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낮과 밤은 멈추지 않으리니.”
경건한 성경 구절이 비닐하우스를 메웠다. 2월26일, 경기 양평 팔당 두물머리. 매일 열리는 ‘생명평화 미사’가 이날로 365일째를 맞았다. 평소와 달리 밝은 분위기였다. 말씀의 화두는 ‘위로’가 아닌 ‘축하’였다. 두물머리 11농가가 씨 뿌리고, 낮과 밤을 이어갈 땅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15일, 수원지법은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두물머리 농민의 손을 들어줬다.
국유지인 두물머리 인근 농지는 농민들이 3년에 한 번 씩 허가를 받아 경작 해온 땅이다. 지난 30년 간, 한국 친환경농업의 메카로 불리며 유기 농사를 이어왔다. 그러다 양평군이 갑작스레 점용허가를 취소한 것이 지난 2009년. 4대강 사업 예정지에 두물머리가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이 곳 유기농민의 싸움도 시작됐다. 삼보일배·금요 촛불집회·생명평화 미사와 더불어 ‘점용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진행했다.
팔당 두물머리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주민 측이 승소한 첫 번째 사례다. 팔당 공동대책위원회 방춘배 국장은 “개발보다 유기농지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다른 4대강 개발 지역과 관련해, “이번 결과를 통해 하천부지의 공익적 사용, 쫓겨나는 농민들의 권리 보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농민들은 저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승소소식을 전했다. 농민 김병인씨(57)는 평소 딸 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한의대생 지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해 여름, 대학생 의료봉사를 통해 얻은 인연이었다. 농사와 투쟁을 병행했던 지난 2년 간, 다양한 사람들이 팔당 두물머리를 찾았다. 환경 활동가·대학생·천주교인·심지어 과학자까지 힘을 보탰다. 임인환씨(47)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중한 관계를 많이 얻게 된 것은 기쁘다”며 80통 넘게 온 축하 문자를 일일이 되짚었다.
미사에 참석한 정순씨(66)도 그런 시민 중 한 명이다. 인터뷰 요청에 수줍게 손사래 치다가도 승소소식에 대한 소감을 묻자 얼굴이 환해졌다. “너무 좋아서, 노래 부르고 농민 분들 보자마자 포옹하고 했지요.” 그는 지난해 우연히 찾았던 두물머리에서 한 농민이 내민 무를 한 입 베어 먹고 두물머리 ‘열성분자’가 됐다. 맛있고 건강한 채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서 미사에 나오기 시작했다. 상품가치가 떨어진 갓, 무 등 두물머리 농산물을 대량으로 사다가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인근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창우 신부와 강화도에서 온 천주교 신자 10여명도 두물머리를 방문했다. 4대강 사업과 팔당 상황을 잘 모르는 천주교 신자들을 위해 수도원이 마련한 견학 프로그램이었다. 이창우 신부는 “직접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나면 신자들도 환경과 개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이번 승소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양평군과 국토해양부는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이번 판결이 점용허가 취소의 부당함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이미 시행된 취소 처분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팔당 공대위는 농지 철거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과 더불어, 항소심에 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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