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누가 말했다. 너보다 어린 여자 뮤지션은 안 좋아하는 것 아냐?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즈음 이미 죽은 사람의 음악만 듣고 있었다. 3집을 내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우울증과 관련된 무엇이었던 것 같다. 음악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증세. 하지만 사실은 여성혐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정말로 나보다 어린 여성을 안 좋아하고 있는 건데 단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것이라면? 그때부터 나는 백마를 타고 온 1990년대생 여성 뮤지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마음속으로 날아오기를. 정확히 말하자면 내 병증이 끝나고 마음이 열려서 ‘현재’의 음악과 사랑에 빠지기를. 그리고 클레어오를 만났다.
클레어오는 1998년에 태어난 미국 여성이다. 그는 2024년 3집 〈참(Charm)〉을 냈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케이팝 아티스트들도 많이 나가서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코첼라 무대 중 두 번째로 큰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전에 버니 샌더스가 나와서 클레어오를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샌더스 선생··· 역시 이번 코첼라에서 클레어오가 가장 힙하다고 생각하는군’ 하고 멋대로 추측했다(상상은 자유잖아요?). 클레어오의 2집 〈슬링(Sling)〉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는데 3집을 듣고 더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마음속엔 그를 위한 거대한 제단이 있다. 나는 매일 향을 올린다.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한다. 대체 이 음악은 왜 이렇게 좋은가. ‘슬로댄스(Slow Dance)’라는 곡은 어떻게 이런 아사모사한 느낌으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가. ‘주나(Juna)’라는 곡의 리듬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가. 어떻게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노래하는가. 왜 이 노래를 들으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가. 올이 풀린 스웨터와 조금 커다란 슬리퍼와 달콤하지만 곧 깨져버릴 것 같은 옅은 사랑의 감정이 있는 낡은 거실로···.
여성이 사랑 노래를 하면 ‘2류 예술’ 취급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설마 지금도 그렇진 않겠지?) 특히 어린 여성이 사랑 노래를 하면 더욱 그랬다. 언젠가 인터뷰의 첫 질문은 “왜 그렇게 사랑 노래만 하세요?”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어떤 록 밴드가 나이가 들어서도 옛날과 똑같이 맥주를 많이 마시고 여자랑 많이 자자는 노래를 하면 멋있어요, 안 멋있어요?” 그는 대답했다. “멋있죠.” 나는 물었다. “그럼 저는 왜 안 멋있어요?”
그 질문을 받은 지도 십몇 년이 흘렀다. 앙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질문이 태어나게 된 토양에 대해 쭉 생각했다. 왜 누가 부르면 인류애고 누가 부르면 계집애들의 시시한 사랑 노래인 건지. 그래서 다른 누구도 될 필요 없이 ‘계집애’인 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지고 세련된 예술을 하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 공명하고 있는 1998년생 클레어오를 보면 정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웅장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클레어오가 한국에서 태어나 음악을 했으면 제일 작은 스테이지의 오후 3시 무대를 주겠지? 하지만 그는 다행히 미국에서 태어났고 세계 록의 ‘1황’ 자리에 올랐다. 그 사실을 축하하며 오늘도 제단에 향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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