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

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두려움 해소’ 아닌 ‘위험 대처’가 중요하다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

‘당장의 손실’보다 ‘미래의 이득’을 보자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

지속 가능 방역, 검사·조사·기술보다 ‘질적 전환’이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⑤‘균형 잡힌’ 방역이라야 지속가능하다
COVID-19 워킹그룹

⑥우리의 ‘방역 소통’은 충분히 최선이었을까
COVID-19 워킹그룹

⑦“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⑧확진자 수에 집착 말고 '위험 수용 능력' 높여야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연합뉴스3월11일 대구 남구 신천지 대구교회 출입문이 누군가 던진 달걀로 얼룩져 있다. 신천지 신도로 인해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전 국민적 비난이 뒤따랐다.

지난 8월 우리나라 방역 현장과 학계, 국제보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COVID-19 워킹그룹’을 꾸려 매주 연구회의를 열어왔다. 주요 국가별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분석하고 한국의 방역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협업을 통해 해당 주제에 관한 정책 보고서와 연구논문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연구그룹이 〈시사IN〉에 지속 가능 방역에 관한 글 두 편을 보내왔다. 지난 호(제688호)에 이어 이번 호(제689호)에 나눠 싣는다. 이 글의 공동필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는 대표 필자).

*정웅기(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보건정책·정치학), *김상준(영국 런던정경대학, 보건정책·경제학), 이희영(분당서울대병원, 예방의학), 최세진(서울대 의과대학, 중개의학), 김태영(서울대 보건대학원, 역학), 정현욱(타이완 국립타이완 대학, 국제정치학), 문주현(독립연구자, 보건정치경제학), 장효범(독립연구자, 국제보건), 김수경(독립연구자, 국제보건).

〈시사IN〉 제688호 기고에서 우리는 이제 ‘균형 잡힌’ 방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때 균형의 의미는 두 가지로 이해된다고 썼다. 한 축은 선 역량 확보·후 방역 완화 전략이다. 이는 의료체계의 역량, 특히 중환자 돌봄 역량을 확충하는 동시에 방역 완화 시 고려해야 할 정책적 우선순위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균형을 추구한다. 다른 한 축은 그간 방역 전반에서 관찰되는 원칙과 실천들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방역 정책의 민주적·대중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는 방역 정책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를 극도로 제한해서도(미국과 유럽 사례), 역으로 그에 관한 유의미한 사회적 토론이나 숙의를 경유하지 않은 채 일방향으로 진행되어서도(한국 사례) 안 된다는 점에서 균형을 추구한다. 이 글에서는 후자의 과제 가운데 특히 두 가지 논점을 지적하고 싶다.

ⓒAP Photo6월20일 미국 애리조나의 투손시에서 시위대가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 ‘사실’과 ‘과학’만큼 중요한 ‘공감’과 ‘신뢰’

첫 번째 문제점은 정부와 미디어가 방역에 관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지금까지 추이를 살펴보면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미디어가 취한 일정한 패턴이 관찰된다. 이를 ‘희생양의 설정과 낙인찍기’라고 칭해도 무방하겠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역은 중국(우한)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최초의 대규모 집단감염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신천지 신도 혹은 이른바 ‘31번 환자’를 통해 일어났다. 그 결과 중국과 신천지 교회에 대한 전 국민적인 비난과 성토가 뒤따랐다. 이후 5월에는 이태원 클럽과 쿠팡 부천물류센터가, 8월에는 사랑제일교회가 그 대상이 되었다.

물론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방역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책임이 해당 개인이나 단체에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방역 당국이나 언론이 이 사건의 내용과 의미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목적이 ‘효과적 방역’이라면, 관련 방역 조치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그에 대한 준수를 독려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메시지가 산출한 효과는 매우 협소한 의미의 ‘당사자 징벌’에 머물렀다. 일례로 이태원과 쿠팡 집단감염에 연루된 인천의 20대 학원강사는 전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는 7월에 구속된 데 이어 9월에는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확진자에 대한 기피나 비난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회적 낙인을 야기하는 이러한 징벌적 조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와 관련해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사랑제일교회발 집단감염이 발생하기 전까지 정부가 적어도 석 달가량의 시간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처할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이나 프로토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또 다른 집단감염에 대해 정부는 미디어와 함께 다시금 전광훈과 개신교를 비난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그 후과는 결코 작지 않다. 전 사회적으로 개신교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매도가 벌어졌고 이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이 뒤따랐다.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방역 효과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면예배 금지는 다양한 형태의 잠복적 모임을 양산했고, 이는 결국 방역망의 누수로 이어졌다.

위 사례에서 끌어낼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이른바 근거 기반(evidence-based) 정책의 추구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적 활용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방역 조치의 적절성과 필요성을 전달하고 이를 따르도록 대중을 설득하는 작업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첫째, 이는 인간이 사실을 인지하는 방식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특정 사람들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어떤 이는 마스크 착용 여부와 관계없이 코로나19가 자신의 생명에 큰 위험이 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위험 인지). 혹은 마스크 착용이 실제로 코로나19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효과성 인지). 또 다른 이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 자신도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규범 인지). 따라서 마스크가 상당수 비말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일종의 배리얼레이션(variolation·인두법) 효과를 가진다는 정보는 이들에게 거의 또는 온전히 수용되지 않는다.

