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위쳐〉가 공개되었다. 슈퍼맨을 연기했던 헨리 카빌이 은발의 전설적인 위쳐, ‘리비아의 게롤트’ 역을 맡아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쳐는 만들어진 돌연변이로 육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그는 돈을 받고 괴물을 사냥하는데, 사람들은 위쳐를 필요로 하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동시에 혐오한다. 게롤트는 이런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철저히 자기의 신념을 실천하는 거친 캐릭터다. 운명이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항상 선악이 모호한 사건에 휘말려 시험당한다.
중세 배경의 다크 판타지 시리즈 〈위쳐〉는 폴란드 소설가 안제이 사프코프스키가 〈비에즈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동유럽판 〈반지의 제왕〉’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폴란드 게임 회사 CD 프로젝트 레드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RPG 게임 〈위쳐〉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원작소설의 인기를 넘어섰다. 그 덕분에 소설 역시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게임 외 다양한 미디어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그래픽노블도 빠질 수 없다.
원작 그대로 옮기지 않고 새롭게 구성
〈위쳐:유리 저택의 비밀〉은 미국 그래픽노블 명가 다크호스에서 위쳐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프코프스키의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폴 토빈이 새롭게 썼기 때문에 외전 격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원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가며,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도 여전하다.
이야기는 괴물이 득실거리는 숲에서 시작한다. 게롤트는 앙그렌의 검은 숲에서 사냥꾼 제이콥을 만나 친구가 된다. 제이콥의 아내 마르타는 9년 전 뱀파이어에게 납치당해 브룩사라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마르타가 괴물이 되어버린 뒤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제이콥을 죽이지 않았고, 제이콥 역시 마르타 옆을 떠날 수 없었다. 제이콥은 무려 9년 동안이나 검은 숲에 머무르며 마르타에게 접근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관계를 유지한다.
게롤트를 만난 제이콥은 마침내 마르타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되지만 숲에서 괴물의 습격을 받고 어느 저택으로 몸을 피한다. 그 저택에는 마르타가 기다리고 있다. 방마다 다른 분위기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유리의 저택에는 마르타 외에도 갖가지 저주에 걸린 존재들이 게롤트의 목숨을 위협한다. 유리 저택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던 게롤트는 제이콥과 마르타 사이의 진실을, 사랑으로 포장된 광기 어린 집착을 목도하게 된다. 위쳐 시리즈의 팬이라면 괴물과 때론 괴물보다 더 추악한 인간들 틈에서 투쟁하는 게롤트를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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