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간첩 낙인을 이렇게 쉽게 찍었나
  • 김은지 기자
  • 호수 311
  • 승인 2013.09.04 08: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죄판결이 난 ‘탈북자 간첩사건’은 국정원·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보여준다. 유씨의 여동생은 불법 구금 등을 당했고 기소 내용과 다른 증거가 나왔다. 국정원은 유씨 변호인에 대해 ‘보복성 소송’을 제
8월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 이범균 부장판사가 30분에 걸쳐 판결 요지를 설명한 끝에 ‘무죄’라고 말하자, 피고인석에 서 있던 유우성씨(33)는 눈물을 훔쳤다. 황토색 반팔과 긴 바지 수의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유씨는 계속해서 손등으로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30석 정도 되는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담담하던 표정으로 판결 내용을 메모하던 김용민 변호사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양승봉 변호사도 얼굴이 환해졌다. 유씨를 간첩으로 여겨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구형한 검사(기소 한정화, 공판 이시원·이문성)는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더 이상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하고 7월3일 중국으로 출국한 여동생 유 아무개씨(26)도 법정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유우성씨는 지난 1월13일 국가보안법(간첩, 특수잠입 및 탈출, 편의제공 등)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북 탈출 주민(의) 서울정착 지원업무(를 하던)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북에 넘긴 정황(<동아일보> 1월21일)’ 따위 뉴스의 장본인이 된,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탈북자 간첩사건’이 시작되었다. 7개월 만에 유우성씨는 주요 혐의인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여권법 위반과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는 인정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유씨의 동생은 국정원의 협박과 폭행 때문에 오빠의 간첩 혐의를 허위 자백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시사IN 조남진 유씨의 동생은 국정원의 협박과 폭행 때문에 오빠의 간첩 혐의를 허위 자백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뒤집힌 증언

2004년 탈북해 남한으로 입국한 유우성씨는 자리를 잘 잡은 편이었다. 서울의 사립대 중문과를 졸업한 다음, 2011년 서울시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떨어져 있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여동생 유씨에게도 남한행을 권했다. 2012년 10월 여동생은 제주도로 입국해 탈북자 신고를 했다. 곧바로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로 옮겨져 신문을 받았다.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합신센터는 탈북자의 신원 확인과 간첩 검거 등을 하며, 최대 6개월 동안 머무르게 하는 곳이다(<시사IN> 제296호 ‘그곳은 탈북자의 감옥’ 참조).

이 과정에서 여동생은 오빠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집요하게 신문을 받았다. 국정원 수사관은 유우성씨가 2006년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에 포섭된 이후 수차례 밀입북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여동생 또한 오빠 유씨로부터 탈북자의 신원 정보를 중국에서 온라인 메신저로 전달받아 USB에 담은 다음 두만강을 건너 3차례에 걸쳐 북한 보위부에 전달했다고 의심했다. 11월, 12월 동안 관련 사실을 부인해온 여동생은 올해 1월3일 말을 바꿨다.

국정원에서 의심하는 부분이 다 사실이라고 여동생이 인정하자마자, 오빠 유우성씨는 1월10일 긴급 체포되었다. 곧이어 13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그러나 여동생은 오빠의 간첩 혐의를 인정한 다음에도 합신센터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대신 눈 뜨면 조사받던 생활에서는 풀려났다. 국정원 직원과 함께 서울 63빌딩·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다녔지만, 중국에 남아 있는 아버지나 감옥에 갇힌 오빠와의 연락은 가능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3월4일에야 오빠 유씨를 처음 보게 되었다. 법정에서였다. 재판이 열리고 검찰 공소 유지의 핵심이 여동생의 증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유우성씨의 변호인이 여동생을 만나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유씨의 변호인은 법원에 인신구제청구(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자유를 제한당한 개인을 구제하는 절차)를 했다. 4월26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여동생은 합신센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간첩 혐의로 구속된 유우성씨는 무죄판결로 풀려났다.
ⓒ시사IN 신선영 간첩 혐의로 구속된 유우성씨는 무죄판결로 풀려났다.
합신센터에서 나온 여동생은 신문 과정을 털어놓았다. “합신센터에서 조사받는 내내 이미 오빠가 간첩 혐의를 다 인정했다면서, 내가 협조만 하면 KAL기 폭파범 김현희처럼 여기서 잘살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은 회유하고 협박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인정하라고 했다.”(7월5일 최후변론에서 유우성씨 측 김용민 변호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야만시대의 기록>을 인용하며 여동생이 ‘지각 박탈’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문 종류에는 ‘지각 박탈’이 있다. 신문도 못 보게 하고 외부 연락도 못하게 한다. 여동생의 경우 달력도 주어지지 않아 날짜 감각이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6개월간 조사를 했다.”) 여동생은 법정에 서서 국정원과 검찰에서 수사받을 당시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번의 중국행

