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3년 등반 도중 바위에 팔이 끼여 조난한 애런 랄스턴이 팔을 자르고 살아 돌아온 실화를 다뤘다. 아무 도움도 없이 팔을 부러뜨린 후 무딘 등산용 칼로 잘랐다. 정말 비인간적으로 끔찍하지만, 한편으론 불굴의 의지가 더없이 인간적이다. 그는 이제 집게 모양 의수를 달고 산다. 애런 랄스턴은 살기 위해 스스로 외과 의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인류 역사에서 이런 신체 절단 의료술은 언제부터 있었으며, 의수와 같은 보철물은 어떻게 발달했을까?
〈만화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런 의문을 고대에서부터 차근차근 되짚어준다. 부득이하게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할 때 시행하는 절단술(Amputation)의 시작은 무려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치료를 위해 뼈를 절단하고 상처가 아문 흔적까지 있는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절단술은 오랜 기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서양 중세 시절은 끔찍했다. 그냥 자르고, 끓는 기름에 담근 다음, 뜨거운 인두로 지졌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걸 의료 행위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절단술에도 획기적인 진보가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덕분이었다. 전쟁이 더욱 빈번해지고 무기가 발달할수록 신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사람도 많아졌다. 절단술은 살과 뼈를 자르는 기술보다 세균 감염 방지, 지혈, 마취, 소독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함께 성장했다. 절단술과 보철물이 칼과 창이 총과 대포로 변하는 무기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술이 인간을 진화시킨다?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잃어버린 신체를 보완한 보철물은 현대에 이르러 급격하게 발달한다. 의수나 의족뿐만 아니라 각막, 보청기, 코, 어깨뼈, 기관지나 식도, 심지어 인공 심장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그저 모양만 내서 끼웠던 의수에 비해 이제는 훨씬 정교한 움직임까지 가능해졌다. 최신 유압식 의족은 걷고 달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섬세한 춤동작까지 가능할 정도다. 물론 언제나 비용이 걸림돌이다. 훌륭한 보철구는 아직 비싸다.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보철구의 한계 너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팔다리보다 훨씬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팔다리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SF 영화에서 보듯이 말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지만,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더 멋진 신체를 갖기 위해 멀쩡한 팔다리를 잘라내고 인공 팔, 인공 다리를 다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적’이지 못할까? 다친 신체를 보완해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몹시 인간적인 의술이 이제는 인간의 정의와 윤리 문제를 건드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만만치 않은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아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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