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대의 아이콘이다. 장정일 소설가는 ‘거짓말에 대한 잔혹한 진실(〈시사IN〉 제632호)에서 ‘탈진실(post-truth)’을 언급하며 예시의 대부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할애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환경”을 뜻한다. 지속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소셜 미디어적 방법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고, 그 불안과 공포를 통해 자신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 불안과 공포, 따져보면 다 돈 문제다. 빈곤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여기에다 애초부터 비주류가 아닌 주류에서 낙마되었다는 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이 둘에 모두 해당되는 백인 노동계층이 트럼프 지지의 핵심을 형성한다. 타자에 대한 배척과 폐쇄적인 태도가 트럼프 지지층의 근간을 이룬다는 건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문화적 다양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태도마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관성 원칙을 통해 변명하려 한다.
음악 외의 얘기가 길었다. 말하고 싶은 점은 다음과 같다. 다양성의 의미를 무한 상대주의로 전용해 왜곡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는 예술가가 널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2019년 가장 돋보였던 뮤지션으로 라나 델 레이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신보 〈노먼 퍼킹 록웰(Norman Fucking Rockwell)〉을 통해 트럼프 시대를 우아하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노먼 록웰에서 음반 타이틀을 따온 점이 우선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노먼 록웰은 자본에 취해 대공황에 빠진 1920년대의 미국을 조롱했던 일러스트레이터다. 라나 델 레이는 노먼 록웰의 그림에서 표현된 예언자적 비전에 주목했다. 운전석에는 탐욕이 앉고, 신자유주의가 길잡이별이 되어주는 2019년의 미국이 1920년대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가사 ‘fuck’에 담긴 차가운 분노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fuck’이라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앨범 제목에도 들어 있는 ‘fuck’을 우리는 앨범 전체를 통해 수십 번도 넘게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욕지거리가 아니다. 시대의 공기를 품고 있는 회한이나 냉소, 차가운 분노에 가깝다. 과연, 그의 입술을 거치면 ‘fuck’이라는 단어도 이렇듯 근사하게
바뀐다는 게 놀랍다. 그렇다고 해서 라나 델 레이가 자본이 낳은 풍요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수록곡 중 ‘Fuck it, I Love You’를 감상해보라. “나는 네가 욕설이 나올 정도로 좋아. 하지만, 넘어가진 않겠어.” 쉽게 요약하면 돈이 전부인 시대에 돈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노래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라나 델 레이는 물질주의가 선물하는 쾌락을 ‘fuck’ 잔치로 노래하면서도 어떻게든 안간힘을 다해 속지 않으려 한다. 차라리 방황하는 쪽을 택한다. 그렇다.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오래된 경구다. 그는 이런 자세를 9분에 달하는 곡 ‘Venice Bitch’에서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2019년을 통틀어 이보다 깊고 광대하면서도 섬세한 곡을 들어보지 못했다. 음악 비평 사이트 ‘피치포크’ 매거진은 2010년대 최고 앨범 리스트에서 발매된 지 두 달이 채 안 된 〈노먼 퍼킹 록웰〉을 19위로 꼽았다. ‘최신 클래식’임을 공증한 것이다. 내년 그래미에서 라나 델 레이가 어떤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될지 궁금하다. 적어도 나에겐 2019년 올해의 앨범이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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