둘째, 사실에만 근거한 커뮤니케이션은 감정과 신뢰의 역할 역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백신접종에 대한 거부 또는 주저 현상(vaccine hesitancy)은 이에 관한 가장 적절한 사례 중 하나다. 이른바 무리면역(면역우산·herd immunity)이 작동하려면 최소한 전체 인구의 60~70%가 해당 바이러스에 면역되어야 하는데, 백신 수용도가 6%만 하락해도 이 목표는 위협받게 된다. 의료인류학자인 하이디 라슨에 따르면, 백신은 “오늘날 집단 협력에 관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사회실험 중 하나”이다. 이는 곧 백신의 성공이 궁극적으로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어떻게 동질감을 형성하고 협력에 응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백신 수용도는 단지 ‘허위 정보의 제거’가 아니라 ‘신뢰의 구축’에 의존한다. 그런데 신뢰는 단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으며 메시지의 수용자가 느끼는 감정과 긴밀히 연동된다. 라슨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격언을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당신의 지식에 관심을 가진다.”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연구와 치료처럼 ‘형성 중인 과학’의 성격이 과학의 대중적 이해에 미치는 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상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과학의 본령은 확실성이 아니라 그 반증 가능성에 있다. 하지만 대중이 과학적 사실을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확실성과 정확성이다. 문제는 이번 팬데믹이, 과학적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미규정적 성격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데 있다. 새로운 증거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스크 착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변경한 일은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효과적인 정책적 순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의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중의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전략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메시지 수신자의 개인적 신념이나 배경, 문화적 영향과 선호하는 정보의 출처 등을 식별하고 그에 따른 맹점을 다루는 능력이 공중보건 부문에 필수적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역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전략에 근거할 때 과학적 사실에 대한 대중적 이해 역시 비로소 높아질 수 있다.

■ 대중이 직접 참여하고 변화시키는 방역 정책

그간의 방역 기조와 정책에서 확인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물질적·정서적 측면 모두에서 사회적 내상 혹은 트라우마의 심화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포괄적인 사회정책적 개입의 중요성은 달리 강조가 필요치 않다. 다만 사회정책은 위기가 지나간 이후의 복구 대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위기에 대한 긴급 대응책이라는 점을 환기해두자. 또한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교육이나 주거환경과 같은) 삶의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른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사회정책적 개입 외에, 사회적 내상의 최소화라는 관점에서 두 가지 구체적 제언을 하고 싶다. 이는 결국 방역에 관한 대중의 견해를 듣고 반영하며 공유하는 상향식 의사결정을 수반한다는 의미에서, 방역 정책의 민주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도 결정적이다.

하나는 ‘코로나19 대응 프레임워크 개발위원회(The Commission on Develop-ment of the COVID-19 Response Framework)’의 설치 및 운영이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관련 의과학자와 사회과학자를 초치(招致)해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경제적 피해를 연구·조사하고, 그에 입각해 방역 정책의 프레임워크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인 현지 조사를 통해 사회적 취약계층과 경제적으로 크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면담하는 작업이 결정적이다. 방역 이해당사자들의 경험과 의견을 직접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연구 결과와 정책 제언이 산출되므로, 이는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 정책 수용자(시민)의 관점에 기초한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정책 입안 과정에서 수용자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투입되기 때문에 민주적 방역의 지렛대를 확보하는 경로로도 기능할 수 있다. 다만 그저 또 다른 위원회를 양산하는 옥상옥이 되지 않으려면, 실무 연구진을 충분히 확보하는 한편 독립성과 실효성을 위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직속기구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제언은 좀 더 대중적이고 다각적인 방역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나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수행하는 통상적인 언론 브리핑을 넘어서야 한다. 기자단의 질의 시간이 있지만, 유관기관의 언론 브리핑은 본질적으로 일방향이다. 방역 정책에 대한 라운드테이블 또는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해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기성세대 겨냥)나 온라인 소셜미디어(젊은 세대 겨냥)를 통해 방송하는 방식이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책임 있는 자리를 맡고 있는 정치인과 주요 방역 담당자가 출연해 대중과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이런 방송의 목적이다. 프레임워크 개발위원회의 요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데 있다면, 미디어의 적극적 활용은 방역의 여타 이해당사자들이 그런 의사결정 과정과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사회적으로 크게 쟁점이 되는 방역 정책의 이슈를 다루는 장 역시 여기가 되어야 한다. 정치참여의 효능감(efficacy)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긴요한 것과 정확히 같은 의미에서, 방역 정책에서도 대중이 정책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데 관여하고 이를 체감할 수 있는 경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가 방역 기조와 정책을 다시 근본적으로 점검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건 정부 안팎에서 모두 동감하는 과제다. 이는 기존 정치경제 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어렵고도 험난한 길이다. 하지만 “어려움은 도정(道程)의 문제이지 길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 게다가 이는 이미 꽤 시한이 지난 과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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