수, 인구당 사망자 수, 거시 경제지표와 같은 지표에서는 OECD 국가 중 매우 좋은 편이다. 과거 메르스로부터 정책 학습을 해 감염병 관리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했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리더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 선제적 검사, 정보공개와 투명성, 전 국민 건강보험 등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2월과 3월에 대규모 확진자가 산발적인 양상이 아니라 특정 시설과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해 초기 대응이 상대적으로 덜 어려웠던 점도 유리한 요인이었다.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은 감염병 관리의 주요 요소인 국가의 통제를 개인이 받아들인 점, 마스크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점, 유럽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대규모 감염병에 대한 제도적 기억이 사라지면서 정부의 대응이 비교적 미비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여러 가지 한계도 드러내 보였다. 공공보건의료 공급자의 비중이 낮고, 주요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들의 의료 역량이 높지 않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에 과부하가 걸렸다. 민간의료기관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데에서도 여러모로 한계를 보였다. 취약집단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여, 특히 치명률이 높은 노인들을 위한 시설(요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많이 발생했고 치명률이 높게 나타났다. 또 비록 법률에 근거하긴 했지만, 확진자의 동선 파악과 공개 면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감염병 관리를 위한 국가적 통제 사이의 균형에 대한 고려가 다소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펴면서 민생, 교육, 복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서, 코로나 대응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예상보다 커졌다.   

ⓒ연합뉴스1월1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영업 제한 조치 등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수용성이 낮아지는 이유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대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책이다. 사람들 간 접촉을 줄여 감염 확산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사회적 비용(부담)은 취약계층에 훨씬 크게 나타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의해 영업이 제한된 영세자영업자들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그로 인해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또 그 부문에서의 고용도 감소됐다.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산업구조가 취약하고 영세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거시경제지표가 나쁘지 않더라도, 이러한 경제적 취약계층이 겪는 생존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확진자 수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로나 대응 정책이 시행되면서 학교 문이 오래 닫혀 있었다. 그로 인한 인적자본의 손실, 학력 격차 심화, 돌봄 비용 증가 등이 발생했다. 지역사회의 공공시설과 복지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사회적 취약계층에 큰 고통을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를  높이면 당연히 사람들 간 접촉이 감소해서 감염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포괄적인 가정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효과분석과 정책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제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이 엄청나게 사회경제적 영향이 큰 정책이 과학적 근거와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기보다 많은 가정에 근거한 시뮬레이션 모형, 그리고 국민들을 객체화하는 규범적 사고에 근거해 이루어지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이동량 감소를 목표로 하는 것보다는, 위험도가 높은 시설에서의 밀집도를 낮추고 취약집단과 시설에서의 방역 강화가 확진자와 사망자 감소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거리두기 ‘단계’에 매몰되어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과 어떤 상황에서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사업 손실에 대한 보상의 부재, 실증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 등에 의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큰 피해를 보는 영세 상공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정책 수용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가 원래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상태에서, 현재와 같이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응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방역 정책은 국민의 수용성이 낮고 사회적 비용도 크므로, 위험도 평가에 따라 고위험 시설과 고위험(중환자·노인) 인구집단을 집중 보호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과연 사람들의 이동과 접촉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서 확진자 수를 얼마나 감소시키는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 없이 정책을 시행하면 정책의 편익은 크지 않은데 경제와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만 미칠 수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 더욱 큰 부담을 줄 것이다.

코로나19의 속성상 경증 환자가 대부분이므로 총 확진자 수가 아니라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확진자, 특히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중증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의료체계의 여력(시설과 인력)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더 유리하다. 특히 지역사회 감염이 어느 정도 확산된 시점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사회적 자원의 효과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 대응 정책은 오히려 노인들과 같은 건강 취약층을 보호하고 이들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시사IN 윤무영2020년 10월1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K-방역, K-경제의 길을 찾다’ 토론회가 열렸다.

방역·보건의료·사회·경제를 포괄하는 관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하게 하면 설령 확진자가 감소하더라도, 실업과 도산에 의해 경제가 침체되고 빈곤이 증가하여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악화시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비용과 부담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따라서 효과적인 코로나 대응 정책은 정책의 편익(효과)과 사회적 비용을 모두 고려하고,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실증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들을 조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돌봄 문제, 학력 격차, 인적자본 손실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 학교와 지역사회의 복지시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른 시설보다 더 빨리 열고, 가장 늦게 닫아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해 국민들이 정확히 인지하도록 효과적으로 소통하여야 한다. 코로나19는 확진자 수는 많더라도 사망자는 적고, 기존의 방역 최우선 정책은 자원의 효과적 배분을 저해할 수 있으며, 의료체계의 역량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함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국민들이 코로나의 위험을 과소평가(인지)하면 개인위생과 방역에 소홀하게 되어 확진자가 증가하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의 위험을 과대평가(인지)하는 것 역시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치료 후 퇴원을 꺼리게 하는 등 효과적인 자원 배분을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팬데믹에 대응하는 어떤 정책들이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관한 실증적 근거를 쌓는 것이 정책 학습을 통해 미래의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방역에 전력한 결과, 코로나 대응 기간의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자료 분석과 근거의 축적을 통해 코로나와 팬데믹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객관적인 위험 인지에 대해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팬데믹 대응책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아플 때 며칠 쉰다’는 구호가 한국의 상황에서 공허했던 이유는 유급병가나 상병수당 같은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OECD에서 한국은 위와 같은 안전망이 부재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노인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정신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많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많이 생겼다. 장기적으로 이 분야 시설이나 의료·요양 서비스 질 향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투자 및 정책 개선이 요구된다. 건강이나 노인요양 체계의 기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지출이 아니라 위기 시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필수적인 투자라는 점을 코로나19의 경험은 보여주고 있다.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역량과 지방정부 차원의 정책 실행도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빠르게 대응하며(비록 중앙정부의 기술·재정 지원이 필요하지만) 지역사회 실정에 맞는 대응책을 신속하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지방정부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팬데믹 대응력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아질 것이다.

이제 국민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 참여하는 정책, 즉 국민의 참여와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팬데믹 정책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전문가는 질병의 제반 특성과 정책의 비용·편익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산출하고, 일반 국민은 이를 기반으로 토론하고 가치판단에 기초하여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어떻게 코로나(또는 코로나 위험)와 함께 살 것인가는 과학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보건의료, 경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위험(acceptable risk)에 대한 가치판단과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중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의 역량을 높이는 일은 우리 사회의 위험 수용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기자명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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