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클럽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 호수 635
  • 승인 2019.11.22 1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밴드 이날치의 음악은 전통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동시대성을 잃지 않는다. 전통과 현대는 절대 대척점에 있지 않다.
ⓒYouTube 갈무리밴드 이날치가 9월28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공연하고 있다.

경고. 혹여 이 글을 읽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있다면 스킵해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어떤 밴드를 설명할 생각인데 그들의 음악이 중독성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수능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며 감언이설하는 어른들을 믿지 마라. 성적이 잘 나오면 어쨌든 행복하다. 게다가 며칠 정도는 음악 안 들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 글 읽지 마라. 장정일 소설가의 ‘독서일기’처럼 빼어난 글도 아니다. 진심으로 충고하건대 자칫 호랑이가 수십 마리 내려올 수 있다.

호랑이. 순우리말로 하면 ‘범’이다. 지금부터 “범 내려온다”라는 구절을 머릿속으로 되뇌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유튜브에 접속해서 ‘이날치 범 내려온다’라고 치면 기가 막힌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범 내려온다.” 이제부터 이 문장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가 된다. 당신의 뇌를 지배하고는 끊임없이 울려 퍼질 테니까 말이다.

이날치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한자로 쓰면 李捺致. 조선 후기에 활약한 판소리 명창이다. 본명은 이경숙(李敬淑)인데 줄타기를 잘해 날치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날치의 소리에는 서민적인 정서가 풍부해 남녀노소 널리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날치라는 밴드가 이날치라는 이름을 차용한 가장 큰 이유다.

확언할 수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씽씽밴드(제531호)에 반했다면 이날치의 음악에도 매혹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성을 주도한 베이스의 장영규와 드럼의 이철희가 바로 씽씽의 멤버였던 까닭이다. 이 외에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베이시스트 정중엽과 소리꾼 5명(권송희, 박수범,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이 모여 이날치를 결성했다.

음악적인 지향은 씽씽과 비슷하다. 우리 가락에 서양 리듬을 섞는 방식이다. 차이를 꼽자면 씽씽의 음악이 펑크(funk)에 가까웠던 반면 이날치 쪽은 ‘클럽 지향’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날치는 베이스를 두 대 쓰고, 드럼 비트를 더해 리듬의 바탕을 두껍고 탄탄하게 가져갔다. 또 ‘범 내려온다’가 반복되는 마지막 후렴구에서는 노이즈를 잔뜩 걸어 강렬한 타격감도 일궈냈다. 영상에서는 4분50초쯤 되는 지점이다.

‘로컬’이 ‘글로컬’이 되는 순간

씽씽이 그랬던 것처럼 이날치의 음악은 전통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동시대성을 잃지 않는다. 2019년의 대중이 들어도 울림과 동기화가 강하게 이뤄질 수 있는 만듦새를 지녔다.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무엇보다 감탄과 칭찬 일색인 영상 밑 댓글을 보라. 조선 시대로 따지면 이날치의 소리에 박수를 보냈던 당시의 대중이 되는 셈이다. 이 댓글만 봐도 우리 전통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은 자명해 보인다.

전통은 때로 지독한 관습이 된다. 관습이란 고찰을 허락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할 수도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꼰대가 되지만 진정한 변화는 꼰대에게서 비롯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지독한 관습을 깨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전통과 현대는 결코 대척점에 있지 않다. 아니, 대척에 있다 하더라도 이 둘을 융합하려 할 때 창조의 스파크는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조선의 클럽에 오신 걸 환영한다. 부디 이날치 음악의 흥겨운 가락과 모던한 리듬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과연, ‘로컬’이 ‘글로컬’이 되는 순간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