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노란봉투법에 대해 기사를 썼다. 법의 취지대로 하청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자원이 배분되려면,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다소 논쟁적인 내용이었다. 예컨대 정규직 노동자 임금과 성과급의 ‘최대치’가 아닌 ‘적정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부라도 하청 노조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에 대해 취재 과정에서 마주쳤던 반론은 이랬다. ‘원·하청 구조를 만든 기업이 책임져야지, 왜 노동자끼리 나눠야 하나?’
양대 노총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2025년 내에 통과시키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가 65세이니, 공백을 줄여가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임금이다.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이 늘어날 경우 임금은 어떤 기준으로 줘야 할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는 구조에서 정년만 늘어나면,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숙련보다 많은 임금을 줘야 할 수도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까지는 받아들일 모양새이지만, 숙련을 반영한 새로운 임금체계를 만드는 데는 소극적이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 자원이 무한하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에는 회의적이다. 국가 재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 소진 뒤 미래세대의 보험료율 부담이 커지리라는 우려에 대해 ‘국고를 투입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세금 역시 미래세대 부담이 아니냐고 물으면 부자에게 걷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 현실은 집값이 크게 올랐거나 금융투자로 큰 소득을 번 사람에게 제대로 된 과세조차 못한다. 설령 부자에게 더 걷는다고 해도, 그중 일부는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에서 국채를 무한정 발행하기도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나와 내 공동체가 오래 지속 가능하도록 얼마간 고통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자원이 무한하다고 가정된 세계에서는 장기 이익을 위해 단기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최대치를 추구하면 되니까. 그 가정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날 때, 과연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가 새 사회계약을 맺지 못하고 중요한 질문을 얼버무리는 동안,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정치세력이 불신의 틈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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