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 시위에 공연을 하러 가면 울어서 노래를 못한다는 말을 적었다. 어떤 사람은 “그럼 더 뭉클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나요?” 묻기도 하는데 애석하게도 난 ‘꺽꺽’ 울기 때문에 더 이상 노래가 아니게 된다. 이걸 어떤 상황에 비유해야 할까. 무당이 굿을 하다가 갑자기 본인이 슬프다며 펑펑 우느라 옆에서 빌던 사람들이 뻘쭘해지는 그런 상황이 아닐지(굿판을 본 적은 없지만). 어이 형씨, 정신 차려! 울고 싶은 사람은 난데 당신이 왜 울어!
그래서 ‘섭외가 와도 가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항상 가고 만다. 구미 옵티칼도 그랬다.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울지 않을 방법을. 나는 유리창이다. 빛이 창문을 통과하듯, 노래가 날 통과하게 하면 된다. 내가 느끼지 말고 듣는 사람이 느끼도록, 그렇게 하면 된다. 심지어 미리 울어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옥상을 보니 눈물이 났다. 공연 다음 날인 8월29일은 한 사람이 옥상에 올라간 지 600일이 되는 날. 30분 정도 울고 와서 이젠 눈물도 고갈됐고 깔끔하게 노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는 내 노래이지만 평소에 거의 부르지 않는 곡이다.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 김진숙님이 크레인에 계실 때 썼다. 그의 인터뷰에 ‘누군가가 내가 떨어지길 바라는 듯 느껴졌어요’라는 대목이 있었다. 곡을 쓸 수밖에 없었다. 벌써 14년 전 일인데, 부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누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니. 역사의 진보란 무엇일까.

집중하기 위해 기타를 내려놓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다. 이 노래는 앞부분이 심각하고 뒷부분 가사는 나름 따뜻하다. 그래서 중반에 접어들고 안심했다. 이제 잘 마무리하면 되겠군. 후반부 가사는 이렇다. ‘바래왔던 건 아주 작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따스한 네게 돌아가는 것. 바래왔던 건 아주 작은, 땀방울의 소중함을 알고, 아름다운 미소를 알며, 따스한 네게···.’ 나는 오열했다. 왜 이걸 못 부르게 되는지···. 무대 옆에서 보고 있던 나무가 내 옆으로 왔다. 나무 박양희씨는 이 공연을 기획한 음악인이다. 그는 전라도 사투리로 말했다. “여까지 하자, 잉. 오버 더 레인보우로 마무리하자.” 나는 나무의 건반에 맞춰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렀다. 새는 무지개 위를 나는데 왜 나는 날지 못한다는 거죠. 이튿날 박정혜님은 옥상에서 내려왔다.
얼마 전 새만금공항 취소판결이 났다. 전주에 살기 시작하고 ‘좌파 행사’를 세 번 했는데, 첫 번째가 전주의 윤석열 퇴진 집회, 두 번째가 수라갯벌 살리기, 즉 새만금공항 재검토 기원 공연이었다(세 번째는 구미 옵티칼 원정). 그날 새 모양 모자를 쓴 사람들을 보았다. 뉴스로 보면 글자이지만 현장에 가면 사람이다. 취소판결이 난 뒤 어떤 분께 말했다. “제가 노래하니까 윤석열도 내려왔죠, 다음 날 박정혜님도 내려왔죠, 새만금공항 취소도 났죠. 아무래도 제가 토템인가 봐요?” 그가 말했다. “신기하네요. 우리 다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다 자기가 가서 이렇게 되었다고.” 웃긴 사람들, 따뜻한 사람들. 우리 모두가 토템이고 가끔 우리는 무지개 위를 함께 난다. 진보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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