새로운 증거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으로 유우성씨의 무료 변론을 맡은 장경욱·천낙붕·양승봉·김용민 변호사는 지난 3월 직접 중국에 가서 현장 조사를 했다. 중국 옌지에서 지난해 1월22일 찍은 유씨의 가족사진과 1월23일 가족·지인과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유우성씨가 지난해 1월22일 밀입북해 간첩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검찰의 기소 내용과 맞지 않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 부분은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게까지 만들었다. 6월21일 검사는 ‘유우성이 2012년 1월24일 새벽에 북한에 들어갔다가 같은 날 밤에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기소 뒤 공소장 변경은 검사들도 꺼리는데, 새로운 사진 증거 앞에서 검사도 어쩔 수 없었다.

6월과 7월에도 유씨의 변호인은 중국에 다녀왔다. 유씨의 알리바이를 증언해줄 사람들을 찾아 동영상을 찍고, 국정원·검찰이 주장하는 유씨와 여동생의 행적을 똑같이 따라가며 현장검증을 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동생이 중국의 한 PC방에서 오빠가 보낸 탈북자 신원 파일을 QQ메신저(중국의 대중적인 온라인 메신저)로 전송받아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검찰이 주장하는 유우성씨가 보냈다는 탈북자 신원 파일은 대부분 한글 문서인데, 해당 PC방에서는 한글 문서가 열리지 않았다. MS워드로 호환도 되지 않았다. 여동생은 “국정원에서 시키는 대로 진술했지, 메신저로 오빠에게 뭘 받은 적이 아예 없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유우성씨의 중국 행적을 증명해줄 자료들을 여럿 찾아냈다.

여동생의 진술 번복과 변호사들이 찾아오는 증거가 법정에 하나둘 제시되면서 국정원·검찰의 공소 내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유씨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장경욱·양승봉·김용민)에 대해 소송을 내기도 했다. 거짓 주장으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소송을 했고, 국정원 수사관 개인 명의로 변호사마다 2억원씩 해서 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간첩 조작 사건이 여동생의 양심선언으로 전모가 밝혀지자 국정원이 보복성 소송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적반하장격 소 제기로 변호사들의 변론권을 위축시키고 있다”라고 성명을 내며 비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유씨가 구치소에서 지인에게 받은 편지들. 유씨는 간첩이 아니란 걸 행동으로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유씨가 구치소에서 지인에게 받은 편지들. 유씨는 간첩이 아니란 걸 행동으로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무죄

8월22일 선고에서 재판부는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여동생의 증언이 객관적 증거에 모순되는 부분이 있고 진술의 일관성과 합리성도 일부 의문이 드는 이상, 수사기관 및 증거보전 절차에서의 진술은 전체로 신빙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여동생의 진술서와 특별사법경찰관(국정원)이 작성한 진술조서도 진술 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로서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다만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의 여동생 진술이 폭행·협박 및 가혹행위 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국정원 수사관들의 진술과 검사가 제출한 자료 등을 종합해볼 때 특별히 그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유우성씨가 북한에 정보를 보내는 데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유씨의 노트북에서도 관련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형사재판에서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의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공소 사실을 진실이라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우리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재판부는 사건이 상당 부분 북한에서 이뤄져 수사 등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로 인해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 적용이 완화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못 박았다. 유씨의 국가보안법 무죄 이유는 판결문 39쪽에 걸쳐 서술되었다. 검찰은 “판결문을 받아 검토한 뒤 항소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