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드러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진실
  • 김은지 기자
  • 호수 601
  • 승인 2019.03.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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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과거사위원회가 확보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관계자의 진술은 사건이 어떻게 조작되고 은폐됐는지 드러낸다. 유우성씨를 기소하고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사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1월21일 <동아일보> 1면 기사 ‘북 탈출 주민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유우성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조작한 증거를 법원에 낸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과 민간인 협조자는 유죄판결을 받았다(아래 표 참조). 유씨를 기소하고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재조사 리스트에 넣은 이유다.



지난 2월8일 검찰 과거사위는 2013년 당시 검찰(수사·기소 담당 이시원·한정화 검사, 공판 담당 이시원·이문성·최행관 검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유우성 1심 증거를 은폐했다는 의혹 △2심 증거 조작에 검사가 가담 혹은 인지했는지 여부 △탈북자 진술을 공소의 책임자인 검사가 적절히 검증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검찰의 책임을 물었다. 또 검찰의 잘못 등으로 공권력의 피해자가 된 유우성씨에게 검찰총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연합뉴스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오른쪽)와 양승봉 변호사(왼쪽)가 2월13일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를 고소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우성씨는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로 이문성·이시원 검사를 고소했다. 유씨는 “군사정부 시절에나 가능할 것 같은 간첩 조작이 2010년대에도 일어났다. 검찰은 당시 형사처벌을 피해갔다. 진상규명과 처벌이 동시에 이뤄져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검찰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라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 과거사위가 확보한 사건 관계자의 진술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드러낸다. <시사IN>은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수사, 1심 및 2심 증거 제출 등의 과정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한 몸처럼 움직인 정황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담당 검사와 국정원 수사관의 구체적 진술은 사건이 어떻게 은폐되고 조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수사 초기부터 유우성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확보했지만 감췄다.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결론 아래 수사를 하며 증거를 짜 맞추었다. 없는 증거는 만들고 있는 증거는 빼버리는 식이었다. 검찰과 국정원이 마음먹고 사건을 조작하려 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실제 사례였다.

이 사건의 첫 번째 증거 조작 논란은 2013년 1심 과정에서 불거졌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씨가 북한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라며 사진 여러 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이 유씨의 컴퓨터를 돌려받아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해본 결과는 달랐다. 수사기관이 유씨가 북한에서 촬영했다고 밝힌 2012년 1월22~23일에 그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추가로 발견됐다. 국정원이 유씨가 북한에서 찍었다고 주장한 사진의 위치정보는 중국 옌볜이었다(<시사IN> 제305호 ‘국정원 증거 조작’ 기사 참조). 유씨가 1심에서 간첩죄 무죄를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증거 중 하나였다.

사진의 위치정보 확인은 수사의 기초라 할 수 있다. 2017년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작성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 수사팀은 디지털 정보 전문성이 부족해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에 위치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국정원 보안정책상 2014년 5월 이전까지 스마트폰의 사용을 금지해 활용법을 잘 몰라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했다.

반박은 같은 국정원 수사팀 내에서 나왔다. 한 국정원 직원은 검찰 과거사위에서 “포렌식을 담당했다면 아는 내용(사진 위치정보)이다. 알면서 누락했거나 얘기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포렌식 수사관이 그 정도를 모르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해도 검증할 기회는 또 있었다. 유씨는 수사 과정에서 해당 사진을 중국에서 찍었다고 밝혔다. 2013년 1월24일 진술서에 그 내용이 담겼다. 중국에서 사진을 촬영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검찰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검찰은 중국에서 찍힌 사진을 간첩 증거라며 법원에 그대로 제출했다. 검찰·국정원의 무능이라기에는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 중국에서 찍힌 사진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검찰 과거사위는 의심한다.

동생의 거짓 자백도 몰랐다고 발뺌


유우성씨의 통신 내역도 마찬가지다. 2012년 12월 국정원은 이미 그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분석했다. 유씨가 북한에 갔다고 의심하는 시점에 중국에서 통화한 기록이 나왔다. 유씨에게 유리한 증거였지만 이 또한 재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시원 검사(현재 변호사)는 2014년 증거 조작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이렇게 해명했다. “수사 지휘할 당시 통신 영장을 청구해 국정원에서 그 자료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이후 조회 결과가 분석된 수사보고서가 기록으로 첨부되지 않았다. 통신사실 조회가 별 소득 없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시사IN 이명익2014년 3월 유우성 간첩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사건을 맡은 이시원 부장검사와
이현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최행관 검사, 이문성 검사(왼쪽부터)가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당시 국정원 파견으로 법률지도관이었던 이문성 검사는 유우성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영장신청서를 결재했지만, 수사의 기본인 통신 결과가 송치기록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챙기지 않았다. 법정에서 유우성씨의 변호인이 치열하게 다투지 않았다면 재판에 나오지 않을 증거였다.

