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5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율’.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34)와 양승봉 변호사는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유씨의 동생 유가려씨(27)와 아버지가 그날 오전 10시부터 중국 공안(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유우성씨 사건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검찰이 유씨가 중국에서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출입경 기록을 추가 증거로 냈다. 이를 반박하는 자료를 유씨 동생이 중국 현지에서 찾아 한국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이 낸 문서가 중국 공식 기관에서 떼준 게 아니라는 중국 관리의 증언이 담긴 촬영본도 법원에 냈다. 그러자 중국 관리가 이를 문제 삼았다. 공공기관에 찾아가 허락받지 않은 촬영을 했다며 유씨의 동생과 아버지를 조사했다.

유우성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무슨 조사를 받았느냐고 유우성씨가 꼬치꼬치 캐물어도 유가려씨는 입을 다물었다. 오빠의 다그침에 겨우 말문을 연 동생은 “다 잘될 테니, 여기서 조사받은 내용을 밖에 말하지 말라고 공안이 그랬다”라고만 했다. 전화를 끊은 유우성씨는 “탈북한 동생과 아버지는 아직 중국 국적이 없다. 체류가 불안하니 공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나 하나 간첩 만들려고 저쪽(수사기관)에서 별짓을 다 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1월7일 ‘증거 날조’로 수사 관계자를 고소한 유우성씨가 발언 도중 울음을 참고 있다.

지난해 8월, 유우성씨는 1심 재판에서 국가보안법(간첩, 특수잠입 및 탈출, 편의 제공 등) 위반 부분은 무죄를 받았다.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과 여권법 위반 혐의만 유죄를 받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탈북자 신원 정보를 북한으로 빼돌렸다는 등의 간첩 혐의는 벗었지만(〈시사IN〉 제311호 ‘어떻게 간첩 낙인을 이렇게 쉽게 찍었나’ 참조), 유씨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6년 5월27일 11시’ 출경인가, 입경인가

유씨는 지난 1월 자신의 사건을 맡은 수사 관계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1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다. “사람들은 사건 조작이 1970~1980년대에나 있던 일인 줄 알지만, 지금 제 사건만 보면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유씨와 그의 변호인이 주장하는 검찰의 증거 조작은, 출입경 기록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는 것이다.

먼저 검찰이 지난해 11월 제출한 기록을 보면,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께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다(入境·입경). 이때는 유씨도 북한을 갔다고 인정한다. 갑자기 돌아가신 북한의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했다가(5월23일 중국에서 북한으로 감) 다시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미 검찰이 수사한 내용이기도 하다. 2010년 당시 이 건으로 조사를 받은 유씨는 무혐의 처분(공소시효 만료)을 받았다.

검사와 변호인의 쟁점은 여기서부터다. 검찰이 낸 기록에는 유씨가 5월27일 오전 10시 중국에 들어온 다음, 같은 날 오전 11시께 다시 북한으로 나갔다고(出境·출경) 쓰여 있다. 1시간도 채 안 되어 다시 북한으로 갔고 6월10일 중국으로 다시 들어온 것(입경)으로 되어 있다. 이때 북한에 간 기록이 간첩 혐의의 중요 증거라는 주장이다. 수사기관은 이때 유씨가 북한에서 간첩 지령을 받았다고 본다.

그러나 유씨 변호인이 중국 변호사를 통해 떼어본 기록은 달랐다. 5월27일 오전 10시, 5월27일 오전 11시, 6월10일 모두 ‘입경(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옴)’으로 나와 있다. 유씨의 변호인들은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아마 처음에 이 기록을 받고, 모두 입경(5월27일 오전 10시)-입경(5월27일 오전 11시)-입경(6월10일)으로 되어 있는 게 이상했을 거다. 그런데 서류가 오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중간에 ‘입경’을 ‘출경’으로 바꿔서 자기 논리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우성씨는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온 이후(5월27일 오전 10시 북한에서 중국 입경) 북한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들의 주장은, 5월27일 오전 11시와 6월10일 기록은 전산 오류라는 것이다. 국경을 넘은 일이 아예 없었는데, 전산이 오작동해 ‘잘못된’ 기록이 남았다는 주장이다.

오른쪽은 법원에 제출된 검찰과 변호인의 증거. 변호인의 증거에는 ‘입경-입경-입경’으로 돼 있고, 검찰의 증거에는 ‘입경-출경-입경’으로 돼 있다. 검찰의 논리는 5월27일에서 6월10일까지 유우성씨가 북한에서 간첩 지령을 받았다는 것. 변호인과 유우성씨는 그 기간 중국에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입경’이라고 표기된 건 전산 오류라는 설명이다. 변호인 측은 자료를 발급한 검문소로부터 ‘시스템 고장으로 인한 틀린 기록’이라는 확인서를 받아(위) 법원에 제출했다.

실제로 유씨와 변호인은 이 자료를 발급하는 검문소 쪽에서 받은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와 6월10일 기록은 매사(MEI SHA) 시스템 업그레이드 중 시스템 고장으로 인한 틀린 기록이다.” 5월27일 오전 10시 유씨와 함께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친척 2명의 출입경 기록에도 유씨처럼 5월27일 오전 11시, 6월10일 연속해서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입경 기록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다시 북한을 갔다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집단 시스템 오류가 났다는 근거라고 변호인은 주장한다.

유씨와 변호인이 주장하는 ‘검찰이 기록을 조작했다’는 증거는 또 있다. 검찰이 낸 출입경 기록의 또 다른 부분은 유씨의 북한 여권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유씨의 여권에는 2002년 11월30일과 2003년 9월15일 모두 북한에서 중국으로 간(입경) 날짜라고 되어 있다. 유씨 변호인이 중국 변호사를 통해 뗀 유씨의 출입경기록과도 동일하다. 그러나 검찰이 낸 기록에는 2002년 11월30일은 입경, 2003년 9월15일은 출경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 역시, 변호인이 낸 증거에 따르면 검찰이 낸 서류는 2003년 9월15일 ‘입경’ 기록이 ‘출경’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검사가 제출한 기록의 발급 기관은 모두 허룽시(화룡시)인데, 허룽시는 이런 기록을 떼줄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 직원과 나눈 대화 영상을 보면, 중국 공무원은 “허룽공안국에서는 이런 문서를 발급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한다.

검찰 제출 증거의 신뢰성과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자, 지난해 12월20일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입수 경위에 대해 해명했다. 우선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문서를 받은 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사법 공조 조약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문서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도 공문을 보내 절차를 밟아 내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대검찰청 명의로 (허룽시에) 공문을 보냈고, (허룽시가) 정보협력 차원에서 출입경 기록을 검찰에게 전달했다.”

이 출입경 기록의 증거 채택 여부는 다음 열릴 2월28일 공판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유우성씨 재판을 1심부터 담당해온 이시원 검사는 최근 영월지청장에서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으로 영전했다. 이 검사와 함께 공판을 담당한 이문성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에서 창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승진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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