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

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두려움 해소’ 아닌 ‘위험 대처’가 중요하다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

‘당장의 손실’보다 ‘미래의 이득’을 보자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

지속 가능 방역, 검사·조사·기술보다 ‘질적 전환’이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⑤‘균형 잡힌’ 방역이라야 지속가능하다
COVID-19 워킹그룹

⑥우리의 ‘방역 소통’은 충분히 최선이었을까
COVID-19 워킹그룹

⑦“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⑧확진자 수에 집착 말고 '위험 수용 능력' 높여야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연합뉴스5월8일 전남 무안군의 한 요양병원에서 환자와 면회객이 ‘비접촉 창문 면회’를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흩어져 공부하던 보건·의료 연구자들을 한데 뭉치게 만들었다. 지난 8월 방역 현장과 학계, 국제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던 다양한 구성원들이 ‘COVID-19 워킹그룹’을 꾸려 매주 연구회의를 열어왔다.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분석하고 한국의 방역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협업을 통해 해당 주제에 관한 정책 보고서와 연구논문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연구그룹이 〈시사IN〉에 지속 가능한 방역에 관한 글 두 편을 보내왔다. 이번 호(제688호)와 다음 호(제689호)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이 글의 공동 필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는 대표 필자).

*정웅기(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보건정책·정치학), *김상준(영국 런던정경대학, 보건정책·경제학), 이희영(분당서울대병원·예방의학), 최세진(서울대 의과대학·중개의학), 김태영(서울대 보건대학원·역학), 정현욱(타이완 국립타이완대학·국제정치학), 문주현(독립연구자·보건정치경제학), 장효범(독립연구자·국제보건), 김수경(독립연구자·국제보건).

과학자의 사고와 정책 입안자 또는 결정자가 사고하는 경로는 다르고 또 마땅히 달라야 한다. 정책 결정자는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 사안을 판단해야 할 뿐 아니라 방역 정책의 시행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상충관계(tradeoff)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릴 책무가 있으며 또한 그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균형 잡힌 방역’이라는 개념을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균형의 의미를 두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장기적 관점에서 방역은 기존의 지속적 억제를 고수해서도, 급격한 완화를 추구해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정부의 방역 기조인 ‘장기적 억제 전략’에서 한 단계 나아갈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고위험군 보호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면 전면적인 방역 완화는 큰 희생을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방역이 병원 밖에서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도구라면 중환자 돌봄 역량의 대폭 확대는 병원 안에서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기본 도구다. 방역을 완화할 경우 중환자 돌봄 역량의 대폭 확대는 그 전제조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선 역량 확보·후 방역 완화 전략’을 주장한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방역은 미국과 유럽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를 극도로 제약해서도, 한국처럼 그에 관한 유의미한 사회적 토론이나 숙의를 경유하지 않은 채 일방향으로 진행되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여기서 방역 정책의 민주적·대중적 토대가 갖는 중요성이 따라 나온다. 이는 각각 이번 1부와 다음 호에 게재될 2부 원고가 다루는 주제다.

■ ‘선 역량 확보’
지속 가능 방역을 위한 기본 전략

균형 잡힌 방역으로의 기조 전환은 의료체계의 역량, 특히 환자 수용이 가능한 중환자실과 숙련된 인력에 대한 점검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회경제적 가치를 방역과 함께 추구하기 위해 방역 단계를 일부 조정한다면 추가적인 환자 발생은 불가피하며 그 단계의 조정 범위는 결국 가용 중환자 병상수와 인력이 결정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가용 중환자 병상이 얼마나 증가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증가할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지속 가능한 방역의 전략을 세우는 데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지난 8월 가용 중환자 병상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기계환기나 체외순환 치료가 가능한 중환자 병상수는 전국에 총 188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88개 병상이면 충분할까? 188개가 다 비었다고 가정하고 중환자실 평균 재원 일수를 9일로 설정하자. 하루에 발생하는 중환자가 21명이라면, 이런 상황이 9일만 지속되어도 병상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확진 환자 가운데 중증 환자가 차지하는 통상적인 비율(5%)을 적용하면 하루 400여 명 발생이 9일만 지속되어도 중환자실이 모자라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신규 환자가 두 자릿수냐 세 자릿수냐를 두고 방역 당국이 민감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지난 8개월에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188개 병상은 방역 완화를 시행하기 위한 토대로는 대단히 부족하다.

