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좋아한 적이 없다. 도쿄에 처음 갔을 때 난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 만으로는 열아홉이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 전에 들른 오사카는 정신이 없었고, 교토에서는 태풍을 만났고, 넓고 조용한 삿포로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땅이 넓고 하늘이 커다란 곳은 이런 식으로 좋군. 그리고 다음 행선지가 도쿄였다.
한적한 곳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도쿄는 너무 크고 시끄럽고 메마르게 느껴졌다. 나도 나름 서울에선 테헤란로를 무심하게 걸어 다니던 젊은이였는데 신주쿠나 시부야는 너무하다 싶었다. 이후에도 일본 관련 일을 하면서 도쿄에 종종 갔지만 역시 도쿄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는 좁았고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죄다 지쳐 보였다. 신주쿠역에 갈 때마다 얼이 빠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안에 있으니 내 목적지가 옅어졌다.
요즘 충동적으로 결정을 할 때가 많다. 오래 생각해봐야 뭐 뾰족한 수가 있나 싶어서다. 해봐야 알지 뭐. 가봐야 알지 뭐. 뮤지션 이랑이 도쿄의 유서 깊은 클럽에서 10인조로 공연한다는 소식을 봤을 때 ‘이건 목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핑계도 있었다. 나는 이랑과 김목인의 다음 싱글을 프로듀싱하고 있었는데 같이 작업하는 엔지니어의 스튜디오가 도쿄에 있었다. 직접 가서 듣고 작업하면 더 즐겁지. 그래서 프로듀싱비로 도쿄행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이케부쿠로역 근처에 있었다. 정취가 없는 대신 가격이 싼 동네. 예전에 여기 살았던 친구한테 쪽지를 보냈다. “맛집이랑 자주 다니던 카페 가르쳐줘.” 답이 왔다. “지은 짱, 나 거기 살 때 너무 가난했어서 외식을 못했어요.” 제기랄. 입이 쩍 벌어지는 이랑의 공연을 보고 오래된 공연장의 곰팡이 냄새를 맡고 다음 날부터 소리를 만지는 작업을 시작했다. 엔지니어 M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 나를 막차 시간까지 붙잡고 있었다. 한가하게 걷다간 전철을 놓치겠다 싶어 역 근처에서 사람들과 함께 뛰었다. 계단도 두 칸씩 올라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같은 야마노테선에 타고 숨을 골랐다. 시간 계산을 못한 얼빠진 녀석들은 나를 제외하고 전부 20대로 보였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고 볼륨을 조금 키웠다. 미쓰키의 ‘투 슬로 댄서즈(Two Slow Dancers)’. 이 노래는 ‘웃기지-’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그다음은 결코 웃기지 않은 내용이 이어지지만.
참으로 웃긴다. 이미 몇백 번 들은 곡인데 다르게 들리는 것이.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가사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납작한 사진이 입체적인 영상이 된다. 이미 전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때 웃긴다. 그치? 미쓰키의 노래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호텔 옆에는 공원이 있었다. 잔디밭 앞에는 세련된 카페가 있고 나는 멋쟁이 브런치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고 잔디밭에 누워 친구에게 또 쪽지를 보냈다. “여기 공원 좋다.” “지은 짱, 내가 있을 땐 거기 공사하고 있어서 어떻게 되나 했는데 그렇게 되었구나? 특히 그 카페가 참 궁금했는데 지은 짱이 나 대신 먹어줬네.” 하늘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려 하다가 구름이 꼈는데도 눈이 부셔서 결국 눈을 감았다. 어제 들은 ‘투 슬로 댄서즈’는 오늘 또 다른 노래다.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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