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견뎌내야’ 하는 약자들의 삶 읊다
  •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 호수 639
  • 승인 2019.12.20 23: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콜드플레이는 신보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에서 절망을 노래하며 “음악은 미래의 무기야”라고 외친다.
ⓒAFP PHOTO콜드플레이(위)는 〈에브리데이 라이프〉에서 이 세계에 희망은 있는지 묻는다.

언제나 고민한다. 몇 개월이 지난 뒤에도 이 첫 느낌이 유효할 것인지 속으로 되묻는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잦아드는 성격이다. 음악 듣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음반 앞에서 나는 심장박동이 저절로 빨라진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어떻게 하면 이 앨범의 탁월함을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된다.

글쎄. 이번만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알아서 주목받고, 알아서 널리 퍼질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콜드플레이(Coldplay)다. 이 세상 하등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대상이 콜드플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니다. 인터넷 댓글로 사람 목숨 빼앗는 세상이다. 무관심이 때로 대상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최선이라는 걸 사람들은 대체 언제쯤 깨닫게 될까.

연예인에게 훈장질하고 악플 다는 행위가 결국 자기 불만족에서 기인한 행위라는 걸 언제쯤 알게 될까. 브래지어를 하든 말든, 그 주체가 연예인이든 아니든, 그걸 소셜미디어에 올리든 말든, 소셜미디어에 올린 그 사진을 보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개인 권리라는 걸 대체 언제쯤 인식하게 될까. 너와 내가 때로는 뚝뚝 떨어져 있는 풍경 속에서 평화로울 수 있음을 대체 언제쯤 받아들이게 될까.

페미 쿠티의 솔로 색소폰 연주 압권

전망은 밝지 않다. 세계는 어쩌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콜드플레이가 바라보는 세상 역시 비슷한 모양이다. 그들은 신보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에서 절망을 노래한다. 앨범 공개 전 발표한 ‘오펀스(Orphans)’가 대표적이다. “폭탄이 거대한 굉음을 내는” 그곳에서 “달과 같은 눈을 지녔던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거리에는 고아들이 넘쳐난다. 이 세계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레 약간 거칠어졌다. 밴드 역사상 최초로 f-word(욕설)가 든 곡이 몇 개 있다. 먼저 포크·블루스 곡인 ‘건스(Guns)’의 경우, 제목처럼 총기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아라베스크(Arabesque)’는 가히 앨범 최고의 순간이라 확언할 만하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고 가는 와중에 록과 재즈를 박력 넘치는 전개로 두루 살피고, 드라마틱한 마무리로 끝을 맺는다. 아프로 비트의 창시자이자 흑인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펠라 쿠티의 아들 페미 쿠티의 솔로 색소폰 연주가 특히 압권이다.

〈에브리데이 라이프〉는 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 해당되는 〈선라이즈(Sunrise)〉, 〈선셋(Sunset)〉 파트로 나뉘어 쭉 이어진다. 대강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질 때까지 이 세계의 약자들은 그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야 한다. 그것도 매일같이.

‘아라베스크’의 후렴구에서 콜드플레이는 “음악은 미래의 무기야”라고 외친다. 다큐멘터리 ‘소리와 음악 사이’를 보면 음악은 인간으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중요한 것을 배우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함께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놀랍게도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이 더 친절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콜드플레이가 노래한 것처럼 음악은 미래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비극 속에서 작은 희망 하나, 건져낼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할 건 인간의 선함이라 믿는다. 이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영 쉽지가 않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