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 일기 예보에 따르면 중부지역 날씨는 흐릴 것으로 예상 됐다. 이날 남양주시 팔당 유기농 단지 농민들은 흐린 날보다 차라리 비가 오길 바랐다. 남양주 시청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3박4일 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더딘 ‘수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 걸음 딛고 한 번 온몸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3보1배 ‘수행’이다. 시위라기보다는 수행에 가까운 3보1배를 앞둔 터라 농민들은 폭염보다는 차라리 온몸을 적셔줄 장대비를 원했다. 

ⓒ시사IN 조남진30여 명이 3보1배를 시작하자 경찰이 집시법 위반이라며 막았다. 남양주 경찰서장은 “3보1배는 절에 가서 하는 것 아니냐"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팔당 유기농 지역은 4대강 사업 구간 중 마지막 남은 농민들의 저항지다. 지난해 8월 ‘한강 살리기 사업 제1공구’에 팔당지역이 포함되는 걸 안 뒤부터 1년간 상경투쟁, 측량저지, 단식 따위 반대 싸움을 해왔다. 하지만 이날도 송촌리에는 측량 시도가 있었다. 두물머리를 포함한 이 지역은 대부분의 측량이 끝나고 보상을 위한 공탁을 앞두고 있다. 

오전 9시 30분, 남양주 시청 본관 앞에 무릎 보호대와 목장갑이 담긴 상자가 도착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도 준비됐다. 3보1배용 수행 용품이다. 팔당공동대책위는 시작에 앞서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 촉구 팔당농민 삼보일배’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환경단체·종교인·대안학교 학생들 40여 명과 기자회견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유용훈 위원장은 “팔당 농민들이 또다시 길을 나선다.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분명히 4대강 중단을 말했는데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고 신부, 목사들은 (릴레이) 단식을 150일 넘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디까지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시사IN 조남진경찰이 막자 농민들은 1명씩 릴레이 3보1배에 나섰다.
농민들은 지난해 12월. 남양주에서 여의도 국회 앞까지 도보 순례를 하기도 했다. 6개월 만에 걷는 것보다 몇배가 힘든 3보1배를 또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자리에 참석한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팔당에만 오면 할 말을 잘 잇지 못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처장은 “현 정부 들어 편한 집을 버리고 길거리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막는 길은 하나다. 국민 여러분이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강호 민주당 구의원 등 6.2지방선거 당선자들도 참석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조해인·최재영 신부를 비롯해 김성구 목사 등 종교인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종교인들은 현재 두물머리에서 100일이 넘게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6월7일엔 천주교 주교회의 차원의 미사가 진행됐다. 개신교 목사들도 마을 기도 처소에서 두 번째 100일 금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사IN 조남진팔당 농민들은 3박4일 동안 청와대 앞까지 3보1배를 이어갈 예정이다.
기자회견 마지막, 팔당공대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더 이상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과 반환경적인 국토 파괴 행위를 좌시할 수 없기에 온몸으로 맞서고자 한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엎드려 가장 낮은 곳의 민심을 보여주려 한다.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라.’ 

오전 10시40분께 30여 명이 3보1배를 시작했다. 몇 발짝 나가지도 못하고 경찰이 막았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이라며 3보1배 수행을 막았다.  남양주 경찰서장은 “3보1배는 절에 가서 하는 것 아니냐. 둘 이상이 모여서 의사표현을 하려면 집회 신고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농민들은 “종교행위는 집회, 시위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를 안 해도 된다”라고 맞받았다. 경찰의 경고 방송이 있고 나서 결국 유용훈 위원장 혼자 3보1배를 시작했다. 경찰 병력 스무 명은 남아 집에 귀가하려던 농민들을 막아서 30여분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팔당공대위는 구리와 청량리, 명동성당을 지나 청와대까지 3보1배 릴레이를 이어가기로 했다. 16일엔 구리 돌다리 공원에서 노숙을 한다. 3박4일 동안 저녁마다 4대강 토론마당을 연다. 청와대에 도착하는 19일 저녁 8시엔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문수 스님 추모제에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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