ⓒ중환자학회 제공3월20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인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방역 당국은 지난 10월19일 ‘중증환자 긴급치료병상 확충사업’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1054억원을 투입해 내년 상반기까지 총 23개 의료기관의 416병상을 코로나 중환자 병상으로 확보하고 중환자 간호인력을 확충할 예정이다. 현실화된다면, 중환자실의 평균 입실 기간을 10일로 계산할 경우 매일 중환자 40명 발생과 신규 환자 약 800명 발생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국민들은 중환자실 확보를 사회 정상화를 위한 비용으로 여기고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논점도 함께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의료자원 모니터링을 질병관리청 중심으로 집중하고, 그렇게 취합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 효과 분석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현재 질병관리청이나 시·도 홈페이지 상황판에는 의료자원에 대한 현황이 없다. 지역 단위의 의료자원 추계는 되고 있지만 전국적 데이터 공유와 그에 따른 추계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8월, 대한중환자의학회가 파악한 숫자와 정부가 파악하고 있던 중환자 병상수가 10배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흩어져 있는 모니터링 기능을 하나로 모으고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또한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 효과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독립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현재 이원화되어 있는 병상 관리와 환자 관리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이원화는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이송이 필요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된다. 현행 방역체계 내에서 병상 모니터링은 중앙사고수습본부의 병상관리팀에서, 중환자 중증도 평가는 중앙방역대책본부 또는 각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다. 한편 시·도 내 환자 전원을 위한 병상 배정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도 간 전원을 위한 병상 배정은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원지원상황실에서 관리해왔다. 이렇게 여러 권한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이송을 총괄하는 기능이 부재하다면 일관되고 신속한 관리가 어렵다.

■ ‘후 방역 완화’
학교와 요양시설 중심으로

이렇게 ‘선 역량 확보’가 이루어지면 ‘후 방역 완화’에서는 사회적 우선순위에 따라 해당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물론 그 우선순위에 관해서는 향후 다각도로 더 논의가 진행되어야겠지만, 여기서는 방역이 완화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두 범주인 교육과 취약계층, 그중에서도 초·중·고등학생의 등교를 둘러싼 쟁점과 요양시설 거주 노인에 대한 보호대책에 초점을 맞춘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휴교는 효과적인 ‘비약물적 개입’이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은 다차원적이다. 교육 기회의 박탈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체 건강의 박탈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달리 말해 감염병은 단기적인 사망을 초래하지만 교육 기회의 박탈은 장기적인 조기 사망을 초래한다. 강력한 방역이 교육의 연속성에 항상 우선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휴교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 특히 여성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9월 고용지표 중 취업자 수를 살펴보면, 전년 동월 대비 남성이 10만9000명(-0.7%) 감소하는 동안, 여성은 28만3000명(-2.4%) 줄었다. 성별로 볼 때 남성은 20대에서 가장 많이 감소(-3.6%)하고 30대에서는 그보다 적게 준(-1.8%) 반면 여성은 30대에서 가장 많이 감소(-3.1%)했고 20대는 오히려 감소 폭이 작았다.

물론 인과관계는 추후 발표될 데이터를 통해 엄밀히 검토되어야겠지만 휴교와 20~30대 여성의 취업률 감소 간의 뚜렷한 상관관계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9월1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수업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경기도 고양시의 한 가정에서 맞벌이 학부모가 초등생 자녀의 수업을 돕고 있다.

등교에 관해서도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존재한다. 첫째, 휴교가 불가피한 상황이더라도 그 시행은 국지적이어야 하며 최소한의 돌봄에 대한 대책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용률 저하와 고위험군인 조부모와의 접촉이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둘째, 학생 간 교육 불평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노력과 함께 고위험군 교사들의 건강권을 지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넷째, 팬데믹 기간에 등교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율권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보장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헌법에 따라 그 자녀에게 초등교육을 시킬 의무를 지니므로 무분별한 등교 거부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의료진 등의 판단하에 건강에 관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등교 여부를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요양시설 거주 노인 보호에 대한 중장기 대책 역시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이들은 고령이라는 코로나의 임상적 위험 요인과 좁고 밀폐된 거주환경이라는 환경적 위험 요인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가장 고위험군에 속하는 집단 중 하나다.

요양시설 현장에서 느끼는 노인들의 우울감,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은 상당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의료진과 직원들이 개인 휴대전화 영상통화 기능을 이용하여 가족과 소통할 수 있게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로비 등에 비접촉 면회실을 만든 요양시설도 있지만 산소 공급 또는 기계환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그리고 와상 환자의 경우 그조차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임종 직전 환자들은 중환자실에 있으나 다른 환자의 감염 위험이 있어서 가족의 방문은 불가능하다. 8개월 동안 면회 한번 못하다가 사망 후에나 얼굴을 마주하는 자녀들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제공경기도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의 빈 공간에 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을 추가로 만들었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수많은 중소 병원들이 요양병원으로 전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관 건물을 개조해 요양병원으로 만드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독립된 면회실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격리실과 임종실 등 장기요양에 특화된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신종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출몰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고위험 시설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언택트’ 면회실, 질 높은 격리실, 임종실 설치와 같은 시설 보완을 촉진하는 제도적 지원이 요구된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장기요양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과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상당수의 노인 인구가 시설에 들어왔다. 이는 집단감염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장기요양 재정의 관점에서도 비효율적이다. 전문가들이 대안적으로 제시하는 패러다임 중 하나는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다. 이는 노인 본인이 거주하던 집이나 익숙한 환경(커뮤니티)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노년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현실화되려면 잘 준비된 인력과 지역사회의 전문 기관들이 필요하고 이를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이 논의를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팬데믹과 함께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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