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풍경과 상처
  • 박성표 (작가)
  • 호수 625
  • 승인 2019.09.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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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가깝고도 먼 존재가 있을까?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 난민 티부이는 항상 의문이었다. 왜 아빠는 늘 집에 혼자 있을까? 왜 엄마는 가장 행복했던 때를 학창 시절이라고 말할까? 티부이는 진통 끝에 아들을 낳고 덜컥 겁이 난다. 부모를 한 번도 이해해본 적 없는 내가 엄마가 되다니! 그는 부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티부이는 부모를 인터뷰하고, 베트남까지 방문했다.

아버지의 가족사는 복잡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베트남에는 대기근이 찾아왔다. 아버지 쪽 가족은 오직 살기 위해 흩어져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가 베트남을 되찾겠다며 돌아왔고, 이번에는 베트남 독립 전쟁이 터졌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죽을 위기를 숱하게 넘겼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지주계급이었고, 할아버지는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베트민이 된다. 프랑스를 등에 업은 지주계급에도, 베트민의 공산주의 사회에도 아버지는 섞이지 못했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는 학창 시절 언제나 1등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학교에 다녔으며, 결혼과 아이를 인생의 덫이라고 생각했다. 베트남어를 익히고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면서 민족주의 성향을 띠게 되었다.

비극적인 역사가 한 가족을 할퀸 흔적들

지적인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머니는 결혼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결국 아버지와 결혼했다. 첫아이가 죽고, 실의에 빠진 부부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시대는 두 사람을 평화롭게 놔두지 않았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북베트남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 사이의 베트남 전쟁은 1975년 4월30일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난다. 남베트남에 속했던 티부이 부모에게 그것은 나라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을 ‘응우이(가짜)’라 부르며 차별하고 끊임없이 사상을 검증하고 감시했다.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 티부이 지음, 정재윤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티부이 부모는 목숨을 걸고 베트남을 탈출한다. 수십명이 작은 배에 타고 베트남을 탈출해 고생 끝에 유엔 난민수용소에 도착한다.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티부이의 남동생을 낳았다.

미국에 도착했지만 이민자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 베트남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당했고 고국에서 받았던 학위는 인정받지 못했다. 자괴감에 빠진 아버지는 집에 칩거했고, 어머니는 시급 3달러의 단순노동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티부이는 가족의 이야기가 중첩적인 의미를 지녔음을 깨닫는다. 미국에서 자란 티부이에게 그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었고, 부모 역시 독립된 하나의 개인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의 그늘 속에 숨어 있던, 베트남의 비극적인 역사가 힘없는 한 가족에게 남긴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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