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태어난 것 원망했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311
  • 승인 2013.09.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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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갈 때면 늘 몸에 묶던 파랗고 까만 포승줄(흰색 포승줄로 묶는 일반사범과 달리 공안사범은 다른 색깔의 포승줄로 묶는다고 한다)과 손에 차던 수갑이 사라진 순간, 유우성씨는 석방을 실감했다. 재판을 위해 늘 타던 호송차를 자유로운 몸으로 탔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그때를 떠올리다 또다시 울먹이는 유씨를 출소 직후인 8월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그의 집에서 만났다.

1심이긴 하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소감은?

8개월가량 1.5평짜리 독방을 썼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몸무게가 15㎏ 정도 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교도관들이 ‘구형이 징역 7년 나왔으니 선고는 징역 5년 정도 나올 수 있다’면서, 너무 좌절하지 말고 힘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자유롭게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기쁘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변호사·목사님·신부님 등이 도와주셔서 진실이 밝혀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간첩 혐의로 구속된 유우성씨가 무죄판결로 풀려난 뒤 지인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치소 안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심장약과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3~4월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10알 정도 먹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 갇혀 있던 동생을 처음 봤을 때부터 시작한 증상이, 동생이 풀려나자 괜찮아졌다. ‘서울시 간첩’ 이렇게 보도가 나가니까, 구치소 안에서는 다들 나를 무슨 특수훈련 받고 온 사람처럼 보더라. 다른 방의 조폭이 내가 할 줄도 모르는 태권도를 해보라면서, 하면 닭다리를 주겠다고도 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간첩이라는 전제로 하는 말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검찰이나 국정원에서는 여전히 간첩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재판에서 무죄가 나도, ‘뭐가 있으니까 잡아갔겠지’ ‘조금이라도 뭐가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거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대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최후변론에서 말했는데, 한때 진심으로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태어난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만 남한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남한에서 태어나고 싶다. 난 정말 간첩이 아니다. 여전히 그렇게 보시는 분들에게는 행동으로 보여드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새터민의 남한 정착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돕고 있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하는 거 말고 뭐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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