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음악을 뚝딱 창조할 수 있는 세상, 그럼에도 누군가는 악기를 잡고 연주한다. 기타를 잡건, 베이스를 손에 쥐건, 드럼 세트에 앉건, 연주할 때의 쾌감을 즐겨서일 터다. 그렇다. 신체의 연장으로서 악기의 유효성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10년대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비단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메인 차트에 밴드가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못해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악기를 둘러메고 자신이 속한 세상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밴드 음악을 논하는 김에 MBC 예능 〈놀면 뭐하니?-유플래쉬〉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 프로그램이 잔잔하게 화제다. 유재석이 친 8비트 기본 박자를 두고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선율을 더한다. 엉망진창인 듯 보였던 그 비트가 제법 그럴싸한 음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전시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이상순의 결정적 한마디
솔직히 드럼을 나름 2년 넘게 쳐온 처지에서 그 비트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으리라 여겼다. 지금은? 내 판단이 섣불렀음을 인정한다. 과연 음악은 마법이다. 단순함의 끝이라 할 그 비트 위에 유희열의 키보드, 윤상의 베이스, 이상순과 적재의 기타가 더해진 편이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상순의 다음 한마디가 결정타 아니었을까. “적재야, 너 지금 되게 좋은데, 보컬이 들어와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할 거 같아.”
이상순은 솔로 지향이 아닌 밴드형 기타리스트의 롤모델로 꼽히는 연주자다. 어떤 음악이든 ‘밴드의 틀’ 안에서 사고한다는 탁월한 장점을 지녔다. 후배를 대하면서도 신중했던 그 한마디에 적재의 기타 패턴이 스윽 변했던 장면이 이 프로그램의 지향을 드러낸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믿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노래의 진정한 완성은 라이브와 더불어 시작된다. 얼마 전 회차에서 유재석은 기타 명인 한상원과 라이브를 하며 ‘합주’가 주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맛보았을 것이다. 쉽게 하는 단언이 아니다. 이건 정말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수한 영역이다. 한상원씨 같은 거물의 도움을 굳이 받을 필요도 없다. 처음엔 어설퍼도 반복해서 함께 연주하다 보면 “어? 우리 뭔가 맞고 있는데?” 싶은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추어 밴드를 하며 카피 곡을 웃기는 수준으로 ‘재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가뭄에 콩 나듯 강림했던 찰나의 희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희열에 중독되면, 진짜 답이 없다.
뭐, 굳이 불굴의 의지로 밴드를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일주일에 한 번 짬을 내 합주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강조하고 싶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어도 좋다. 기타라도 괜찮다. 베이스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유재석처럼 드럼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건 어떤가. 박명수에 빙의되어 디제잉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언젠가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되어갈 즈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게 분명하다. 유재석의 말 그대로다. 유재석도 하는데 당신이라고 못할 것 없다. 내가 주말마다 드럼을 쿵쾅 두드리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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