2013년 당시 검찰과 국정원이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며 내세운 또 다른 핵심 증거는 동생 유가려씨의 진술이었다. 유가려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으며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었다.

유가려씨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았다. 2013년 1월 작성된 국정원 내부 수사보고서에는 ‘유가려가 2012년 11월22일 오빠의 간첩 혐의 등에 대해 진술했다’라고 쓰여 있다. 닷새 후 유가려씨는 11월22일 진술을 전면 번복했고 다섯 차례에 걸쳐 부인과 인정을 왔다 갔다 했다. 그녀는 국정원의 폭력·폭언·회유 등에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 또한 검찰과 국정원은 숨겼다. 1심 재판 과정에서야 드러났다. 법정에서 유가려씨가 “수사과정에서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다”라고 밝히자, 검찰은 추가 진술서 23부를 냈다. 이시원 검사는 검찰 과거사위에 ‘수사 당시에는 진술서가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변했다. 국정원이 제대로 밝히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과거사위에 다른 진술을 했다. 검사가 추가 서류를 사전에 봤을 가능성에 대해서 “다 본다. 검사와 우리(국정원 수사팀)는 한 몸이다”라고 말했다. 수사와 공판 당시 검찰·국정원의 공조에 대해서도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는 “담당 검사와 국정원 직원은 거의 매일 본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검사실을 찾아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던 적이 있다. 전화를 하자 검사가 ‘어디 열쇠가 있으니 들어가 기다리라’고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유가려씨가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당시 일관되게 부인했지만, 내부 자료에는 다른 내용이 담겼다. 2017년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수사관 2명은 복수의 동료에게 ‘합신센터 신문관이 페트병을 던지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보았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중 한 명은 당시 상황을 메모로 남겼다. 목격자 중 한 명은 ‘모니터로 페트병을 집어던지는 장면을 보았다’라고 진술했다가 ‘고성이 들려 쳐다보니 물병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로 말을 바꿨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는 탈북자도 동원됐다. 추정과 전언이라도 유우성씨가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돈을 주었다. ‘국가보안유공자’라는 명목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1심 선고도 나기 전인 2013년 6월,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4명에게 상금을 주었다.

국가보안법 제21조(이 법의 죄를 범한 자를 수사·정보기관에 통보·체포한 자에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상금을 지급한다)가 근거였다. 해당 대통령령은 공소가 제기되거나, 기소유예 또는 공소보류가 되어도 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법의 빈틈을 악용해 유리한 진술을 받는 식이었다.

“진술조서가 정반대로 쓰여 있더라”


실제로 유우성 재판에서 상금을 받은 이들의 진술은 상당 부분 탄핵되었다. 신빙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와 상관없이 많게는 1600만원부터 적게는 800만원까지 상금을 타갔다. 법무부 상금 800만원에 국정원 돈 1200만원을 합쳐 총합 2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탈북자 김 아무개씨(<시사IN> 제376호 ‘상금이라 하는데 타이밍이 참 묘할세’ 기사 참조)는 검찰 과거사위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자 조사를 받다가 중단하고 가버렸다.

대신 김씨의 전남편이 검찰 과거사위에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다. “김○○의 이야기를 듣고 그거 가지곤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이 ‘그래도 (간첩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냐’고 자꾸 물어봐 정 그러면 ‘유우성 아버지가 술 먹고 아들이 한국에 있는데 북한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 것처럼 진술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이 검찰에 출석해 그 내용에 살을 보태 진술한 걸로 안다.”

탈북자의 증언에서도 유우성씨에게 유리한 증거가 나왔다. 국정원은 이마저도 조작했다. 수사 당시 유우성씨에 대해 진술한 탈북자 최 아무개씨는 국정원이 자기가 말한 대로 진술조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검찰 과거사위에 밝혔다. “면담 후, 국정원 수사관이 작성해온 진술조서를 읽었는데 말한 것과 정반대로 쓰여 있었다. 항의하자 일부만 수정했다. 무서웠고,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부분은 차후에 수정한다고 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검찰은 조작된 증언을 거의 검증하지 않았다. 게다가 증거로 제출된 일부 탈북자의 진술은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 내용이 같아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지만 검찰은 그들을 직접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검찰과 국정원의 행태는 2심에서 절정을 이뤘다. 검찰과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한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이 위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외교문서가 조작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시 검찰은 수사팀을 꾸려 국정원 관계자 4명과 민간인 협조자 2명만 기소했다. 국정원 직원은 많게는 징역 4년, 적게는 벌금 700만원 선고유예를 받았다(2015년 10월 대법원 선고).

반면 수사 당시 피의자 신분이던 이문성·이시원 검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속은 잘못밖에 없다는 취지였다. 2019년 검찰 과거사위가 밝힌 조사 내용에 비추어보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처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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