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은 만화를 훌쩍 뛰어넘는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도 영화·애니메이션이 더 유명한 경우가 많다. 영화에는 제약도 따른다. 상영 시간이 제한되고, 제작비가 큰 만큼 흥행 부담도 크다. 그래서 원작 만화의 내용과 참맛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아키라〉 〈공각기동대〉 같은 명작조차 아쉬움을 남겼다.
기시로 유키토의 〈총몽〉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이 개봉했지만 원작의 풍부한 내용을 전부 담지는 못했다. 영화 덕분에 절판되었던 〈총몽〉이 완전판으로 재발매되었다. 〈알리타:배틀 엔젤〉은 〈총몽〉에서 가장 스피디한 ‘모터볼’ 편을 중심으로 담았는데, 원작에는 더욱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많다.
〈총몽〉의 중심 세계관은 단순하다. 하늘 위에는 유토피아 세계인 ‘자렘’이 있고, 땅에는 자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로 살아가는 ‘고철마을’이 있다. 고철마을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 덕분에 자렘이 유지된다. 상층부와 하층부가 명확하게 구분된 세계에서, 고철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렘으로 올라가기를 꿈꾼다.
고철마을 사람들의 욕망과 그들이 엮어가는 드라마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고철마을에서 머리만 살아 있는 사이보그 소녀를 발견한 의사 이도는 그녀에게 갈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몸을 만들어준다.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이도의 뜻과 달리, 화성에서 전사로 길러졌던 그녀는 고철마을 최고의 현상금 사냥꾼 ‘헌터 워리어’가 된다.
인간은 ‘업’을 극복할 수 있는가
갈리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그녀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잔혹한 범죄자를 처단하고, 비겁한 사람들을 응징한다. 옳은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갈리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눈이 멀어 오직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이들이 생겨나고, 본의 아니게 갈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었던 이도에게 큰 상처를 준다.
갈리는 자렘의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미치광이 과학자 ‘디스티 노바’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는 자렘의 천재 과학자였으나, 자렘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뛰쳐나와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을 거듭한다. 디스티 노바는 인간이 과연 ‘업(카르마)’을 극복할 수 있는가 탐구한다며, 욕망과 분노에 들끓는 인간의 뇌를 수집해 그들에게 강력한 사이보그 보디(몸)를 준다.
욕망은 있으나, 실현할 수단이 없었던 인간에게 수단이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토록 강렬한 욕망끼리 충돌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총몽〉은 강렬한 SF 액션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 관계, 거대한 음모에 이르기까지, 즐길 수 있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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