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트라우마는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고 믿어요. 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축적되죠. 학대당한 사람들을 보세요. 학대당한 순간 경험했던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완전히 바꾸지 못하는 한 그들이 바로 학대하는 사람이 되죠. 폭력적인 것들을 부끄러워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그걸 똑바로 응시하고, 호명하고, 밝은 곳으로 끌어내서 사랑하려 했죠.”
거의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언어로 속살을 끄집어내는 뮤지션이라면 그의 음악이 좋지 않을 리 없다고 말이다. 디자인이 끝내주는 커버를 지닌 앨범이 대개 만족할 만한 가성비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연 그랬다.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불러와 형상화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목소리는 불안정하다. 묘한 뉘앙스로 흔들리면서 곡의 내밀한 영역을 섬세한 태도로 탐사한다. 대표곡이라 할 ‘워터링(Watering)’을 들어보라. 이 곡이 묘사하는 세계는 폭력 그 자체다. 폭력이야말로 주인공의 내면 일부를 상징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그는 피해자인 척하지 않는다. 폭력이 일상화된 세계에 놓였음에도 저 자신을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용감한 각성자다. 자신이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자각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하긴, 우리 모두가 곧 그와 같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폭력은 세대와 시대를 핏줄 삼아 세계를 적신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처벌과 배척이야말로 이 비겁한 분노 사회의 기저에 자리한 가장 큰 욕망 아닌가. 그는 바로 이 지옥 같은 굴레에서 탈주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통과해야 했던 고통과 트라우마를 마침내 껴안고자 한다.
소개가 늦었다. 밴드 이름은 ‘빅 시프(Big Thief)’, 보컬 애드리안 렌커를 중심으로 결성된 4인조다. 데뷔작 〈마스터피스(Masterpiece)〉(2016)와 2집 〈케이퍼시티(Capacity)〉(2017)를 통해 인디 신의 스타로 떠올랐고, 올해에만 음반 두 장(〈U.F.O.F.〉 〈Two Hands〉)을 내놓았다. 2019년은 가히 빅 시프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두 앨범 모두 평단과 마니아의 극찬 속에 빌보드 인디 차트 8위에 오른 점이 이를 증명한다.
2분 넘게 지속되는 기타 솔로가 압권
메타크리틱에서는 87점, 피치포크에서는 10점 만점에 9.2점을 받았다. 이 두 사이트에 익숙한 음악 팬이라면 이게 ‘들어야 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뭐, 평론가들의 허튼소리 따위 믿지 않아도 좋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인터뷰를 배치한 이유다. 저렇듯 사려 깊은 언어를 쓰는 뮤지션의 음악이 궁금하지 않은가 말이다.
두 앨범에서 하나씩 골라야 한다면 ‘UFOF’와 ‘Not’을 꼽겠다. 전자의 경우 미확인 비행물체를 뜻하는 UFO에 Friend의 F를 더한 거라고 한다. 은은하고 신비로운 톤으로 여운을 남기고, 듣는 이를 어루만져주는 듯한 포크 록이다. 반면 ‘Not’에서는 시작부터 드라이브 걸린 기타 스트로크가 터지고 뒤틀린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침잠했다가 한 번 더 폭발한다. 그중에서도 곡이 마무리될 때까지 2분 넘게 지속되는 기타 솔로가 단연 압권이다. 기술적으로 탁월하지는 않지만 곡이 쥐고 있는 감정을 압도적인 날것의 에너지로 터트리면서 ‘Not’으로 상징되는 부정의 세계를 돌파한다. 이런 사람, 이런 음악,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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